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시 고수에게 듣는다] 실적보다 가격에 초점 … 싼 건설·운송주 주목을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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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1호 18면

국내외 주식시장이 요동치고 있다. 연초 이후 미국과 독일 증시가 5% 가까이 떨어졌고, 신흥시장 역시 약세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시장에서는 하락 요인으로 네 가지를 꼽고 있다. 우선 아르헨티나에서 시작된 신흥시장 위기가 확산될지 모른다는 우려다. 이 문제는 간단치 않다. 신흥시장이 최고 절정기를 구가하던 2007년 당시 중국의 경제성장률이 14.2%였다. 인도(10.1%), 러시아(8.5%), 브라질(6.1%) 역시 높은 성장률을 기록했다. 지금은 성장 동력이 현저히 약해졌다. 국제통화기금(MF)이 올해 신흥국 경제가 2007년의 절반 수준인 5.4% 성장에 그칠 걸로 전망할 정도다. 신흥시장이 ‘번영기’를 지나 ‘대전환기’에 들어간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시장에서는 신흥국 문제의 초점을 주로 외환위기 가능성에 맞추고 있다. 지난 몇 년간 신흥시장의 외채가 늘어난 건 사실이다. 그러나 이를 부도 위험 증가로 직역해 해석하는 건 적절치 않다. 10년간 호황 덕분에 신흥국의 상황이 많이 개선돼 부도를 견딜 수 있는 힘이 강해졌기 때문이다. 더 큰 문제는 신흥시장 경제가 고도 성장을 끝내고 중간 단계 성장으로 바뀌고 있다는 사실인데, 우리 경제가 오랜 시간 수요 둔화로 인한 고통을 겪을 가능성이 있다.

두 번째는 미국과 중국의 경제가 좋지 않다는 점이다. 그 이유 때문이라면 정말 큰일이다. 선진국 경기 회복이 시장의 저변을 탄탄하게 만드는 요인이었는데 이 부분이 약해질 경우 당분간 주가 하락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중국을 비롯한 신흥국 경제가 구조적으로 퇴진하는 상태에서 선진국까지 후퇴한다면 전망이 암울해진다. 최근 몇몇 경제 변수가 둔화된 게 사실이다. 그렇지만 지난해 4분기 미국의 성장률이 3%대를 회복하는 등 반대되는 지표도 나오고 있어 아직 본격적인 경기 둔화를 얘기할 단계가 아니다.

미국의 테이퍼링(채권매입 축소) 영향도 거론되고 있다. 지난 몇 년간 저금리와 풍부한 유동성이 선진국 주가 상승에 큰 역할을 했다. 이런 상태에서 채권 매입 축소를 통해 풀던 돈의 양을 줄인다면 주가에 부정적인 영향을 준다는 것이다. 이 생각에는 찬동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 11월에 연준이 처음 채권 매입을 줄였을 때는 주가가 올랐는데 이번에는 정반대 현상이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똑같은 정책을 놓고 언제는 주가가 오르고 언제는 떨어진다면 진정한 하락 이유가 될 수 없다.

일러스트 강일구

가장 부담이 되는 부분은 선진국 주가다. 지난 1년반 동안 미국과 독일 주식시장이 50% 가까이 상승했다. 주가가 상승하는 와중에 적절하게 조정을 거쳤다면 지금보다 부담이 덜했을 텐데, 지난해 주식시장은 큰 조정 없이 1년 내내 올랐다. 주가가 너무 높아 사소한 악재에도 요동칠 수 있는 상황이 만들어진 것이다. 주가가 문제라면 시장이 적정 수준에 도달할 때까지 하락세가 이어질 공산이 크다. 주가가 현 수준을 유지한 채 경제나 실적이 좋아져 고평가 부담을 덜어 줄 수도 있지만 그러기에는 시간이 없고 무엇보다 이익을 본 투자자들이 가만있지 않을 것이다.

외부 영향에 의해 국내 시장이 하락하고 있는 만큼 문제 해결 역시 해외 시장을 통해 이루어져야 한다. 선진국의 고평가 부담 해소가 필요한데 조정 초기인 만큼 당분간 주식시장이 약세를 면치 못할 가능성이 커 보인다. 시장이 지지부진한 양상을 벗어나지 못함에 따라 투자 종목을 재구성할 필요가 있다. 주가는 두 개의 힘에 의해 움직인다. ‘실적’과 ‘가격’이 그것이다. 실적이 아무리 좋아도 가격이 높으면 주가가 오르지 못한다. 반대로 실적이 나빠도 가격이 낮으면 주가가 움직일 수 있다. 지금이 이 경우에 해당한다. 경제 지표가 바닥을 치고 1분기 정도 지나면 이익이 늘어나던 과거 예와 달리 3분기가 지나도록 이익 개선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일부 이익이 늘어난 기업도 있지만 숫자가 많지 않아 실적이 시장을 끌고 가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당분간 실적보다 가격에 초점을 맞춰 투자 종목을 선택할 필요가 있다. 이미 그런 흐름이 나타나고 있는데, 지난해 말부터 실적에 문제가 있다고 여겨 한쪽에 밀어놨던, 그래서 주가가 낮아진 종목들이 오르고 있다. 건설과 운송주가 그런 부류에 속한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같은 업종에 있는 주식이라도 주가가 하락하지 않았던 종목은 부진한 반면, 하락폭이 컸던 종목은 빠르게 상승하는 모습까지 나타나고 있다. 일부 대형주의 경우 주가가 금융위기 당시 저점을 밑돌 정도로 떨어졌다. 이들이 해당 업종에서 국내 시장 점유율 1~2위를 다투고 있는 걸 감안하면 한국의 대표기업임에 틀림없다. 부도 위험이 사실상 없다고 볼 때 해당 주식들의 가격이 고점에서 50% 이상 떨어졌다는 건 추가 하락의 위험이 제한적이라는 의미가 된다. 올해 내내 ‘실적’보다 ‘가격’이 주가를 좌우할 가능성이 크다. 지금 같은 패턴이 약해졌다 강해졌다를 반복하면서 계속되지 않을까 생각된다.

가격이 낮은 대형주와 함께 중·소형주도 눈여겨봐야 한다. 대형주에서 대안이 없을 경우 중·소형주를 중심으로 수익률 게임이 나타날 수 있기 때문이다. 증시 환경도 중·소형주에 우호적이다. 작년 5월 이후 대형주와 중·소형주 사이에 가격 차가 벌어졌고, 자금 유입이 줄면서 대형주 이외의 투자 대상을 찾아야 하는 상황이 됐다. 투자자들은 한정된 종목을 가지고 투자해야 하는 입장에서 중·소형주는 좋은 대안 세력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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