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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드·전중 회담 앞서본 미·일 관계|실질 문제 협의보다 분위기 개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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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한·일 관계가 65년 국교 정상화이래 최고조로 긴장된 가운데 「다나까」 일본 수상은 「포드」 미국 대통령과의 회담과 멕시코·브라질·캐나다 등 미주제국 순방을 위해 12일 떠난다. 일본은 「닉슨」이 사임하고 「포드」가 대통령직을 승계한 후 미국의 대일 정책의 향방에 대해 적잖은 신경을 써온 터라 오는 21일 「워싱턴」에서 있을 미·일 수뇌 회담은 적어도 표면상으로는 신임 미국 대통령에 대한 일본의 경의를 표명하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이번 회담을 11월19일로 예정된 사상 최초의 현직 미국 대통령의 일본 방문과 관련지어 볼 때 미국과 일본은 어딘가 시차가 어긋나는 듯한 징후가 산견 되는 양국 관계를 재정립키 위한 일련의 정지 대책을 협의하게 될 전망이다.
「오끼나와」 반환으로 전후 처리를 끝맺은 미·일 관계는 일본의 대미 출초 경향에 대한 미국의 불만에서도 나타난 것처럼 새로운 차원의 관계로 옮겨가는 듯 했으며 「다나까」 수상은 72년말의 「닉슨」·「다나까」 「호놀룰루」 회담을 『대등한 미·일 관계의 시작』이라고 표현한 바 있다.
그러나 그후에 나타난 「오일·쇼크」와 자원 문제 등을 계기로 일본은 여러면에서 대미 의존도가 뿌리 깊다는 사실을 재인식하기에 이르렀다.
그렇기 때문에 연내에 있을 두차례의 미·일 수뇌 회담에서 일본은 『영속적인 미·일 협조체 제를 확인』 (「기무라」 외상) 하려는 것이며 이를 위해 「포드」 신 정권과 충분히 대화함으로써 의사 소통을 꾀하는 한편 문단 없는 대화의 「루트」를 확립하고 싶어하는 것이다.
일본의 경우처럼 절실하지는 않다 해도 「포드」의 미국 행정부 역시 「해빙시대」의 국제사회에서 일본의 중요성을 평가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포드」 대통령이 취임 후 첫 외유 대상국을 일본으로 정했다는 것은 이런 평가를 상징하는 것이며 특히 「닉슨」 시대의 순탄치 못했던 양국 관계를 새로운 궤도에 올려놓을 필요성이 있다고 판단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워싱턴」에서 있을 미·일 수뇌 회담에서는 대체로 「해빙」 이후의 세계 정세·한반도를 비롯한 「아시아」의 제반 문제를 논의하고 「에너지」·식량·자원 문제 등에 관해서도 의견을 교환하는 한편 이러한 대화를 토대로 정치·경제·안보면에서 미·일이 어떻게 긴밀히 협력해 갈것인가를 협의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미국은 「아시아」에서의 일본이 다해야 할 역할과 관련, 일본의 방위 및 경제적 분담을 거듭 요구해 올 공산이 큰데 「슐레징거」 미 국방장관과 「야마나까」 일본 방위청 장관도 곧 회담을 갖고 이 문제를 협의할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은 또한 구체적으로 한반도 문제에 대한 미국의 견해를 타진하고 그 긴장 완화 대책도 협의하게 될 전망이며 미·일·중·소 등 4대 국회의 소집과 「남북 상호 승인에 의한 평화 보장」 방안 실현 가능성에 대해 미국 측과 의견을 교환할 가능성도 있다.
미·일 수뇌 회담에서 8·15 저격 사건 이후 악화 일로를 걷고 있는 한·일 관계에 대해 미국이 어떤 견해를 보일 것인지, 그리고 한반도 정세에 대한 미·일간의 감각상의 차이가 어떻게 조정될 것인지 우리의 관심거리다.
북한으로부터의 군사적 위협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는 「기무라」 일본 외상의 발언과 『한국의 안보는 일본 안보에도 긴요하다』고 한 69년의 「닉슨」 합동 공동 성명의 내용을 「한반도 전체」 안보라고 확대 해석하는 「기무라」의 일방적 해석은 부분적으로는 미국의 공식 입장과 거리가 있다.
그래도 「워싱턴」은 아직 그 문제에 대해서 「코멘트」를 않고 있다. 「포드」와 「다나까」 회담에서 동경이 연발하는 이런 「불협화음」을 미국이 어떻게 다룰 것인지 주목된다. 65년 한·일 타결을 배후에서 촉진할 수 있었던 미국이지만 지금은 「키프로스」 사태에서 드러났듯이 동맹국간의 분쟁에서 효과적인 중재를 못한 경우도 있다. 파국으로 치닫는 한·일 관계에 대해 아직도 침묵을 지키고 있는 미국이 수뇌 회담을 통해 어떤 견해를 밝힐 것인지도 관심거리가 아닐 수 없다.
「키신저」가 국무장관으로 남아 있는 한 미국의 대일 정책에 급격한 변화가 있을 것 같지는 않다.
「포드」는 일본에 미지의 인물이다. 그래서 일본은 살얼음을 딛는 자세로 「포드」를 대하면서 「닉슨」 이후의 새로운 미·일 관계를 타진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미·일 회담은 실질 문제의 협의보다는 분위기의 개선에 더욱 역점이 모아질 것이란 전망이다.

<외신부>

<전후 미·일 관계 약사>
▲「샌프런시스코」 평화 조약으로 미국의 일본에 대한 직할 통치에 종지부 (52년3월20일).
▲1급 전범으로 「스가모」 형무소에서 복역한 「기시·노부스께」 (안신개) 집권, 「워싱턴」에서 「아이젠하워」 대통령과의 이른바 『「골프」 회담』으로 미·일 신시대 개막 (57년1월5일).
미국은 미·소 협력의 존속과 「아시아」의 안정 세력으로서의 중국의 발전이라는 전후 구상이 무너지자 비군사화, 민주화라는 일본 점령 정책을 전환, 일본을 극동 방위의 협력자, 미국의 군사 기지로 성장시켰다.
▲「아이젠하워」 대통령의 방일, 『안보 파동』으로 좌절 (60년6월16일). 그 직후에 열린 「케네디」·「이께다」 (지전) 회담으로 미·일 관계는 『대등한 「파트너」』로 출범했다는 평가받음.
그러나 미국의 관점은 다극화 현상으로 「얄타」 체제가 붕괴되고 월남전으로 우방의 협조가 아쉬운 60년중반대까지는 『전후 기본 상태』를 그대로 가지고 일본을 상대.
▲「닉슨」 대통령, 71∼72년 외교 교서에서 일본의 경제 「에고이즘」 힐난, 이른바 「닉슨·쇼크」 촉발. 60년에 4백50억「달러」였던 일본의 국민총생산 (GNP)은 70년에 1천9백60「달러」로 올라 일본을 초강대국 자리에 올렸다.
이 시기의 일본의 GNP 성장율 15·9%는 같은 기간 미국의 6·7%의 수배가 넘는다.
▲1969년11월 「닉슨」·「사또」 (좌등) 공동 성명에서 합의한 「오끼나와」 반환으로 미·일의 『특수 관계』 청산 (72년5월15일).
▲「닉슨」·「다나까」 「호놀룰루」에서 회담. 「다나까」는 이 회담을 『대등한 미·일 관계의 시작』이라고 표현. (72년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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