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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방 전략을 보는 여-야의「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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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여-야가 가파르게 맞서있어 개헌특위 안 처리문제는 진전이 없다. 개헌문제는『정권을 내놓으라는 얘기가 아니냐』는 정권논쟁으로까지 발전돼가고 있는 상태. 강경 대 강 경으로 맞서있는 여와 야의 속셈은 무엇인가? 상대방의 전략저변을 탐색해 보는 서로의 입장도 다르기만 하다.

<개헌반대 논도 여러 갈래>
『신민당에서 요구하는 대로 이것, 저것 다 빼버리고 나면 유신헌법에 무엇이 남겠는가? 그렇다면 유신체제는 무너져 버리고 마는 것 아닌가』-.
정부·여당 연석회의에서 어느 공화당 고위간부는 신민당의 개헌요구에 이런 강경 반응을 보였다,
반응강도는 다르지만 공화·유정회 간부들이 개헌 논을 반대하는 것은 모두 같다.
『대통령 임기(78년)가 끝나는 1, 2년 전에 개헌 논을 제기해도 늦지 않다』(이효상 공화당 의장 서리)는 시기상조 논으로부터『「예수」가 부활해도 개헌이란「개」자도 고칠 수 없다』(민병권 유정회 총무)는 결사반대 논에 이르기까지 반대 논은 여러 갈래다.
정부·여당이 개헌반대를 하는 기본이유는 개헌은 곧 정권에 대한 탈 권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신민당이 주장하는 대로 개헌을 해놓으면 현 집권체제의 골격이 무너져 권력지탱이 불가능해진다고 보고 있다.
△대통령의 직선제 △대통령의 3선 금지 △통일주체국민회의와 간선국회의원의 폐지 △대통령의 긴급조치권폐지 등은 바로 현 체제와 정면충돌되는 야당의 개헌 줄거리들.
여당 안의 온건 논은 기껏 신민당이 국회 밖으로 뛰어나갈 때 올 혼란과 소요가 시국수습에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한다고 보는데서「명분」을 주어달래 보자는 것에 불과하다. 개헌을 들어주자는 사람은 소수의견으로도 거의 없는 상황이다.
개헌불가 논을 고집하는 여당권은 개헌을 꼭 해야겠다고 나서는 신민당의 강경 전략에 몇 가닥「오산」이 담겨져 있다고 보고 있다.
첫째는 야당이 곧 정권을 잡을 것으로 보고 있다는 점이「오산」으로 지적되고 있다.
공화당의 길전식 사무총장은『김영삼 신민당총재가 정권을 노리는 모양이지만 정권이 동요될 리도 없고 더구나 야당한테는 절대로 안 넘어 갈 것』이라고 보고 있다.
이해원 대변인 같은 이도『김 총재의 정권 차원적 개헌주장은 집권층의 저력과 내외정세, 야당 스스로의 수권능력에 본 오판을 하는 것』이라고 분석.
다음으로는 야당이 의원직을 사퇴하면 곧 선거가 실시되고 그렇게되면 공천 권을 행사하는 등 김 총재자신의 야당 안 지도력이 강화될 것으로 오산한다는 견해. 여당권의 이런 평가는 다분히 정략이 서린 대야 공격용 무기로 쓰이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여당권에서 또 하나「오산」으로 꼽는 것은 개헌투쟁이「포드」미대통령 방한과「타이밍」을 맞추고 있다는 것.

<포드 오기 전 강경책 쓸 수도>
7일의 공화당 당무회의에서 일부 야당지도층의 사대주의적 언동에 대한 규제문제를 거론한 것도 이와 관련되는 움직임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정부의 한 고위관리는『동방예의지국에서는 귀빈을 맞이할 때 마당을 쓸고 비질을 하는 법인데 야당이 시끄럽게 굴면 되겠느냐』면서『미국대통령의 방한 때문에 꼭 취해야할 조치를 늦추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경우에 따라선 강경 조치도 불사하겠다는 입장을 암시했다.
어느 공화당간부는 신민당의 강경 노선이 당내의 견제·경쟁작용 때문이라고 풀이하면서『김영삼 총재자신이 후퇴하면 스스로 죽는다고 생각하고 있고 간부들은 온건 논을 펴려해도「사꾸라」로 들릴 까봐 선뜻 나서지 못하는 것 같다』고 진단했다.

