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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술 피하고 응급조치만|수출업계 지원 대폭확대의 뜻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경기전망 흐려 부실기업파동 재연될 우려
국제경제여건이 워낙 불투명하기 때문에 경제의 근본적 수술보다「캠퍼」주사에 의한 응급조치로 금년을 어떻게 넘겨보려는 속셈인 것 같다. 수출지원강화시책이 바로 그것이다.
수출업계에선 환율인상 등을 요청한데 반해 경부에선 금융·세제 면의 지원강화로 우선 숨을 트고 보자고 작정한 것이다.
금융·세제 면에서의 수출지원조치는 파격적이라고 할만하다. 수출금융융자비율이「달러」당 3백 50원에서 3백 80원으로 인상되었고 비축금융기간이 연장되었으며 또 세금징수유예조처도 취해졌다. 업계요구가 묵살된 것은 수출금융금리의 인하, 원자재비축한도의 증액정도인데 이는 현 단계로선 받아들이기 힘들다는 것이 재무부의 입장이다.
재무부는 지난 10월 28일 수출금융기간 자동연장품목의 확대 등 수출지원 8개 조처를 취한데 이어 11월 12일 수출금융융자비율인상 등 6개조치를 추가했다. 이로써 금융·세제 면에서 취할 수 있는 모든 수출지원조치를 다 동원했다고 밝히고 있다.
물론 정부가 이런 조치를 취했다고 해서 수출업계가 만족했다고는 볼 수 없다. 업계의 입장에서 보면 정부지원은 항상 미흡하기 마련이다.
재무부에선 1, 2차 수출지원조치로 수출업계에 돌아가는 자금지원이 약 1천 5백억 원, 연간 부담경감이 1백 50억 원 정도라고 설명하고 있다. 수출업계에 연 1백 50억 원 정도의 부담경감을 위해 금융·세제 면의 지원조처가 다 동원된 것이다. 연 1백50억 원이면 우리나라수출을 연 50억「달러」로 보아「달러」당 3원 정도다. 이로써 환율조정이라는 가격「메커니즘」을 통하지 않고 금융·세제조처를 통한 수출지원의 효과가 얼마나 제한적인가를 실감케 한다.
따라서 아무리 수출지원조치를 강화해도 수출업계의 채산성 및 국제경쟁력을 높여 악화일로에 있는 국제수지추세가 역전되리라고는 기대할 수 없다. 다만 뜻이 있다면 신용상거래격감과 내수부진으로 심한 자금난을 겪고있는 수출업계에 우선 발등의 불을 끄게끔 자금공급을 다소 늘려준다는 정도다.
원론대로라면 현 단계에선 총수요억제정책을 강화, 경쟁력이 취약한 기업을 일단 정리하여 전체적인 산업체질을 강화할 때다. 그러나 우리 나라는 고용 및 사회문제 때문에 그런 교육계를 감내할 수도 없고 또 그럴 용기도 기대하기 어렵다. 환율조정이라는 근본적 수술도 부작용을 더 두려워하고 있다. 대문에 우선 응급처방으로 문제를 이월시켜 놓고 세계경기 호전을 기대해보자는 생각인 것 같다.
그 동안에 국제수지는 계속 악화되고 기업체질도 계속 악화될 수밖에 없다. 어찌 보면 이번 취한 응급조치는 잠재적 부실기업에「링거」를 주사하며 연명시키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장기불황시의 응급조처 계속은 앞으로 또 한번의 대규모 부실기업파동으로 결과될 우려가 충분히 있다.
앞으로 유일한 탈출구는 세계경기 호전인데 경기전망은 점점 어두워지고 있다는데 문제가 있다. 지난 상반기만 해도 내년 초부턴 세계경기가 상승세에 들것으로 전망됐으나 현재의 추세를 보면 회복되기는커녕 점점 더 불황의 바닥으로 빠져들고 있다.
무역의존도가 70%가 넘는 한국으로선 매우 우울한 현상이 아닐 수 없다. 결국 한국경제체질을 너무 해외 의존적으로 기형화시킨 정책오도가 다시 한번 지적되지 않을 수 없다.
세계경기회복전망이 지극히 어두운 형편에서「캠퍼」주사로 시간을 벌려는 경제정책은 확실히 문제 거리다. 세계경기도, 한국경제도, 또 경제정책도 난기류 속에 휘말려 정신을 못 차리고 있는 것이다.<최우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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