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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어 사는 성적 소수자 … LGBT를 양지로 부를 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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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채인택
채인택 기자 중앙일보 국제전문기자
[일러스트=강일구]
채인택
논설위원

할리우드 스타 엘런 페이지(27)가 지난 14일 커밍아웃한 것은 일대 ‘사건’이다. ‘주노’ ‘엑스맨’ ‘인셉션’ 등 대박 영화에 출연한 이 캐나다 출신 여배우가 성(性) 정체성을 밝힌 자리는 청소년 성 소수자들을 위해 활동하는 카운슬러들이 모인 인권 콘퍼런스였다. 떨리는 목소리의 연설은 BBC 등 주요 미디어와 유튜브·SNS 등을 통해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 스스로 공개한 계기는 절절하다. “감추고 거짓말하는 데 지쳤다. 영혼·정신·인간관계가 고통받았다.” 커밍아웃한 여배우로 조디 포스터(52) 등이 있지만 성 정체성을 숨기고 사는 게 얼마나 고통스러운지를 공개석상에서 밝힌 스타는 많지 않다. 그런 점에서 이번 사건은 성 소수자 권리 향상에 한 획을 그었다고 할 만하다.

 사실 서구에선 인간의 성이 여성과 남성만 있는 게 아니라는 인식이 이미 상당히 일반화했다. 성 소수자를 통틀어 LGBT라는 ‘중립적인’ 용어로 표시한 지도 오래다. 레즈비언(여성 동성애자)·게이(남성 동성애자 또는 동성애자 전체)·바이섹슈얼(양성애자)·트랜스젠더(성전환자)의 머리글자를 딴 용어다. 퀴어 또는 퀴어피플로 부르기도 한다. 이들은 성적 소수자의 다양성을 상징하는 무지개 깃발을 내걸고 권리운동을 펼쳐왔다.

 그 결과 최근 권리가 향상되는 추세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지난해 7월 “어떤 사람이 게이인데 신을 찾으며 선의가 있을 때 내가 과연 무슨 자격으로 그를 판단하겠는가”라고 말해 성적 취향 때문에 사람을 비판하거나 차별할 수 없음을 분명히 했다. 지금 소치 겨울올림픽이 한창인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지난해 7월 ‘동성애 선전 금지법’에 서명했으나 국제올림픽위원회(IOC)와 국제축구연맹(FIFA) 등이 “성적 소수자를 차별해선 안 된다”며 압박하자 결국 한발 물러섰다. 미 상원은 지난해 11월 성 정체성이나 성적 취향 등을 근거로 고용에 불이익을 주거나 해고하는 것을 금지하는 고용차별금지법안을 통과시켰다.

 BBC방송에 따르면 최근 우간다가 동성애자를 종신형까지 처할 수 있는 법안을 내놓자 지난주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이 직접 비난 성명을 냈다. 심지어 수전 라이스 백악관 안보보좌관은 “요웨리 무세베니 우간다 대통령과 장시간 대화를 나누며 법안에 서명하지 말도록 설득했다”고 트위터에서 밝혔다. 인권담당자가 아닌 안보보좌관이 나설 정도라니.

 한국에선 최초의 성 소수자 인권단체인 ‘친구사이’가 생긴 지 이달로 20년을 맞았다. 남들과 다르다는 이유로 편견이나 차별이 없는 게 관용적이고 개방적인 선진사회일 것이다. 네덜란드가 1811년 동성애 허용법을 제정했더니 성적 취향으로 차별받는 유럽 전역의 인재들이 몰렸다지 않는가. 이제 그들을 양지로 부를 때가 아닐까.

채인택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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