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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 멜로디, 중앙SUNDAY서 뽑아 시로 엮어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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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2호 10면

시 형식의 끊임없는 모색으로 유명한 박찬일 교수는 “제2권의 출간은 장담할 수는 없다”며 “독자로서 계속 밑줄을 쳐가며 ‘언어 중의 언어’를 메모할 것이다”고 말했다. 조용철 기자

3월 18일 창간 7주년을 맞는 중앙SUNDAY에서 시어(詩語)를 뽑아내 시집을 펴낸 시인이 있다. “시는 말과 세계 사이에 존재하는 일종의 점이지대(漸移地帶·transition belt)다”고 표현하는 박찬일 추계예술대학교 교수(문예창작)다.

시집 『중앙SUNDAY-서울 1』 낸 박찬일 교수

『중앙SUNDAY - 서울 1』 시집.

 제목은 『중앙SUNDAY-서울 1』. 모자이크나 콜라주를 연상시키는 시집이다. 수록된 시들은 중앙SUNDAY 기사를 분할해 배치만 새로 한 것들이다. 종결어미만 어조와 리듬을 바꾸기 위해 손질했다. 김석준 평론가, 반경환 『애지』 주간, 유안진 시인 등은 이 시집에 대해 “한국 시문학사 속의 기념비적인 시집”이라고 평가했다.

 박 교수는 『‘북극점’ 수정본』 『근대: 이항대립체계의 실제』 『독일 대도시 시 연구』 등 시집 8권, 평론집 5권, 연구서 3권을 낸 시인이자 학자다. 춘천 출신으로 연세대 독문학과(학사·박사)와 독일 카셀대학(박사후과정)에서 공부했다.

중앙SUNDAY는 일요일 아침의 즐거움
-시인에게 중앙SUNDAY는 무엇인가. 어떻게 애독자가 됐나.
 “우리나라 최고 수준의 일요일자 신문, 주간지다. 주변 분들, 특히 지식인·예술가들에게 많이 권유하고 있다. 철학·역사·정치를 망라하는 매체이기에 보다 넓은 문학과 예술을 지향하는 데 도움이 된다. 개인적으론 일요일의 낙(樂)이다. 어느 날 집 앞에 중앙SUNDAY가 배달됐다. 중앙일보 구독자니까 지국에서 한번 보라고 넣어준 듯하다. 즉시 구독 신청을 했다. 내용에 비해 가격이 너무나 저렴하다.”

 -시집을 구상한 계기는.
 “늘 그만그만한 기존 시집들에 대한 항의의 의미가 담겼다. 속되고 과격하게 표현한다면 ‘작정하고 벌인 엿 먹이는 짓’이다. 프랑스 예술가 마르셀 뒤샹(1887~1968)은 남성 소변기를 전시회장에 갖다 놓고 ‘샘’이라는 미술품으로 둔갑시켰지 않았는가. 자기가 만든 것도 아니었다. 뒤샹은 머리로 만드는 개념예술의 시대를 본격적으로 개막했다. 『중앙SUNDAY-서울 1』도 넓게 보면 개념예술의 범주에 속한다. 남의 것인 기자·학자의 글, 카피에디터의 제목 등을 내 것이라고 우기는 식이다. 뒤샹의 ‘샘’과 마찬가지로 『중앙SUNDAY-서울 1』도 이런 의도적인 ‘우기기’다.”

 -이런 방식의 시집은 한국에서나 전 세계에서도 최초인가.
 “국내 최초다. 과문해서 그런지 모르나 단행본 시집으로선 해외에서도 전례가 없다. 한두 편 정도의 시가 이런 형식으로 나왔을 수는 있다.”

 -산문 형식인 신문에서 시가 나올 수 있나.
 “근원적인 진리인 ‘멜로디’를 노래하는 시어(詩語)는 시인의 머리에서만 나오는 것이 아니라 기사에서도 나오는 것이다. 신문을 포함, 철학서·교양서·에세이 등 모든 텍스트에서 인간과 우주의 근원을 드러내는 멜로디를 충분히 추출할 수 있다. 중앙SUNDAY에서 멜로디성이 있는 내용을 추출한 다음에는 ‘회화’에서 신문지를 오려 붙이는 콜라주(collage) 기법으로 시어들을 연결했다. 태양 일곱 개를 짜깁기 하니 북두칠성이 드러나듯 『중앙SUNDAY-서울 1』이라는 국자가 보이게 됐다. 콜라주가 회화뿐 아니라 문학에서도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려고 했다.”

 -멜로디란 무엇인가.
 “멜로디는 ‘이 세계는 왜 존재하는가’ ‘왜 차라리 무(無)가 아닌가’ ‘인류는 과연 기억될 수 있는가’ 같은 질문에 대한 답으로, 우주의 가장 깊숙한 곳으로부터 들려오는 원초적인 목소리다. 멜로디 개념의 원천은 독일 철학자 쇼펜하우어(1788~1860)의 음악형이상학·천재론이다. 그는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에서 영혼·세계·신(神)과 같은 이념은 천재 음악가들이 포착하는 음악으로만 나타난다고 말했다. 다른 것으로 표상되기는 힘들다는 것이다. 멜로디가 문학예술의 전유물은 아니다. 중앙SUNDAY에 담긴 멜로디를 잡아내려고 노력했다.”

