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량무기화 시대의 양 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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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7일부터 실시된 미국의「곡물수출 사전 승인 제」는 사실상 전면적인 곡물 수출통제의 실시라 보아야 한다.
수출 사전 승인 제가 실효를 거두지 못하면 전면 수출 통제 책을 강구하겠다고 하므로 이로써 전면 통제의 실효를 거두려는 것이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곡물 사전 승인 제는 더 말할 나위 없이 세계의 식량수급사정을 크게 악화시키는 것이고 미국 농산물에 기대어오던 다수 식량 부족국가들에 일대 타격을 가하는 것이 된다. 이것은 비단 식량 부족 국의 식량 확보 난이라는 차원에서 뿐 아니라 가격상승으로 인한 부담증대라는 면에서도 그렇다.
우리의 경우 미국의 이 같은 조치는 당장 발등에 떨어진 불과 같은 즉각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다. 우리는 연간 약 3백만t이나 되는 부족양곡의 사실 거의 전부를 미국에 의존하여 왔기 때문이다. 따라서 미국의 이 같은 조치는 우선 3백만t의 부족식량을 확보할 수 없게 하는 것이 되며 그밖에 이 조치로 인한 세계 곡물가격상승으로 막대한 외화부담을 감수하지 않을 수 없게되는 것이다.
우리뿐 아니라 다른 식량 부족국도 그 정도를 달리하면서 타격을 받을 것이 분명하다. 또 이런 의미에서 미국의 이번 조치는 식량을 석유에 못지 않은 무기로 삼게 하려는 것이다.
특히 미국농산물의 수입에 의존하는 아랍 석유생산국에 대해서는 그렇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이번 조치가 얼마만큼 석유무기화에 대항할 수 있는 유효한 것이 될지는 아직 확언할 수 없는 것이지만, 만약 식량무기화가 석유무기화에 대항적인 것이 못된다면 미국 조치는 앞으로 더욱 강화될 것이라고 보아야할 것이며, 수출 사전 승인 제는 전면통제로 바뀔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러면 그럴수록 미국의 농산물에 의존하여오던 나라들은 더욱 타격을 입을 것이다. 이에 있어서도 식량 무기화의 대상에서 제외될 나라들의 입장은 더욱 난처하게 될 것이다. 우리의 경우가 그 중 한 본보기와 같은 것이 될 것이다. 석유무기화로 어렵게 된 경제가 식량무기화로 결정적 타격을 받게 되는 것이다.
우리의 경우 당장에 문제가 되는 것은 막대한 식량 부족 분을 어떻게 확보하느냐 하는 일이다. 심히 화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수입 대상 국을 다변화함으로써 수입증대를 어느 정도 꾀해야 하겠지만 이것은 다른 식량 수입 국과의 경합 때문에 결코 낙관시할 수 없는 일이다. 세계의 식량사정은 그만큼 악화하고 있으며 절대적으로 공급량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태를 호도하기 위해서도 당국은 부족 분의 확보를 위해 백방의 노력을 시급히 서두를 수밖에 없다.
미국의 조치가 식량무기화를 위한 것이 아니라 하더라도 세계의 식량사정은 그다지 좋은 것이 못 된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같은 당면대책뿐만 아니라 장기대책이라는 관점에서도 식량 확보 책을 강구해야할 것이다. 부족 분의 장기적이고 안정책인 공급원을 확보하는 대책을 마련하지 앉으면 안 된다. 세계식량의 과잉공급시대에 적용되었던 임기응변의 미봉책으로 사태를 얼버무리는 방식은 이제 통용되지 않는 것이 되었다고 하겠다.
외국에서의 대대적인 농산물개발 수입을 꾀해야할 계제에까지 이르렀음을 인식해야 하겠다.
그러나 무엇보다 가장 확실한 장기·안정적 공급방식은 국내생산의 획기적인 증산이며 식량자급체제의 완성에 있다. 그렇다면 양곡의 수입의존을 부득이한 것으로 아는 지금의 농업정책의 방향은 근본적으로 재검토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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