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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개발 강행이냐 타협이냐' 지금 평양은 고민중

중앙일보

입력

정부는 미국의 이라크 공격이 북한 핵 문제와 관련해 중대 분수령이 될 것으로 보고 북한 동향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북한이 지난해 10월 핵 개발 계획을 시인한 이래 핵 시설 재가동에 나선 것은 미국이 이라크 문제에 외교.군사력을 집중한 것과 맞물려 있는데다 이라크전이 끝나면 미국이 북한 핵 문제 해결에 팔을 걷어붙일 것으로 판단하기 때문이다.

북한이 본격적인 핵 개발로 나설 것인지, 아니면 타협 쪽으로 발걸음을 옮길지를 선택해야 할 시기가 임박했다는 것이다. 북한이 무기급 플루토늄 추출을 위한 방사화학실험실(재처리 시설) 가동 준비에 들어가고, 북한의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 효력이 다음달 10일 발생하는 점도 정부의 긴장을 높이는 요인이다.

"북한 여러가지 저울질할 것"=정부는 북한의 향후 행보에 대해 '이쪽이다'라고 확신하지 못하는 분위기다. 이라크전의 장기화 여부, 사담 후세인 이라크 대통령 처리 문제, 미국 내 강온파 역학 관계 등을 북한이 저울질하면서 방향을 결정할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최근 한달새 공식 활동에 나서지 않고 있는 것도 선택을 위한 장고(長考) 때문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정부 내에선 일단 이라크전이 빨리 끝날 경우 북한이 한계선을 넘기 어려울 것이라는 시각이 강하다. 북한이 핵 재처리에 들어가 핵무기를 만들기 위한 충분한 양의 플루토늄을 추출하기가 쉽지 않고, 미국의 전쟁 수행 능력 자체가 북한의 핵 시위에 대한 억지력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이럴 경우 북한이 협상 테이블로 나올 가능성이 커질 수 있다는 분석들이다.

그러나 학계에선 그 반대의 지적도 나온다.북한이 핵무기를 체제 보장의 보루라는 생각을 굳히면서 그동안 시인도 부인도 않던 핵무기 보유를 선언하거나 핵 재처리를 강행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는 것이다.

"단기전 땐 미국 강경해질 수도"=정부는 단기전일 경우 미국의 대북 정책도 양면성을 가질 것으로 본다.

첫째는 미국이 북한에 강경하게 나올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전쟁 승리에 따른 자신감을 바탕으로 대북 압박 정책을 본격화할 수도 있다는 판단이다. 특히 정부는 이라크 문제 처리 과정에서 국제 협조를 통해 후세인 체제를 무장 해제시키려던 미 행정부 내 온건파의 입지가 약화하고, 강경파들의 입김이 세질 수 있는 점을 주목한다.

대표적 강경파인 폴 월포위츠 국방부 부장관 등은 9.11테러 이후 독재 정권을 민주적인 정권으로 바꾸는 것이 테러와 대량살상무기(WMD)의 확산을 막는 최선의 방책이라는 입장이었고, 이것이 '악의 축'으로 지명한 이라크에 대한 전쟁의 이론적 기반이 됐다.

둘째는 미국이 유엔이나 다자간 협상을 통해 북한 핵 문제 해결에 나설 가능성이다. 미국의 일방주의적 이라크 개전에 대한 국제 비난 여론을 다독거리기 위해 국제 협조주의나 대화 해결 원칙으로 돌아설 수 있다는 것이다.미국이 이라크 전후 처리 문제, 유엔의 새 역할 모색, 독일.프랑스 등 우방과의 관계 설정을 비롯한 새 골칫거리를 떠안게 될 것이라는 점도 대화 해결 요인이 될 수 있다는 지적들이다.

"중국이 안전판 맡을 가능성도"=정부는 이라크전이 장기화하면 북한 핵 문제 해결은 그만큼 늦춰질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본다. 미국이 북한 문제에 눈을 돌릴 여유가 없기 때문이다. 핵 문제 해결이 늦어질수록 북한 경제 상황은 더 악화할 수 있다. 북한은 시간을 벌 수 있는 만큼 핵 재처리 등의 유혹에 빠질 수 있다는 얘기도 나온다.

하지만 정부 내에선 이라크전의 전개 과정과 관계없이 북한이 한계선을 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중국이 일본과 대만의 핵 무장을 부를 수 있고, 자국의 경제 발전 기조를 흔들 수 있는 북한의 핵 개발에 제동을 걸 것이란 분석이다.

중국이 최근 송유관 수리를 이유로 북한에 대해 원유 공급을 사흘 동안 중지한 데는 "핵 재처리를 하지 말라"는 경고의 메시지가 담겨 있다는 풀이다.

정부는 이라크전 양상과 관계없이 북한 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에 박차를 가할 계획이다. 이달 말로 예정된 윤영관(尹永寬)외교통상부 장관의 미국 방문을 통해 다자간 해결의 틀을 마련하고, 북한이 대화의 장(場)으로 나오는 접점을 찾겠다는 복안이다.
오영환 기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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