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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로병사가 상사지만…|최두선 형의 별세를 애도함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아침 일찍 너무도 갑작스럽게 최두선 형의 부음을 듣고 한동한 슬픔을 가눌 수 없었다. 생로병사가 인생의 자연 법칙으로서 죽고 사는 일이 너무도 흔한 상사이기는 하지만, 오랜 세월을 함께 나라를 걱정하고 의논해 온 나로서는 동기를 잃은 것 이상이다.
내가 처음 최형을 사귄 것은 「와세다」 대학 유학 시절이었다. 최형은 나이나 학년으로나 내게는 2년 선배였고 장덕수·이광수·현상윤 형들과 함께 늘 한국 학생의 명성을 높여 최형의 존재는 내게 하나의 귀감이었다.
더우기 최형과는 몇 년 동안을 한방에서 지내게 되어 최형은 직접·간접으로 내게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최형과 나와의 우의는 「와세다」를 졸업한 후 그가 중앙학교장으로 있을 때 나를 교사로 끌어들여 계속되었고, 그후 언론계의 중진으로서, 국무총리로서, 혹은 대한적십자사 총재로서 활약하면서도 나를 잊지 않고 의견을 물어오곤 했다.
최형의 별세가 못내 가슴 아픈 것은 그것도 그것이지만, 그가 우리 시대에서는 찾기 어려운 고절하고 청렴 강직한 성격의 소유자라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그는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공사를 엄격히 구별하던 분이었다.
한가지 예에 불과하지만, 그는 공직에 있으면서 공용객초를 마련, 손님들을 접대했는데 그 자신은 단 한개비라도 공용객초에는 손대지 않고 자기 담배만을 피웠다. 사려 깊고 건실하며 매사에 언행을 삼가며 조금이라도 남에게 누를 끼치지 않는 그의 생활 신조는 주위의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저절로 머리를 숙이게 했다.
한마디로 최형이 거의 완벽하게 갖춘 근신과 독행은 전통적인 우리 나라의 선비 자질을 정통으로 이어받은 것이다. 그의 별세는 선각자요, 인격자며 애국자인 귀중한 분을 잃은 것이다. 더 무엇을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인가.
유한 체계에서 무한 체계로 돌아가신 고인에게 부디 그 길 편안하시기만 빌 따름이다.
이병훈 <학술원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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