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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수 펀드 넷 중 셋 '기다린 보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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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8면

1.71%. 국내 주식형 펀드 중 10년 이상 버틴 펀드의 비율이다. 말 그대로 희소한 펀드들이다. 일단 ‘장수’에 성공했다면 수익률도 괜찮을 가능성이 크다. 운용사가 그만큼 애정을 갖고 있는 펀드라는 방증인 데다 수익률 나쁜 펀드가 장기간 살아남기는 쉽지 않았을 테니 말이다.

 10일 펀드평가사 제로인에 따르면 설정된 지 10년이 넘은 국내 주식형 펀드(운용순자산이 10억원 이상)는 모두 110개다. 이들의 평균 누적 수익률은 147.75%다.

 장수 펀드의 수익률은 한마디로 ‘세월의 힘’이다. 코스피 지수는 지난 10년간 124%가량 상승했다. 김태훈 삼성증권 연구원은 “10년 넘게 500~1000 선을 머물던 코스피 지수는 2005년 1000 선을 돌파한 뒤 빠르게 2000포인트까지 올라갔다”면서 “장기 펀드의 수익률은 이 같은 코스피의 흐름과 일치한다”고 말했다

 설정액 100억원 이상인, 어느 정도 규모가 되는 펀드만 따지면 10년을 넘긴 장수 펀드의 수는 69개로 줄어든다. 이들 중 75% 이상인 52개의 10년 수익률이 코스피 상승률을 웃돈다. 코스피 상승률의 두 배 이상 오른 펀드도 11개다. 2002년 설정된 ‘신영마라톤’의 10년 수익률은 330%다. 2001년 만들어진 ‘미래에셋디스커버리’도 10년 수익률이 224%다.

 이는 일종의 ‘대표선수 효과’로 설명된다. 제로인 황윤아 연구원은 “장수 펀드는 각 운용사를 대표하는 펀드인 경우가 많아 운용사에서도 관리에 신경을 쓰는 예가 많다”고 말했다. 장기적인 안목으로 종목을 선별하는 투자 방식도 수익률을 높인 요인이다. 한국투자증권의 이민홍 상품전략부 팀장은 “대개 펀드들이 종목을 선정할 때 전자·자동차 업종 같은 당시 유행을 따라가게 되기 마련인데 장기 펀드들은 장기적으로 좋아질 수 있는 업종 발굴에 더 신경 쓴다”며 “단기적인 수익률이 낮을 수 있어도 장기적인 수익률은 탄탄한 편”이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국내에서 장수 펀드가 드문 건 장기 투자 문화가 자리 잡지 못했기 때문이다. 박스권 장세가 이어지면서 투자자들은 주가가 좀 떨어지면 펀드에 돈을 넣고, 오르면 바로 환매하는 단기투자를 반복하고 있다. 운용사들도 유행에 따라 펀드를 양산한다. 이 팀장은 “운용사도 시장 상황에 따라 가치주 펀드가 유행을 하면 너도나도 가치주 펀드를 내놓고, 대형 성장주가 유행하면 성장주 펀드를 쏟아냈다”고 말했다.

 물론 오래 살아남았다고 모두 승자인 것은 아니다. 1999년 설정된 하나UBS의 ‘홀인원 S-3주식’은 10년 평균 수익률이 80.13%다. 코스피 성장률에 비하면 절반밖에 오르지 못한 수치다. 이 때문에 전문가들은 무작정 돈을 오래 묻어두기보다는 펀드 수익률이 장기적으로 안정적인 흐름을 보이고 있는지를 꼼꼼하게 따지라고 조언한다. 장기 수익률이 중요하지만 3년 이상 수익률이 코스피 지수 상승률을 밑돈다면 곤란하다는 것이다. 김태훈 연구원은 “수익률뿐만 아니라 매니저가 얼마나 자주 바뀌는지를 보면 운용사가 얼마나 해당 펀드에 애정을 가지고 있는지 짐작할 수 있다”고 말했다. 장수 펀드 역시 분산 투자라는 원칙에서 예외일 수는 없다. 김 연구원은 “장기 투자를 하더라도 가치주에 주로 투자하는 펀드와 성장주에 투자하는 펀드를 적절히 나누어 투자한다면 투자 리스크를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안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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