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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기업 손잡고 구닥다리 규제 깬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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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훈 기자 중앙일보 모바일서비스본부장
김영훈
경제부문 차장

지방자치단체의 환경 담당 공무원이 들고 다니는 소책자가 있다. ‘배출업소 지도·점검 요령’이라는 책자다. A4 용지 4분의 1 크기, 그러니까 휴대전화인 갤럭시 노트만 하다. 200쪽이 넘는 책자에는 업종별로 챙겨야 할 점검 기준이 적혀 있다. 책자 아래쪽엔 ‘환경처’라는 이름이 선명하다. 1990년대 초반 만들었다는 얘기다. 그러나 지금도 일부 지자체에선 공장 점검을 나갈 때 이 수첩을 들고 다닌다. 환경 배출 규제가 20여 년 전에 멈춰 있는 셈이다.

 김효정 환경부 과장은 이 구닥다리 책자가 없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낡은 비정상 규제의 정상화가 필요하다”고 주장하면서다. 대신 그는 요즘 소책자의 두 배 크기의 홍보물을 끼고 다닌다. 환경부가 지난달 입법예고한 ‘환경오염시설 통합 관리에 관한 법률’ 홍보물이다. 표지엔 ‘잘 설계된 환경 규제는 기술 혁신을 통해 환경 개선뿐만 아니라 기업 생산성을 제고시킨다’는 글도 적혀 있다. 환경 규제와 생산성의 윈윈을 주장한 마이클 포터 하버드대 교수의 ‘포터 가설’이다.

 나는 어느 분야든 규제에 따른 실이 득보다 많다고 믿는다. 정부가 기업·시장보다 더 잘할 수 있다는 근거는 어디에도 없다. 하지만 사회적 공감대는 환경·안전에 대한 규제는 필요하다는 데 있다고 느낀다. 이왕 할 거면 ‘좋은 규제’였으면 한다. 환경부의 새 규제를 주목하는 건 그래서다. 규제의 방향성이 좋고, 규제 수립 과정이 쌍방향이기 때문이다.

 입법예고 안은 이름대로 통합 관리, 즉 ‘원 샷’ 허가를 지향한다. 지금까지 각 공장은 9개의 환경 허가를 각각 받아야 했다. 대기 관련 3개, 수질 2개, 토양, 악취, 소음·진동, 폐기물 등이다. 단속 방식도 바뀐다. 어느 날 갑자기 공장에 들어가 오염치를 측정한 후 최고치를 기준으로 처벌하는 방식을 버리겠다고 한다. 대신 여러 번 꾸준히 측정한 통계치를 기준으로 관리하겠다는 약속이다. 이대로만 된다면 그 자체로 진전이다.

 쟁점이 없을 리 없다. 입법예고 안의 핵심은 ‘최상가용기법’이다. 최상가용기법이란 동시대 환경 기술 중 경제성을 감안했을 때 제일 나은 기술을 말한다. 새 규제의 핵심 목표는 대형사업장(전체의 1.3%)에 이 기법을 적용하도록 해 통합적으로 오염 물질을 줄이고, 환경 관련 기술은 발전시키겠다는 것이다. 이미 미국·유럽에서 효과를 본 글로벌 규제다. 관건은 무엇을 최상가용기법으로 정하느냐다. 환경부는 업종별 기업이 참여하는 실질적인 합동 작업반에서 기준을 정하겠다고 밝혔다. 정부가 정하는 규제가 아니라 정부·기업이 함께 만들어 가는 기준을 지향한다는 점에서 나는 이 규제에 작은 희망을 갖는다. 기업은 앓는 소리만 하지 말고 제대로 된 안으로 작업반에 참여하길 바란다. 환경부는 2016년 시행 목표보다 협의와 소통에 무게를 뒀으면 한다. 끝장 토론을 각오해야 정부와 기업이 함께 만드는 규제 실험이 결실을 볼 수 있다.

김영훈 경제부문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