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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절하고 반항한 시민계급 청년 지식인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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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2호 28면

요한 볼프강 폰 괴테(Johann Wolfgang von Goethe, 1749~1832) 독일을 대표하는 시인이자 소설가, 극작가. 24세 때 집필을 시작해 타계하기 1년 전 완성한 『파우스트』(1, 2부)를 비롯해 『빌헬름 마이스터』(수업시대, 편력시대), 『서동시집』, 『이탈리아 기행』 등의 작품이 있다.

남자라면 누구나 이런 사랑을 해보고 싶었을 것이다. 여자라면 누구나 이런 사랑을 받아보고 싶었을 것이다.

박정태의 고전 속 불멸의 문장과 작가 <53>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과 요한 볼프강 폰 괴테

“내가 그녀의 남편이라면! 아아 신이여, 저를 만들어 내신 당신이 그런 기쁨을 내게 마련해 주셨다면 저는 평생 쉬지 않고 기도를 올렸을 것입니다. 그녀가 나의 아내라면! 이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그녀를 내 품에 꼭 껴안을 수 있다면….”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Die Leiden des jungen Werthers)』은 240년 전 유럽 독자들의 감정을 송두리째 뒤흔들어 놓았다. 책만 베스트셀러가 된 게 아니라 베르테르 향수가 시장에 나왔고 로테의 실루엣 그림까지 팔렸다. 급기야 주인공의 비극적인 최후까지 따라 하려는 청년들이 베르테르처럼 푸른 연미복에 노란 조끼 차림으로 권총 자살하기도 했다. 요즘 유명 연예인이 자살하면 그 인물과 자신을 동일시해서 모방 자살을 시도하는 현상을 가리키는 ‘베르테르 효과(Werther Effect)’란 말도 여기서 나온 것이다.

뭔 연애소설 한 편에 그리 난리법석을 피웠나 하고 의아해할 수도 있겠지만 그게 아니다. 이 작품은 주인공 베르테르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시민계급에 속한 한 청년 지식인의 좌절과 반항을 그려낸 최초의 소설이기도 하다. 그러니까 18세기판 비트 세대나 히피 문학쯤으로 보면 된다.

나폴레옹도 젊은 시절 이 소설을 일곱 번이나 읽었다고 하는데, 나는 처음 그 말을 들었을 때 지어낸 이야기라고 여겼다. 그런데 지금은 정말로 그랬을 거라고 생각한다. 틀림없이 눈물도 흘렸을 것이다. 베르테르의 가련한 사랑과 자살이 슬퍼서가 아니라 시민계급의 당당한 지식인이면서도 귀족들의 파티장에서 쫓겨나고 그 일로 인해 사람들한테서 받아야 했던 모욕에 공분을 느껴서였을 것이다. 이 장면을 보자.

베르테르가 C백작의 만찬 초대를 받았는데, 마침 그 자리에 상류계급의 오만한 신사숙녀들이 모여든다. 그가 아무것도 모른 채 그냥 남아있자 다들 눈치를 준다. 마지막으로 백작이 다가오더니 창문 옆으로 데리고 간다. “당신도 이미 알고 있겠지만 우리 모임의 관습은 참 이상해서 당신이 여기 있는 게 모두들 불만인 것 같아요.”

베르테르는 조용히 물러난다. 그런데 다음 날 동네에는 백작이 그를 쫓아냈다는 소문이 파다하게 퍼지고, 가는 곳마다 사람들은 그에 관해 험담을 해댄다. 그는 미칠 것만 같다. “차라리 누구든지 대담하게 맞대놓고 비난한다면 그자의 가슴에다 칼이라도 꽂아줄 텐데.”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은 실제 사건을 소재로 한 것이다. 괴테는 법무실습을 하던 중 법관 부프의 딸 샤로테를 사랑하게 되는데, 이미 외교관 케스트너와 약혼한 상태인 그녀의 마음을 얻지 못하자 상심한 채 그들 곁을 떠난다. 그런데 얼마 뒤 친구 예루살렘이 유부녀를 짝사랑하다 귀족사회에서 축출당하고 마침내 케스트너에게 권총을 빌려 자살했다는 소식을 듣는다.

괴테는 자신의 실연을 1부로, 예루살렘이 자살하기까지의 과정을 2부로 엮어 서간체 소설을 썼는데, 자신이 직접 겪은 실화를 바탕으로 하다 보니 더 절절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아아, 이 공허! 내 가슴속에서 뼈저리게 느끼는 이 무서운 공허! 한 번만, 단 한 번만이라도 그녀를 내 품에 꼭 껴안을 수 있다면 이 끔찍한 공허는 완전히 메워질 수 있을 것을.”

베르테르는 자살할 권총을 로테의 남편 알베르트에게 빌리는데, 전날 밤 그가 미친 듯 키스를 퍼부었던 로테가 총을 꺼내 하인에게 건네준다. 그 말을 듣자 베르테르는 오히려 기뻐한다. “권총은 당신의 손을 거쳐서 왔습니다. 당신이 먼지를 털어주었다고요. 당신이 손을 대고 만졌던 권총이기에 나는 천 번이나 그것에다 키스를 했답니다. 로테! 당신이 내게 무기를 내주었습니다. 나는 당신 손에서 죽음을 받는 게 소원이었는데, 아아 이제 그렇게 되었습니다.”

사실 이 작품은 괴테가 스물다섯 나이에 질풍노도의 문학적 분위기에 휩쓸려 4주 만에 완성한 것이다. 요한 페터 에커만이 쓴 『괴테와의 대화』를 보면 말년의 괴테는 이 소설이 소이탄 같다며 출간된 후 단 한 번만 읽었다고 얘기한다.

“그것은 펠리컨처럼 나 자신의 심장의 피로 먹이를 주어 만든 것이라네. 거기에는 나의 가슴속에서 나온 내면적인 것이라든지 감정과 상상이 너무도 많이 들어있어. 나는 그것을 보기만 해도 무서워져. 그것을 낳게 한 병적인 상태를 다시 느끼게 될까 봐 두려워하는 거야.”

평생 아홉 번이나 열렬한 사랑을 했던 괴테는 마지막으로 일흔넷의 나이에 19세 소녀 울리케에게 청혼한다. 그는 거절당하지만 이 일을 계기로 『마리엔바트의 비가』를 쓴다. 그는 베르테르가 그랬던 것처럼 진지하게 삶을 살았고 사랑했고 많은 고통을 받은 것이다. 괴테는 이렇게 말한다.

“누구든 이 작품이 오직 자신만을 위해 쓰인 것이라고 생각되는 그런 시기가 있을 걸세. 만일 그런 시기가 자신의 생애에 단 한 번도 없다면 불행한 일이겠지.”



박정태씨는 고려대 경제학과를 나와 서울경제신문, 한국일보 기자를 지냈다. 출판사 굿모닝북스 대표이며 북 칼럼니스트로 활동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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