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더스·레드포드, 명품건축 영혼을 불러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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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베를린 필하모닉 콘서트홀. 건축가 한스 샤로운이 설계한 것으로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건축물 중 하나로 손꼽힌다. [사진 베를린영화제]
빔 벤더스(左), 로버트 레드포드(右)

“그동안 영화는 건축을 배경으로만 썼죠. 건축의 영혼 근처에는 가지도 못했고요. 만약에 건축물이 말할 수 있다면 우리에게 무슨 얘기를 했을지 살펴보고 싶었습니다.” (빔 벤더스)

 “그 건물(소크 연구소)에는 영혼이 있어요. 건축 영화를 만드는 건 큰 도전이었지만, 제 영화가 건축에 담긴 영혼의 실체를 설명해준다면 더할 나위 없겠죠.”(로버트 레드포드)

 ‘파리 텍사스’ ‘베를린 천사의 시’ ‘부에나비스타 소셜클럽’을 만든 빔 벤더스 감독(69)과 영화배우 로버트 레드포드(78)가 함께 손잡고 3D 건축 다큐멘터리를 만들었다. 이번 베를린영화제에서 화제작으로 떠오른 ‘문화의 성전’(Cathedrals of Culture·156분)이다.

 ‘문화의 성전’은 벤더스의 새로운 3D 프로젝트라는 점에서 눈길을 모은다. 그는 3년 전 전설적인 안무가 피나 바우쉬(Pina Bausch)의 독창적인 예술세계를 다룬 3D 다큐 ‘피나’(Pina)를 만든 바 있다. 뿐만 아니다. ‘문화의 성전’은 그동안 영화계에서는 좀체 소재로 다뤄지지 않던 ‘건축’ 자체에 초점을 맞추고, 벤더스와 레드포드 등 총 6인의 감독이 협업했다는 점에서도 화제다.

건축가 루이스 칸이 설계한 미국 소크 연구소.

 벤더스는 이 다큐를 가리켜 ‘건축물의 영혼(soul)에 관한 3D 프로젝트’라고 말했다. 영국 인디펜던트와의 인터뷰에서 그는 “표현주의 영화는 물론 ‘메트로폴리스’ ‘블레이드 러너’ 등 공상과학 영화에서 건축은 결정적 역할을 해왔음에도 대부분의 영화는 건축에 무관심했다”고 꼬집었다. 이 다큐에서 새롭게 조명을 받은 건축물은 독일 베를린 필하모닉 콘서트홀, 미국 소크 연구소, 프랑스 퐁피두센터, 러시아 국립 도서관, 노르웨이 할덴 감옥, 오슬로 오페라 하우스 등이다. 이중 벤더스는 독일 건축가 한스 샤로운(1893~1972)이 설계한 베를린 필하모닉 콘서트홀(1963년)편을 연출했다. 70년대 마일즈 데이비스 공연을 보기 위해 이곳을 처음 찾았다는 벤더스는 “세상에 그런 곳은 처음이었다. ‘아, 내가 지금 미래로 들어서고 있구나’하는 것을 몸으로 느꼈다”고 설명했다. 이 영화는 ‘독특한 공간 구조로 이뤄진 건물 자체가 거대한 악기’라는 메시지를 전한다.

 영화는 샤로운과 당시 나치당의 일원으로 그를 설계자로 낙점했던 폰 카라얀의 관계도 조명했다. 오케스트라를 콘서트홀의 중앙에 설계하는 혁명적인 공간배치는 당시 엄청난 권력을 갖고 있었던 카라얀의 전폭적 지지가 없었다면 실현되지 않았을 것이라는 것이다.

레드포드는 미국 샌디에이고에 자리한 소크 연구소편을 감독했다. 소아마비 백신을 개발한 조나스 소크 박사가 1962년 건축가 루이스 칸에게 설계를 의뢰한 이 건물은 수도원처럼 엄숙하고, 사색적인 공간을 갖춘 곳으로 유명하다. 레드포드는 “소크 연구소는 예술과 과학을 하나로 결합하려고 했던 과감한 시도였다” 고 말했다.

 이밖에 이 영화에는 미카엘 글라보거· 마이클 매드슨 감독 등이 참여했다. 벤더스 감독은 “영화감독과 건축가는 강박증에 가까운 장소 감각을 갖고 있고, 비전을 실현하기 위해 협업해야 하는 등 여러 점에서 닮았다”고 말했다.

이은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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