 -‘인류는 과연 기억될 수 있는가’는 어떤 의미의 질문인가.
 “현생 인류는 네안데르탈인들과 ‘권력투쟁’을 벌였다. 네안데르탈인은 ‘다행히’ 그들을 기록할 수 있는 종에 의해 멸종됐다. 승리가 영원한 것은 아니다. 우리도 다른 종에게 패배할 수 있다. 온난화도 우리의 적수다. 결과가 파국일 수도 있다. 우리가 기억되지 않을 수도 있는 것이다.”

 -콜라주 기법을 구사한 배경은? 몽타주와 다른 점은?
 “이 시집은 중앙SUNDAY에 나오는 모든 인물에 대한 오마주이기도 하다. 콜라주는 전체 인용, 몽타주는 부분 인용이다. 도시화·산업화·분업화로 예술세계는 모더니즘 시대에 진입했고 예술은 세계의 총체성을 더 이상 재현할 수 없게 됐다. 여기에서 한 줄, 저기에서 한 줄 식으로 얻어 온 것을 짜맞추는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모아놓고 보면 총체성에 근접할 가능성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깔렸다. 콜라주는 사라진 총체성을 복원하려는 시도이자 희망이다. 한편 철학은 ‘많음’에서 진리가 드러날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 콜라주의 산물인 『중앙SUNDAY-서울 1』에 수록된 시의 행(行)들은 상호 긴밀함이라든가 내적 긴장감이 없다. 행들로 꾸며진 ‘많음’ 속에서 진리가 드러나기를 희망했다.

 예컨대 ‘중앙SUNDAY-서울, 미장센’이란 시의 한 대목은 이렇게 돼 있다.
 ‘시작과 끝이 자기 의지대로 되지 않는 인생/언젠가 사라지는 것이 건축만의 숙명일까?/4악장에서 그녀의 피아노가 트럼펫을 확고한 조연으로 만들었다.’
 박 교수는 이처럼 복수의 기사에서 추출한 문장들을 시의 골격으로 삼았다.

 -멜로디라는 음악적 요소, 콜라주라는 회화적 요소가 만난다는 것의 의미는?
 “탈경계(脫境界)다. 스위스 화가 파울 클레(1879~1940)는 회화와 음악의 만남에서 탈경계를 이야기했다. 예술사뿐 아니라 현대 우주론의 함의도 탈경계다. 중력을 만나면 빛이 휜다. 이 세계는 곡선 우주다. 빛이 직선으로 계속 갈 수 있다면 우주는 무한하다. 빛이 꺾인다는 것은 우주가 유한하며 다만 경계가 없을 뿐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무경계(無境界)는 탈경계를 예고한다.”

시인은 사명감에 불타는 우주의 기록자
-이 시집의 철학적·시대적 배경은?
 “오스트리아 미술사가 알로이스 리글(1858~1905)의 관점을 바꾸어 말한 ‘몰락하는 시대의 예술가들은 몰락하는 예술을 의욕한다’는 말로 배경을 요약할 수 있다. 예술가들이 작품의 완성도에 더 이상 신경 쓰지 않는다는 의미를 내포하는 말이다. 부채사회로 상징되는 자본주의의 위기, 새로운 메시아주의에 대한 기대, 세계의 화약고로 떠오르고 있는 동아시아의 현실, 대량 살상에 대한 무감각 등은 우리가 ‘몰락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는 것을 암시한다. 몰락에 대한 적응뿐 아니라 도전이 시인의 도전 양식이다. 시인의 삶은 ‘진리가 없을까 조금 더 가보는 식(式)’이 규정한다고 생각한다. 몰락하는 시대는 진리가 더욱 절실해진 시대다.”

 -『‘북극점’ 수정본』에 나오는 시들은 제목이 위가 아니라 밑으로 가 있다.
 “제목이 앞에 있는 것이 어쩌면 비정상적이다. 글을 쓰고 나서 한 마디 토를 다는 것, 그게 제목이라면 꼭 위에 있을 필요가 없다. 제목도 시의 일부이기 때문에 제목에도 멜로디·선율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제목이 위에 있을 필요는 정말 없다.”

 -시인은 어떤 사람인가.
 “정열과 사명감 같은 것으로 불타는 사람이다. 읽고 쓰는 것만으로도 조금은 행복하고 미래를 생각하는 한숨으로부터도 해방된 자유인, 성과주의나 스펙 같은 것으로부터도 자유로운 별종이다. 하이데거에 따르면 존재는 인간에게 말을 걸려고 한다. 시인은 존재가 말하는 멜로디를 알아듣고 받아 적는 서기(書記)이자 예언자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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