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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리해 낳은 뿌리깊은 배타 감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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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8·15사건후 악화일로를 치닫았던 한·일양국의 긴장관계는 위기직전에 타협안이 마련됨으로써 일단 수습된 셈이다.
그러너 양국사이에 가로놓인 여러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니다.
앞으로 한·일관계가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게 되면 문제는 이제부터 시작된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앞날의 한·일관계가 국교정상화 후 과거 9년간의 역사의 되풀이가 아니라 새로운 요인의 개입에 의헤 좌우된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이번 사태는 양국간의 순탄한 관계진전을 가로막는 저해요인이 얼마나 뿌리깊은 것인가를 다시한번 우리에게 상기시켜 주었다.
결과적으로 지나간 9년동안의 우국관계가 저해요인을 해소 시키는데 별로 크케 기여한 바 없었음을 입증해준다.
광범하게 퍼진 강렬하고 뿌리깊은 양국민의 악감정과 편견을 바탕으로한 한·일양국의 긴장관계는 정부수준의 공식적 관계이상의 광범하고 지구적인 노력없이는 실질적인 해소를 기대할 수 없음을 재인식 시켜준 것이다.

<복합적인 저해요인>
만일 한·일관계가 새로운 좌표의 정립을 통한 재출발을 기도한다면 양국의 역점은 한·일긴장 상태를 조성한 진원의 정확한 파악을 통해서 그 해소방법을 찾아내는데 두어야 할 것이다.
한·일관계의 경우 진원이 되는 요인은 단일적이 아니라 복합적이며 정치적인 것만이 아니라 심리적 문화적 조건이 포함되고 있다.
양국민의 상대방에 대한 감지작용이 크게 왜곡되어 있으며「매스컴」이 왜곡화에 결정적인 영향으로 작용하고 있는 실정이다.
가해자에 대한 적대감정도 개인적 차원에서 집단, 그리고 민족적 차원에 이르기까지 복원적이며 양국간의 상이한 문화적 배경과 국민성의 차이에서 오는 배타의식은 국교수립 후 상호 접촉을 통해 해소되기보다 오히려 심화되어 왔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이처럼 뿌리깊은 갈등과 긴장의 진원을 보다 심각하게 인식한다면 앞날의 한·일관계의 기본방향도 여러 면에서 재검토 되어야 할 것이다.
즉 일본은 과거보다 더 진지하게 한국 국민을 의식한 대 한관을 바탕으로 한·일관계의 발전을 추구해야 한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일본은 한국 국민의 반일감정이 얼마나 광범하고 뿌리깊은 것인가를절감했으리라 믿는다.
한국민의 반일감정을 단순히 역사적인 것, 일제시대에 누적된 반일감정의 연속이나 여정으로 보아 넘긴다면 큰 오산이라는 것이다.
그속에는 전후 그리고 국교 수립후의 일본에 대한 한국민의 반감이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일본 국민의 왜곡된 한국친을 시정하기는 커넝 오히려 부채질해온 일본의「매스컴」과 자국민의 왜곡된 한국관에 대해 아무러한 시정도 마련해 오지 못한 일본정부의 책임도 크다고 생각된다.
한국 국민이 괴거에 집착해서 고정적인 반감을 버리지 못하는 것도 곤란한 일이나, 대륙침략 당시의 배타적인 민족감정을 바탕으로 형성된 한국관을 계속 고수하는 한 우국의 관게는 호전될 길이 없다.
아무리 자유사회라 하지만 진실과 동떨어진 편견이나 환상의 포로가 되어있는 국민을 방치해두고 있는것은 일본의 장래를 위해서는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약소민족에 대한 침략행위와 더불어 형성된 일본 국민의 국제의식 속에는 힘이나 폭력에대한 집념이 깊게 뿌리박혀 있으나「정의」와「권리」에 대한 존중은 결여되어 있는 것이 특징이다.
말하자면 전형적인 권력정치만이 국제관계의 전부로 인식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이 일본과「아시아」제국과의 경제관계나 정치관계에도 반영되고 있으며 동남아에서 근래에 있었던 배일감정의 원인이 되고있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이게도 반성할일이 너무나 많다.
국가적으로나 국민으로서 일본을 대해온 우리의 자세가 얼마나 떳떳하고 위엄있는 것이었던가를 자문해야 한다.
목전의 이익에만 급급해서 비굴한 자세를 취한적은 없있던가?

<편향적 관계 고쳐야>
국가이익보다 사적이익의 충족에만 혈안이 되어 국가적 손실읕 가져오는 행위는 없었던가? 깊이 자성해 볼일이다.
정부는 앞으로「대 일경제 의존을 탈피하고 대 일관계에 있어서 대등외교를 추진하겠다』고 강조한 바 있다.
지금까지의 편향적인 대일관계를 지양하겠다는 것이다.
대등외교가 구체적으로 어떻게 구현되느냐는 두고 보아야 할 일이나, 대등이라는 뜻을 물리적 힘의 균형으로 국한시켜 이해하지 않는다면 대등외교란 결국 자세의 문제로 귀결된다. 그러나 바람직스러운 것과 가능한 것 사이에는 커다란 차가 있는 것이며, 과연 김 외무가표명한 대등외교 지향론이 어느정도 가능성의 영역으로 구체화 될지는 큰 관심사가 아닐 수 없다.
새로운 좌표위에서 한·일관계의 내일을 전망할 때 제일 먼저 강조해야 할 것은 대일관계에 있어서의 주체성의 확립이다.
즉 지금까지의 일방적이고 의타적인 태도, 그래서「구걸외교」라는 말이 나올 정도의 저자세의 외교「스타일」을 버려야 할 것이다.
지금까기 공식·비공식·정부·민간「레벨」에서 수 없이 많은 한국인이 한국과 일본사이를 왕래했다.
위원회니 간담회니「심포지엄」이라해서 여러층의 접촉이 이루어져 왔다.
그외에도 문화인「스포츠」계 예능계 등 다방면에 있어서 한·일교류가 추진 되어왔다.
그러나 이 모든 노력이 거둔 성과란 무엇일까?
대일관계에 있어서 대등한 관계를 확립하려면 대등한 자세와 식견을 가진 국민이 있어야한다.
한국 국민 가운데는 상당수의 인구가 일본을 안다고 자처하고 있다.
물론 일제하의 체험에서 얻은 일본에 대한 지식이나 대중문화의 물결을 타고 흘러들어오는 전후 일본에 대한 피상적인 정보에서 얻어진 견해 일 것이다.
그러나 오늘의 일본은 많은 한국인의 영상속에 자라잡고 있는 그대로는 아니라는 것을 강조 해야한다.
많은 일본인이 한국을 몰리해하고 있는 것처럼 많은 한국인 역시 일본을 잘 모르고 있다.

<공존의 가치관 필요>
이 상황을 시정하는 길은「매스컴」이나 다른 정보「미디어」를 통해서 비교적 정학한 자료에 의한 홍보활동을 적극적으로 퍼나가는 것 뿐이다.
궁극적으로 한·일양국의 국민간에 실질적이고 현실적이며 공존될 수 있는 기본적 가치관을 바탕으로한 화해와 그것에서 우러나오는 협조없이는 평탄한 한·일관계의 진전은 기대할수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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