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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보석부인」|수사검사 정구영씨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피고인들이 누려온 꽤감만큼의 불쾌감, 이익만큼의 불이익을 주는 것이 공정하고 형평에 맞는 법의 적용으로 엄중한 징벌이 내려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11월 16일 상오 10시 서울 형사지법 대법정에서 간여 정수영 검사(서울지검 형사3부)는 논고를 통해 허영의 여인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수백만 원 짜리 비취팔찌가 번쩍이던 손목에 차디찬 쇠고랑을 찬「보석부인」들은 그들의 행위가 검소·검약을 요구하는 국가의 현실을 외면한 반사회적·반도덕적 범죄로 규정될 때 끝내 고개를 떨구고 울음을 터뜨렸다.
불과 9개월 동안에 억대의 각종보석을 안방에서 밀수꾼들로부터 은밀히 사들였던 상류층 부인들의 밀수보석 암매사건은 박영복 사건의 여운이 가시기도 전에 던져진「메가톤」급 충격파였다. 김승란(한·미 행협 대상자), 성병순 피고인(도피 중)등을 제외한 관련피고인 36명의 1심 판결이 끝난 지금 당시 수사검사였던 정 검사는『정말 힘들고「알레르기」가 심했던 사건이었다』고 조심스럽게 말문을 열었다.
정 검사가 사건에 착수한 것은 지난 8월 31일. 애당초 여자들 사이의 돈 거래에서 차용증서를 찢어버린 혐의로 구속된 박정애씨(39)의 사문서 손괴사건을 수사 중 채권·채무관련자들이 보석을 담보로 했다는 실날같은 단서에서 비롯됐다.
특히 사건이 단순한 형사사건에 그치지 않고 정치적「이슈」로 파급되어 그 결과가 커졌을 때 순수한 수사관의 입장은 어간 괴로운게 아니었다는 것이다.
이 사건에 관련, 유죄판결을 받은 사람은 모두 36명(남 6명·여 30명). 이 가운데 14명은 돈 있고 권세 있는 상류층 인사의 부인들이었다.
위로는 국영기업체장·대학장·전직 국회의원·변호사에서부터 의사·군 장교·「올림픽」대표선수에 이르기까지「보석부인」의 남편들은 사회각계에 알려진 저명 인사들이었다.
사건이 터지자 이들은 아내의 얄팍한 허영 때문에 하루아침에 공직에서 물러나는가 하면 현직장관은 직접적 관련은 없었어도 도의적 책임을 지고 사표를 내는 등 일대보석「쇼크」를 일으키기도 했다.
전직 국회의원 K씨는 언젠가는「부름」이 있겠지 하고 비상 직전의 학처럼 몸을 다스렸으나 사건이 나자 모든게 한순간에 끝나버렸다고 입술을 깨물었다고도 전해졌다. 또 L씨는 당장 이혼을 하자고 아내를 탓하며 가슴을 치더라는 식의「에피소드」는 보석부인들의 가루보석만큼이나 숱하게 뿌려졌다.
이들이 거래한 보석류는「다이어먼드」비취「에머럴드」「새파이어」「블루·새파이어」 남양진주「캐츠·아이」「오펄」「블루·스타」「루비」「스타·루비」등 10여종에 단 한 개 4백만원 짜리 비취에서부터 최하 8백원 짜리 입「다이어」까지 각양각색이다.『자본주의체제하에서 돈 있는 사람이 돈 많이 썼다고 누가 뭐라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 사회에서 혜택을 더 많이 받은 고위 부녀층 부녀자들이 자신의 위치를 망각하고 밀수와 사치풍조를 조장했다는데 국민의 양식이 받은 충격이나 실망이 컸다고 봅니다』-.
정 검사는 특히 국민의 관심이 범행의 주체자보다 남편들에게 더 깊었던 것은『남편은 아내를 옳게 다스려야하고 아내는 남편을 따르며 내조해야 한다는 부부일체의 동양적 윤리관 때문일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 검사는 논고문의 정상론이 응보형적 문구였다는 일부 비난에 대해『쾌감과 이익에 대한 급부형 벌을 주장한 것은 그들에 대한 보복심 같은 선입감이 없이 자연발생적인 착상이었다』고 밝혔다.
『검사는 공소장으로 모든 걸 말한다』는 정 검사는 이번 사건은 좀더 많은 보석을 갖는 것이 부러움의 대상이 되는 것으로 믿고 범법물건이라도 사야겠다는 일부 유산층 부인들의 사고방식에 경각심을 주어 형사정책상의 큰 효과를 얻은 것으로 자부한다고 말했다.<고정웅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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