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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의 경기|박승<한은 특수연구실 과장·경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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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세계적으로 당면하고 있는 불황은 예상보다 더 심화하고 있는데 우리 나라도 이제 본격적으로 불황국면에 들어가고 있음을 최근의 경기지표가 보여주고 있다. 당면한 문제점은 경기·국제수지·물가 등 세 가지로 집약될 수 있다. 9월중의 월례 경제동향 보고에 나타난 지표를 보면 경기와 국제수지는 한층 더 악화하였는데 물가는 그 상승세를 멈췄다.
즉 8월중 생산은 9%, 경기예고지표는 0·2 포인트 떨어졌는데 재고는 더 늘었으며 국제수지 면에서는 수출신용장 내도 액이 계속 줄고 경상수지적자도 자꾸 커지고 있다. 그런데 도 제 물가는 오히려 0·3%가 내린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지표들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먼저 물가가 안정세를 나타낸 것은 환영할 일이다. 그러나 환자의 열이 내릴 때 그 원인 분석이 중요하다.
물가가 다소나마 내린 것은 수입 코스트 상승요인이 일단 일순 했다는데 크게 힘입은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그 다음 원인이 문제다. 물가의 하락은 공급 증가에서 올 수 있고 수요 감퇴에서 올 수도 있는데 전자의 경우는 이것이 바람직한 것이지만 후자의 경우는 물가안정이 불경기를 대가로 이루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곧 좋은 현상이라고만 볼 수는 없다. 우리의 경우는 바로 후자에 해당한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이와 같이 경기와 물가안정이 서로 거꾸로 도는 톱니바퀴처럼 얽혀서 작용한데 다가 그 수요 감퇴는 주로 수출 쪽에서 오는 것이기 때문에 국제수지가 악화하는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9월의 경기지표들은 한 마디로 말해서 불황국면이 수출부문을 중심으로 하여 우리 경제에 본격적으로 침투하고 있다는 신호라고 풀이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물가를 경제의 체온계라고 말한다. 그러나 우리처럼 구조적으로 대외의존도가 높은 경제에서, 더구나 요즘과 같은 불황국면에서는 내환에서 오는 열은 물가보다도 국제수지에 의해서 잘 측정된다고 볼 수 있다. 일반국민은 경기와 물가에만 민감하지만 국민 경제적 측면에서 현 여건을 감안할 때 국제수지가 더 중요한 과제가 되고있다.
국제수지를 개선하자면 수출을 늘리든지 수입을 줄이든지 불연이면 외채를 더 지든지 해야하는데 수출은 벽에 부딪치고 수입은 계속 늘고 있으며 외국에서 돈을 꾸어오기는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으니 외환사정이 좋아질 리가 없다. 더구나 신용장 내도 액의 추세와 신용장과 수출이행간의 시차, 그리고 불투명한 국내외 경제정세 등을 감안할 때 국제수지 면의 보다 깊은 어려움은 지금보다도 내년에 올 것으로 예상되는데 이 점을 깊이 생각해야 될 것 같다.
이 말은 즉 대응책을 쓸 때에도 이에 시차가 소요되므로 내년에 대한 대비책도 쓰려면 지금부터 써야 된다는 뜻이다. 이와 같은 현재의 경제적 난국에 어떤 비방은 있을 수 없다. 그러나 어떤 경기정책을 써야한다면 외 수와 내수 둘 중에 하나를 택하는 도리밖에 없다.
외수 쪽을 택하면 총 수요억제책으로 물가는 누르고 그 대신 환율을 올린다든지 또는 기타의 적극적인 수출 증진 책을 써서 수출 쪽에서 경기의 숨통을 트는 것이며 내수 쪽을 택하면 이와 반대로 현 환율을 고수하여 물가는 누르고 그 대신 총 수요확대정책으로 경기의 숨통은 소비나 투자 쪽에서 트는 것이다. 어느 쪽이나 정도의 차는 있을망정 물가가 오르는 것은 마찬가지인데 특히 이 점에 대해서 많은 사람들이 혼동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런데 내수 쪽에서 접근할 경우에는 국제수지를 악화시킬뿐더러 그 효과는 모든 산업에 일반적인 것이어서 주된 불황업종이 수출 의존업종이라는 현실에 비추어 그 효과가 약하게 나타날 가능성이 있다. 이런 점에서 외수 쪽에서 경기회복에 접근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된다.
지금의 세계적인 불황의 심도와 지속기간은 오일달러의 환류도와 또 선진국들의 불황에 대한 대응자세에 의해서 가변적이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상태로 보면 오일달러의 환류가 크게 예상을 하회하고 있는데다가 선진국들이 세계경제 확대 적인 방향에서 불황에 대처하지 않고 자국의 불황을 타국에 떠넘기는 소극적인 방향에서 대처함으로써 불황은 예상보다도 갈수록 장기화할 전망이 커지고 있다.
이러한 여건 위에서 우리는『곧 어떻게 잘되겠지』하는 막연하고 안일한 생각은 버려야 될 것 같다.
불황타개를 위한 재고금융이나 수출금융 기간연장 등은 물론 불가피하고 필요한 것이기는 하나 현재의 불황을 다스리는데는 너무 약하고 미봉적이다. 좀더 근본적인 정부의 타개책과 아울러 범국민적인 비상한 내핍체제가 절실히 필요하다고 생각되며 이의 구체적 이행을 위한 정부와 국민간의 협조가 있기를 기대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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