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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극적인 일경…배후 추적 난관에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박 대통령 저격 사건 수사를 두고 한·일 양국의 수사 행로엔 큰 전제 요건이 가로 놓여있다. 이는 대통령 저격이란 어마어마한 사건의 수사 전개에 자칫하면 장벽으로 등장할지도 모를 일들이다. 범인 문세광은 범행의 배후 관련자는 조총련 대판본부 생야서지부 정치부장 김호룡(47)임을 자백했다.
이에 따라 한국 수사 당국은 문의 진술 내용을 일본 경찰 당국에 통보, 그곳에서의 수사협조를 요청했으나 『외국(한국)에서의 외국인 (한국인=문세광)진술만으로 관계 수사가 어렵다』고 밝힘으로써 적극적인 수사를 기피하는 듯한 인상이다.
거의 때를 맞춰 배후 조종자로 밝혀진 김호룡이 일본 안에서 공공연히 기자 회견을 갖고, 관련 사실을 부인하는 생떼를 썼다.
일본 수사 당국이 김에 대한 적극적인 수사를 벌이지 못하는 이유는 김의 출두를 요구할만한 자료를 국내(일본)에서 수집하지 못했다는 점과 북괴 공작 지도원의 경우도 「제3국(북괴)의 공작원이라는 이유로 일본 국내법에 위반되지 않는 한 출두 요구 등 방법의 수사를 할수 없다는 것
다만 김호룡 문세광에 대한 한국측의 수사 결과 통보를 바탕으로 조총련 관계자와의 관련 가능성에 대한 조사를 시작했다고만 밝히고 있다.
한·일 두 나라 사이에 범죄인 인도 문제가 크게 논의된 것은 작년 8월 일본에서 발생했던 이른바 김대중씨 납치 사건 때. 한·일 두 나라는 범죄인 인도에 관한 협정을 맺고 있지 않기 때문에 당시 일본측이 주장하고 요구한 용의자 인도 문제를 둘러싸고 의견이 엇갈렸었다.
범인 신도 요청은 국제법에 의거, 보통 지리적으로 국경의 한계가 명확치 않은 나라와 나라 사이에, 범죄를 저지르고 도주하는 경우에 대비, 협정으로 범죄인을 넘겨주자는 약속. 비록 한·일 두 나라는 현재 범인 인도에 관한 협정을 맺고 있지는 않으나 크고 작은 사건이 있을 때마다 서로 수사 자료를 교환하는 등 협조해온 터에 이번 사건과 같은 중대 사건의 경우 일본측의 보다 적극적인 협조를 바라고 있는 것이다.
범인 문의 자백대로라면 김호룡은 문과 함께 살인죄의 공동 정범으로, 아니면 적어도 살인 교사 또는 살인 방조죄를 일본 국내법에 따라 적용할 수 있으며 일본형법(살인죄199조·교사범 61조)에 의해서도 최고 사형까지 처벌할 수 있는 피의자에 해당되는 것이다.
한·일 두 나라의 형사 소송법이 모두 타국의 수사 기관에서의 조서가 증거 능력이 없는 것으로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설령 일본측의 주장대로 이번 저격사건을 두고 일본 국내법을 성급히 적용키 어려운 점이 있다하더라도 일본 형사소송법(189조)에 의해 일용 범죄의 혐의를 둘 수 있고 또 한국측의 통보 내용이 비록 재판에 있어서의 증거 능력이 없는 단순한 제보라 할지라도 수사의 단서로는 충분히 삼을 수 있는데도 김호룡에 대한 자료가 통보된지 만 3일이 지나도록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은 이해되지 않는 점이다.
그 동안 한국의 수사 본부는 8,9건의 수사 자료를 보내주도록 요청했으나 회신을 받은 것은 문의 여권 발급 경위에 관한 것 정도였고, 그나마 일본 「매스컴」에 보도된 후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한 수사 관계자는 설령 문의 자백만으로 김호룡에 대한 수사가 어렵다면 서울이나 동경 또는 제3지역에서 문과 김을 대질하는 방법이나 일본측의 수사 요원을 한국에 보내 문을 조사하는 방법도 있을 터인데 일본측이 성의있는 태도를 보이지 않는데 대해 안타까와했다.
현 단계에 있어 일본측의 이 같은 자세가 계속되는 한 이 사건의 배후 관계를 파헤칠 수 있는 방법은 일본 경찰로 하여금 적극적인 수사에 나서도록 할 결정적인 방증을 수집해 통보해 주는 방법뿐이라고 관계자가 말했다. <정천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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