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애정의 변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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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나는 왜 살고 있는가? 인생의 목표는 무엇인가?』하는 문제를 누구나 매일 생각하는 것은 아니다. 청년기에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이런 의문들이 그저 겉돌며 스 쳐가 버리게 된다. 중년기에 이르면 인생에 회의를 느끼는 순간을 좀더 자주 만나게 된다. 특히 가정주부들은 남편보다 빨리 이 문제와 부닥치게 된다. 남편과 아이들에 대한 애정의 집중에서 자신의 문제에로 여유가 깃 들게 되는 것이다.
『중년 남성들은 일반적으로 사회활동에 전력을 쏟게 된다. 이 시기에 대부분의 성패가 결정 나기 때문이다. 10여년 동안 남편과 아이들 뒷바라지에 매달려 왔던 아내는 문득「그럼 나는 뭐냐?」라는 생각을 시작한다. 이 항변에 바람직한 해답을 얻는 것이 중년여성의 정신건강을 지키는 열쇠가 된다』고 김광일 박사(경희대 부속병원 신경정신과장)는 말한다.
대체로 중년후반기에는 모든 사람의 인상 판도가 드러나게 된다. 남편의 사회적·경제적 지위가 낙착됨에 따라 아내는 희망과 꿈 대신 자신들의 한계를 인정하게 된다.
『내 인생이 이런 것이었다면 무엇 때문에 그렇게 큰 꿈을 가지고 노력해 왔을까. 허무하기만 했다. 친구들과 친구들의 남편 중에는 나 보나 크게 성공한 사람도 많은데 이제는 그들을 따라가긴 틀렸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이들도 나를 만족 시켜 주지 못했다. 남편 월급을 한푼 두 푼 아껴 가계를 꾸려 가는 것도 무의미하게 생각되고 차라리 결혼을 안 했었으면 좋았을 걸 생각해 보는 때도 있다.』
여학교를 졸업하고 21세 때 결혼하여 4남매를 둔 한 대학교수의 아내는 이렇게 말한다. 48세인 그는『그렇다고 남편을 미워하는 것은 아니지만 남편의 제자인 여대생들을 만나면 「결혼하지 말고 자기 일을 하라」고 권한다』고 말한다. 여학교 때 공부를 잘했었다는 그는 공부를 계속해서 그 자신이 대학교수가 되지 못한 것을 후회하고 있다.
그러면 이 부인이 원해 마지않는 여류대학 교수들의 중년은 어떨까. 『학문하기 위해 일생을 두고 쏟았던 노력을 다른데 썼다면 지금보다는 경제적으로라도 훨씬 풍족해졌을 것이다. 그렇다고 지금까지 학문을 하는 동안 내가 이룬 게 무엇인가. 생각할수록 회의가 생긴다』고 52세의 한 여교수는 말한다. 그는 1년 동안이나 정신과 의사의 치료를 받기까지 했다. 후배 교수들로 인한 압박·보람없는 나날의 강의·자신의 학문에 대한 회의가 얽힌 불안신경성 증세 때문이었다.
경희대부속병원의 경우 정신신경과에 오는 여성환자의 70%이상이 중년부인들이다. 그들은 갑자기 팔·다리가 마비된다거나 가슴이 두근거리고 소 화가 안 된다거나, 정신이 흐려진다거나 하는 등의 증세로 많은 약을 먹고 병원을 찾아다니다가 정신과로 오게 된다.
『서구의 경우「히스테리」환자는 성적 억압 때문에 10대에 가장 많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30대 이상에서 가장 많이 일어난다. 사회부조리·가족제도의 모순에서 오는 갈등이 많고 자기자신의 문제에 부닥쳐서 해결해 가는 능력이 일반적으로 우리나라 사람에게 부족하기 때문이다』고 김광일 박사는 지적한다.
김 박사는 정신적으로 한 전기를 맞게 되는 중년부인들에게『인생의 가치를 가 연 적인 것·물질적인 것에서만 찾으려 하지 말고 보이지 않는 것에 더 큰 가치를 부여하라』고 충고한다. 냉장고나 자동차로 인생을 재지 말고 정신적인 기쁨·인간애·자연섭리에 대한 애석 등 일상적인 것에서 보람을 찾으라는 것이다. 『이것은 매우 평범한 말이지만 가장 중요한 정신건강의 원칙』이라고 그는 강조 한다.
이러한 아내의 심경을 이해하고 대화를 나누어「함께 나이 먹는 사람끼리의 공감」을 갖게 해주는 것이 필요하다. <장명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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