<"여 간부들 재량권 없는 탓">
강경하게 나가되 원내총무를 통한 대화는 계속키로 한 신민당은 여당 측의 시종일관한 강경 방침에 대해서는 대체로『상황을 잘 인식하지 못한 탓』『여당 간부들이 재량권을 갖지 못했기 때문』으로 분석.
김 총재가 특위 안에 대해『이 길만이 자기네(여당을 지칭)도 사는 길』이라고 한말이나『대통령에게 제대로 보고조차 못하지 않는가』라는 의원들의 말이 그것이다.
또 신민당은 여당 측이 야당의 결의를 오판했다고 보고 있다. 김형일 총무는『여당이 개별접촉을 해보니 야당 안에 온건 논이 우세하다고 하는데 그것은 오판』이라고 했다. 사적으로 만났을 땐 누구나 원만히 돼 나가기를 바란다고 말하지 않겠느냐는 것.
오히려 여당이 협상으로 시간을 끌면서 야당의원들을 개별격파 하려고 해 야당을 자극. 강경 쪽으로 몰고 있다고 보는 사람도 있다.
야당사람들은『여당이 개헌을 하면 정권이 무너진다는 생각을 너무 심각하게 하는 모양』이라 면서도『바로 정권을 내놓으라는 얘기는 아니다』고 말한다. 여당이 정권「노이로제」에 걸려있기 때문에 협상에 진전이 없다는 일부 야당견해는 이런데서 나온 것으로 볼 수 있다.
김형일 총무 같은 이는『처음부터 여당간부들에게 기대를 건 것은 아니다. 밀고 나가다 보면 정치적 결단이 나올 수도 있다고 보았다』고 했다. 김 총무는『정부·여당이 야당의 개헌요구를 한낱 야망의 주장으로만 보는 것은 잘못이며 학원·종교계·언론계움직임 등이 의미하는 것을 모르는 것』이라고 야당만의 개헌운동으로 보려는 여당의「오판」을 걱정하고있다.

<강경 일변도엔 몇 가지 요인>
그러나 신민당이 개헌추진문제에 강경 일변도로 나가는데는 몇 가지 요인이 있다. 우선 개헌추진에 강경 논을 선도해온 김영삼 총재의 시국관과「리더십」의「스타일」을 들 수 있다.
김 총재는『국민을 속이는 협상은 하지 않겠다』는 자신의 말처럼「국민」의 동향에 민감해 국민의 편에 서서 나가는 것이 가장 안전한 길이며 현재 국민은 야당의 강경 투쟁을 원하고 있다고 판단한다.
김 총재는 소속의원들을 끌고 가는데 있어 의원 각자의 생각을 미리 타진, 최대공약수를 찾아 그 방향으로 몰고 가는 것이 아니라 의원들이 명분상 반대할 수 없는 방향을 설정, 분위기로 끌고 가는 방법을 취하고 있다.
이 때문에 신중론을 가진 사람이라도『개헌에 열의가 없는 것처럼』또는『의원직에 연연해하는』인상을 줄까봐 말하기 어려운 분위기가 당내에 깔려있다.
일부 비주류가 김 총재 보다 한술 더 뜨는 강경 논을 제기하는 것도 같은 이유다. 김 총재에 대한 정면공격이 명분상 불리하므로 오히려 더 강경 논으로 김 총재의 강경이 벽에 부닥치도록 유도하는 작전을 쓰고 있다.
「포드」미대통령의 방한, 외국에서의 한국문제보드, 학원·종교계의 사태 등 객관적인 여러 여건도 신민당이 강경 쪽으로 기우는 요인들. 『이 정도의「무드」가 조성돼있는 11월이 가장 좋은 시기』라는 생각들이 많은 의원들에게 깔려 있다.
반면 이들은 방학이 시작되고 추위가 닥치는 12월부터를 걱정하고 있다. 말하자면「월동대책」이 어렵다는 얘기. 여야가「강경」으로 가파르게 맞서있는 파국직전에서 김 총재는 개헌「원칙」과 그렇지 못한「현실」의 벽을 어떻게 뚫고 나갈 것인지.
공화당은 개헌을「전제」한 특위구성은 절대로 들어줄 수 없다는「마지노」선을 최후까지 지키려 하고 있다. <조남조·송진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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