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1193)국립경찰 창설 제41화(31)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미군정 폐지>
정부수립 후 한 달이 가깝도록 경찰권의 이양은 이루어지지 않은 채 내무행정은 절름발이 걸음을 걷고있었다.
윤치영 내무부장관은『조병옥이 경찰을 넘겨주지 않겠다면 경무부를 무시해버리고 새로 경찰을 조직하겠다』고 공언하고 다녔다.
사태가 이렇게 까지 기울자 그해 9월2일 조병옥 경무부장이 중앙청 3층 임시 내무부장관실로 윤치영 장관을 찾아가 경찰권을 이양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조병옥 부장은 경찰을 넘겨주는 대신 몇 가지 요구조건을 제시했다. 조 부장이 내건 조건은 ①현재의 경찰인원을 줄이지 말 것 ②경찰통신망은 막대한 예산을 들여 신 장비로 설치한 것이니 손실이 없도록 할 것 ③경무부의 기구를 개편하지 말 것 등3가지였다.
조 부장의 제의를 받은 윤 장관은 한참동안 침묵을 지키다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이봐. 유석 자네가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리고 이 같은 사사로운 조건을 제시하다니 정말 어처구니없네. 이건 나의 사담인데 자네가 제시한 조건을 국회에 보고하면 자네는 반역자로 매장된다는 걸 알아야해….』
윤치영 내무부장관의 말을 듣고있던 조병옥 부장은『나를 이완용이로 만들겠다는 소리야, 나는 경찰을 위해서 이 고생을 하고있어』하고 벌컥 화를 냈다.
윤 장관은 말을 계속했다.
『미군이 아무 말 않는데 자네가 왜 이러는 거야. 나는 경찰을 이양 받아도 좋고 안 받아도 좋아. 전부 무시해 버리고 새로 경찰을 조직하면 자네가 따질 테야, 어쩔 테야. 괜히 고집 부리지 말고 순순히 내놓게.』
조병옥 경무부장은 얼굴이 벌개지면서 가방에서 서류를 꺼내어 3가지 요구조건이 적힌 부분을 만년필로 죽죽 그어 지워버리고 서류뭉치를 윤치영 장관 앞에 밀어 던진 뒤 일어나서 나가 버렸다.
윤 장관은 황희찬 내무부차관을 시켜 조병옥 경무부장의 미군 고문을 통해 인수인계를 하게 했다. 경찰권은 9월l5일에야 실무자들간에 완전 인계됐다.
조 부장은 경찰권을 넘겨주면서 『경찰권 이양에 제하여 경찰 요우 제위에게 고함』이란 성명서를 발표했다.
조병옥 부장은 이 성명서에서『해방 후3년간 국립경찰의 총책을 맡아 경찰전직원 제위와 감고 생사를 함께 한 나로서 경찰제위와 결별케 됨에 감개무량함과 석별의 정을 금치 못하는 바이다』고 말하고 『경찰은 영구한 존재이고 정치동향여하에 따라 변형되는 것이 아니니 신 정부방위에 헌신적으로 노력해달라』고 당부했다.
윤 장관은 경찰권을 이양 받자 다음날로 경무 총감부와 감찰서를 폐지하고 경찰계급 가운데 감찰관을 없앴다. 이와 함께 각시·도 경찰은 시·도지사 산하에 예속시켰다.
정부가 수립되면서 미군정은 48년8월15일 0시를 기해 폐지됐다.
「하지」사령관은「콜터」장군과 교체 돼 3년 동안 온갖 풍파를 겪으며 정들었던 한국을 떠나게됐다.
「하지」장군은 아무도 몰래 혼자 떠나려했지만 조병옥 박사는 동고 동락했던「하지」를 그대로 떠나 보낼 수 없었다
조 박사는 이 대통령에게 건의해「하지」장군을 위한 환송회를 열기로 했다.
「하지」장군 환송만찬회는 그해 8월24일 창덕궁에서 열렸다.
이 자리에는「하지」장군과 개인적 관계가 좋지 못했던 이승만 박사부처도 참석했다.
국악이 연주되고 분위기가 익어가자 이승만 박사가「마이크」앞에 나타나「하지」장군의 공적을 치하했다. 이 박사는『「하지」장군은 우리나라 독립에 끼친 공이 이루 말할 수 없이 크다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 일례로 그는 국립경찰을 창설했습니다. 장군이 이 땅을 떠나도 우리 삼천만국민은 그를 영원히 기억할 것입니다』고 말해 만장의 박수 갈채를 받았다.
박수가 끝나자「하지」장군의 답사가 시작됐다.
『내가 이 나라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다면 오로지 군정 경무부장 조병옥 박사를 비롯한 여러 부장들의 덕이라 생각합니다.
특히 조병옥 경무부장은 철저한 반공주의자로 좌익 및 중간파는 물론 민족진영으로부터 중상모략을 수 없이 받았으나 나는 그것에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그 예로 나는 군사령관 재임3년 동안 조 박사를 비난하는 투서를 무려 4만8천여 통이나 받았습니다…』
「하지」는 자신의 공을 동고동락했던 조병옥 경무부장 이하 군정부장들에게 들리는 아량을 보였다.
그해 8월27일 상오10시「하지」중장은 김포 비행장에서 특별군용기 편으로 한국을 떠났다.
조병옥 박사는 그 뒤 대통령특사로 임명돼 그해 9월6일 우방각국을 예방하기 위해 장도에 올랐다.
수도청장으로 용맹을 떨쳤던 장택상씨는 내무부장관 취임설이 떠돌기도 했으나 나에게 수도청장자리를 물려주고 신내각의 외무장관으로 임명됐다.<계속>【김태선】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