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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은 공원이다(1)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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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이종석 기자】7월 하순부터 9월 중순까지 약50일간「유럽」에서 6개국, 그리고 미국과 일본에 걸쳐 40여 박물관·미술관을 돌아봤다. 이 미술관취재여행은 새로운 시설에 관한 견문에 목표가 있었으며 돌아본 박물관·미술관의 대부분이 그런 관점에서 선정되었다. 선진 여러 나라의 박물관·미술관의 소임과 지향을 직접 관찰한 것을 소개함으로써 지금 싹튼 우리 나라의 민간박물관 설치열에 다소나마 도움되었으면 한다. 물론 제한된 기간이므로 각 지역 및 시설과 운용 내용을 두루 살핀다는 것은 불가능했고 더구나 작품에 대해선 일별할 겨를조차 없었다.
공원의 뜻을 우리는 자칫 서울 한복판의 「파고다 공원」이 전부인 것처럼 착각한다.
역사적 유적이 있고 할 일 없는 사람들의 집회소이며 특히 요즘엔 거창한 문을 해 닫고 입장료까지 받아내는 별난 지대. 그래서 드나들기가 쑥스럽고 일일이 이용세를 물어야 하는 부담이 있다.
그러나 구미의 몇 나라를 돌아보면서 공원이 있는 이유를 다소 알만한 것 같았다. 가로수 밑에 「벤치」두세 개 놓인 소규모부터 수만명에 달하는 큰 규모에 이르기까지 누구나 아무 부담없이 들어가 쉬는 곳임을 알만 했고 잠시 잔디 위에 뒹굴어도 잔소리가 없었다. 말하자면 쉬는 데에는 여하한 수속이나 금제 등이 가로거쳐서는 안되겠다는 것이고, 그 나름대로 심신의 완전한 휴식을 취하려는 것으로 해석된다.
오늘날의 박물관·미술관 시설은 그런 휴식이라는 점에서 공원과 매우 상통하는 바가 있다.
그건 어느 특별한 부류만을 위한 것이 될 수도 없으며 비록 귀한 물건을 간수한 곳일지라도 관람자로 하여금 심신의 부담을 최소한으로 줄여 주어야 한다. 그러면서 쉬는 시간에도 무엇인가 얻는 게 있기를 바라는 현대인의 심리를 가장 정확하게 포착해야 한다는 것이다.
새로운 안목에 의하여 가장 현대적으로 꾸며졌다는 박물관·미술관 등 공익의 사회 교육 시설은 바로 이런 관점의 실현을 가리키고 있었다. 국제박물관위원회(IC0M)가 추천한 몇몇 주요 미술관은 진정한 ,휴식의 중심지 역할을 하기 위해 갖가지 조건을 설비했고 그래서 공중의 직접적인 욕구에 대응하려는 노력이 역력했다.
새로운 박물관의 그런 노력 가운데 외관상 두드러진 것은 특히 옥외의 자연 환경이다. 대부분의 박물관들이 공원 속에 세워져 있거나 공원에 이웃하고 있는 게 통례이지만 그 중에도 남불「니스」인근의 「매그」미술관이나 「덴마크」「코펜하겐」에서 1백여리 떨어진「루이지아나」미술관은 그 대표적인 본보기로 꼽힐 만하다.
재단에 의해 운영되는 이 두 사설 미술관은 자연상태의 숲을 최대한 살려 그 일부를 조각이 있는 정원으로 꾸몄고 옥내에서도 밖의 아름다운 풍치를 한껏 바라볼 수 있게 했다.
아무리 좋은 것이라도 많은 미술품을 단번에 감상한다는 것은 딱딱하고 피곤한 일이며 그
피로를 푸는데는 자연 이상이 없다. 또 자연환경의 아름다움에 이끌린 나머지 박물관을 접근하게 된다는 사실도 사회교육사업의 매우 주요한 방향이며 과제인 것으로 해석됐다.
반세기 이전에 건립된 유수한 박물관·미술관에는 옥내에 조그마한 온실 같은 「돔」을 만들어 화초와 조각품을 놓은 예가 종종 있다. 근래 건립한 민속관에는 전시실 안팎으로 얕은 개울이 흐르게 꾸며 미관상으로나 혹은 기타 여러 가지 효용면에 실험하는 예까지 있다.
박물관·미술관을 단순히 작품의 보존과 전시를 위해서만 세운다는 것은 확실히 낡은 생각이다. 새로운 시설이 우선 자연의 입지 조건부터 고려했다는 인상은 『부담 없는 감상』 과 『휴식의 중심지』를 만들려는 의도로 밖에 볼 수 없다.
현대적 시설로서 「프랑스」가 자랑하는 「매그」미술관은 고송이 우거진 산중턱에 세운 작은 규모의 현대미술관이다. 그 지방에서 나는 재료를 써서 지은 이 미술관은 돌담에 이르기까지 시골 정취를 풍기고 있으며 건물의 벽돌담·연못 하나 하나가 「샤갈」「미로」「피카소」니 하는 당대의 쟁쟁한 미술가들의 작품들이다. 그래서 자연 환경과 건물과 전시실이 유기적으로 연관돼 있으며 실내외가 한 덩어리의 자연스런 전시장이 되었다.
「루이지아나」미술관은 보다 아름답고 광활한 자연을 갖고 있다. 해안의 넓은 숲에 기존하는 옛「루이스」씨의 저택에 잇대어 연쇄식의 길고 긴 단층 전시실을 지은 것이 특이하다. 전시실 안에서는 정원이 두루 내다보이게 꾸몄고 따로 조각이 있는 산책로와 전망대도 설치했다.
이 같이 박물관을 자연환경과 유기적으로 연관시키려는 경향은 넓은 의미에서 공원적인 성격이다. 그래서 옥외에 숲과 물, 화단과 잔디밭, 조형물과「벤치」를 풍성하게 갖춰 미술품 감상과 자연에 대한 인간의 향수를 직결하려 꾀하는 것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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