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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테러리즘」 풍토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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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대통령 저격사건이 있은 직후 일본에서는 『법적 도의적 책임이 일본엔 없다』는 얘기가 나왔다. 며칠 후에 이것이 아리송하게 정정되기는 했으나 책임이 없다는 발언은 너무나도 일본다운 얕은 논리였으며 그 발언이 정정된 후에도 일본의 관료나 언론의 밑바닥에는 그것이 그대로 깔려있음이 명백하다.
이승만 박사가 대통령직에서 물러나 경무대를 떠날 때 많은 시민들은 연도에서 그에게 박수를 보내며 눈물까지 흘렸다. 이것을 가리켜 한국의 국민은 속없이 착하다고 할지 모르나 그 역으로 본다면 그토록 착한 국민성이 무서운 함성으로 이 박사를 하야케 했다.
착한 한국의 국민은 저격범이 일본인이 아닌 한, 일본에 가혹히 책임을 돌리지 않았을지 모른다. 그러나 일본측이 법적·도의적 무책을 주장하고 나섰기 때문에 한국국민은 무섭게 일본에 문책하고 나선 것이다. 몇 년 전 은행부정융자 관련의 김동선(귀화한인) 사건 때 범인은 「프랑스」에 도주했다가 「홍콩」에서 일본에 인도됐다. 일-불, 일-「홍콩」은 범죄인 인도협정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사소한 경제범 인도에 협조를 받은 일본이다. 그 일본이 지금 국가원수 저격의 한국인 공범(김호룡 등) 인도조차 생각 않고 있다.
저격범은 일본정부가 과오로 발급한 여권으로 일본에서 권총을 휴대했으며, 여권발급과 권총입수에 일본인의 도움을 받았다.
또 그 이상의 모의·교사가 일본에서 이뤄졌다. 표면적으로 드러난 사실만으로 일본엔 도의적 책임이 있으며 또 일본인엔 일본형법상의 법적 책임이 있기 때문에 일본정부가 그를 다스려야할 책무를 가졌다. 더우기 저격범은 한국국적을 가졌다고는 하나 일본에서 교육을 받았고 한국말도 모르는 채 일본에서 성장했다. 범행이 일본적 풍토에서 길러졌다.
일본이 이 사건에 대해 책임이 없다는 말을 할 때 그 이유는 외국인에 의한 외국에서의 범행이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는데, 범인이 일본에서의 외국인인 원초를 따져보자.
일본에서 재일 교포는 외국인이다. 그러나 분명히 특수 외국인이다. 범인 문을 포함한 거의 전부의 교포는 2백만의 피징용인 연고자다. 가고싶어 간 사람들이 아니고 끌려간 사람들이다. 그들에겐 입국사증도 없었고 돌아올 능력도 없었다.
사증은 입국을 희망하며 입국 후 무해유득할 외국인에게만 주어지는 것. 재일 교포는 입국을 희망치도 않았을 뿐 아니라 생활·생명 전체에 피해를 보고 끌려간 사람들이다. 그렇기 때문에 한·일 국교정상화 교섭에서는 교포의 지위문제가 큰 논점이었다. 그 지위문제란 순수 외국인과는 다른 대우, 다른 보호를 의미했었다.
사증 없이 끌려가 보호를 받아야 할 사람이 끌어간 쪽의 사람과 공모해 큰일을 저질렀다면 그것만으로도 끌어간 측에는 원죄적 책임이 있다.
김대중씨 피랍사건과 더불어 한·일 관계의 또 하나의 굴곡점이 된 저격사건에는 몇 가지의 중요한 배경이 있다. 첫째는 일본이 반 한국활동의 기지화 했다는 점이며, 둘째는 일본의 도착된 평화주의다.
일본의 반한 기지화는 최근 1년 사이에 현저해졌다. 일본에서의 공공연한 대한비판, 반한 활동에 대한 일본정부의 방관, 반한 활동에 대한 일부 일본언론의 선동방조에 의해 그 반한 활동은 폭력으로 점화될 소지가 충분히 있었다.
반한 활동의 거점화는 「진보주의」라는 일본특유의 유행에서 가능했다. 이점에 관해 일본의 학자는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명치시대이래 일본에서 좌익적 정책이 시행된 적이 없었고 그래서 좌익적 노선은 젊은 층의 선망처럼 돼, 우익 비판은 신시대를 여는 기수로 갈채를 받는다는 것-.
좌익정권의 경험이 없는 나라도 많고, 진보주의 개혁주의가 인기를 모으는 나라는 일본 외에도 많다.
그러나 일본처럼 「진보주의」가 일그러진 편파주의로 타락한 나라는 없을 것이다. 중공에 대한 편파성으로 인해 「신문은 국론」이라는 말이 일본에서 생겼을 정도다. 또 남북한을 대하는 일본의 언론에서 우리는 이 편파주의를 겪고 있다.
일본의 정치는 언론의 압력을 많이 받고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영국에서는 미국의 언론이 미국국익을 모른다고 냉소하고, 미국에서는 일본의 언론이 국익을 외면한다고 비웃고 있지만 우리가 거기에 시비할 이유는 없다. 그것이 일본적 체제의 강점이라는 견해도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본의 그 정치가 외교 면에서 대한관계에 미쳐올 때 한국의 국민적 감정은 「착한 건」에 머무르지 못할 것이다. 8·15 저격사건은 78년 전, 일인자객에 의해 자행된 민비 시해사건을 연상시키고 있다.
둘째로는 사건의 간접적 배경으로 일본의 「염불 평화주의」를 들 수 있다. 일본정신에는 전통적으로 이 잔혹의 「미화」가 있다. 할복자살의 찬미가 그렇고 「신풍특공대」의 군신화나 전멸을 「옥쇄」로 미화한 것이 그렇다.
지난해 「아테네」공항 유혈사건, 「싱가포르」 저유소 폭발과 인질 납치사건의 일본국내보도에는 이 난동의 젊은이들을 「폭력의 영웅」시 하는 경향이 있었다. 문세광의 「테러리즘」은 이런 풍토에서 배양되었다.
평화주의는 인도주의와 통하는 것. 인도주의를 내세워 재일 동포의 북송을 방관한 일본언론이 처참한 북송교포의 호소와 그 가족의 구조 「캠페인」은 아주 묵살했다. 관념의 편향에 쉽사리 짓밟힌 인도주의다.
8·15 저격사건의 수사에 미온적인 것은 폭력의 옹호나 다름없다. 「아테네」 「싱가포르」 서울이 아닌 또 다른 곳에서의 「테러」가 일본에서 모의 방조되고 교사되는 경우와 그때의 수사가 소극적인 경우를 생각해보자. 일본은 「테러리즘」의 온상이라는 규정을 어떻게 면할 것인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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