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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원보증서보다 인간을 믿고 싶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신원보증서 보다 인간을 믿고 싶습니다』고아가 된 것만도 가슴 아픈 일인데 보증인이 없어 취직까지 못한대서야 되겠습니까』-. 서울 중구 명동 2가200 고려칠보사 대표 전용덕씨(31)는 28일자(일부 지방은 29일자) 중앙일보 7면 「연장 고아엔 일자리가 없다」는 제하의 기사를 읽고 보증인이 없어 취직 못하는 고아를 5∼6명을 우선 채용, 이들에게 아무 조건 없이 금덩이를 다루는 일자리를 주겠다고 나섰다.
전씨는 15년 동안 온갖 역경을 무릅쓰고 자수성가한 자신의 지난날을 되새길 때마다 사람을 믿지 않는 불신풍조가 가장 안타까웠다면서 『고아라도 생계를 이을 수 있는 노동만은 할 수 있어야 하지 않겠느냐』고 되물었다.
전씨는 현재 17∼20세까지의 종업원 25명에게 하루 1천∼2천만원어치의 황금덩이를 나누어 주고 금반지·금목걸이·금 「메달」 등을 만드는 일을 시키고 있는 금은세공업자.
그러나 그는 종업원들을 채용할 때 신원보증서나 재정보증서 한 장 받아본 일이 없다고 했다.
그는 이미 갖은 냉대와 멸시에 멍든 고아들에게 사회가 조그마한 믿음도 주지 않고 학력이나 힘겨운 재정보증서를 요구한다면 그들은 영영 절망에서 헤어날수 없기 때문에 작은 일이지만 믿음과 자신감을 불어넣을 수 있도록 일자리를 주고 싶다고 했다.
전씨의 일터에는 종업원 주소록도 비치돼 있지 않다. 주소를 안다는 것은 마치 도둑이라도 맞으면 뒤쫓아가 잡으려는 것 같아 아예 주소록을 만들지 않았다는 것. 금은덩이를 다루는 일은 현금을 취급하는 은행보다 더 신원과 재정 보증이 요구되는 것이지만 3년동안 전씨의 일터에서는 단 한번 불미스런 사고가 없었다.
전씨는 종업원들에게 엄한 사장이기 전에 언제나 어려운 일을 함께 상의하고 즐거운 일이 있을 때는 함께 술도 마시고 고고 춤도 추는 다정한 친구와도 같다는 것.
종업원 김창배군(20)은 『처음 커다란 금덩이를 맡길 때는 마음이 이상했지만 사장이 나를 완전히 믿고 일을 맡기는데 감명 받아 지금은 금덩이가 돌덩이처럼 보인다』고 말했다.
전씨는 6·25전 부자로 소문났던 가정이 한해사이 몰락, 혼자서 가정교사·청소부·신문 배달 등을 하면서 63년 간신히 고교까지 졸업했다.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같은 해 친척의 소개로 동도상역이라는 스웨터 수출회사에 들어가 자재 관리를 맡았으나 4년만에 회사가 망해 67년 같은 업종인 대원공업으로 옮겼다.
여기서 생산 관리 요원으로 근무하면서 그는 고단해 앉아서 조는 여종업원을 다루면서 인간 관계가 얼마나 중요한가를 깨달았다. 그는 조는 종업원의 어깨에 돌아가며「잠바」를 덮어주는 등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 엄하게 다스리는 다른 사람보다 월등히 좋은 작업능률을 올렸던 것.
이 회사도 이듬해 망해 68년 형의 소개로 종로2가 금은 보석상에 들어간 것이 오늘의 그를 있게 한 동기. 이곳에서 4년간 생산관리자로 있는 동안 전씨는 금의 세공 과정을 환히 익혀 72년4월 자신이 붙자 저금한돈 40만원을 찾아 조그만 가공 공장을 차렸다.
그러나 처음에는 금은방에서 가공품을 사거나 주문해 주지 않았다고 제품이 나빠서가 아니었다. 자기들이 인정하는 금은 계통의 사람이 아니면 제품 자체를 믿지도 않고 거래하지도 않는 금은가 특유의 불신 때문이었다. 그럴수록 전씨는 공손히, 그리고 밤을 새워가며 정성껏 금은 제품을 만들어 하나하나 신용을 얻어갔다. 2년반이 지난 이제 전씨는 아직 젊은 나이에 큰 금세공업소를 경영하게 됐다.
전씨는 언제나 종업원들에게 『가난은 죄가 아니다. 남이 알아주든 몰라주든 열심히 노력하면 반드시 노력의 댓가는 돌아온다』고 격려했다. 전씨는 보증인이 없어도 착실하기만 하다면 5∼6명을 자신이 데려다 쓰겠다고 본사에 알려왔다. <신종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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