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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이 조의 속에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육영수 여사 서거 사흘째인 17일 서울을 비롯한 전국은 한 여름의 주말답지 않게 침울한 조위 「무드」에 젖었다.
일반 빈소가 차려진 청와대에는 이른 아침부터 몰려든 남녀노소 조문객들로 장사진을 이루었고 각 직장에서는 조기를 내걸어 애도의 뜻을 표했다.
또 각 도청에 마련된 빈소에도 지방 사람들이 줄지어 찾아와 경건히 분향, 멀리서 나마 슬픈 뜻을 전했다.
서울의 명동·무교동과 전국 각도시의 유흥 업소에서는 19일까지 영업을 하지 않지로 결의, 자숙하는 분위기를 보였다.

<본관 빈소>
고 육영수 여사의 유해가 안치된 청와대 본관에는 16일 하오 2시부터 각부 장관 등 3부 요인과 주한 외교 사절들의 부부 동반 문상객으로 줄을 이었다.
대 접견실에 마련된 빈소는 「아스파라거스」와 국화로 장식됐고 정일권 국회의장·민복기 대법원장·김종필 총리 및 양지회에서 보내온 조화 꽃바구니가 양쪽으로 놓여졌다.
빈소 가운데에 육 여사의 영정이 놓여있고 왼쪽에는 명정이 걸려있는 가운데 박 대통령은 왼쪽 가슴에 나비 모양의 상장을 달고 줄곧 서서 조객을 맞았다.
조객 중에는 3부 요인 외에 김수환 추기경·이서옹 조계종 종정·한경직 목사·국회의원·곽상훈씨 등 국민회의 운영 위원 10명과 「하비브」주한 미 대사·「우시로꾸」일본 대사 등 외교 사절 32명이 고인의 영전에 분향했고 「스틸웰」 「유엔」군 사령관 등도 문상했다.
이밖에 김의택 신민당 총재대행·양일동 통일당 당수가 정당 대표로 문상했다.
박 대통령은 문상객을 맞는 동안 북받치는 슬픔을 눌러 참는 모습이 역력히 보여 빈소의 분위기는 더욱 침통했다.
박 대통령은 문상객을 맞기 전에 자신의 슬픔을 억누르며 영식과 영애에게 『아무리 슬프더라도 문상객 앞에서는 몸가짐을 단정히 하라』고 말했다.
빈소 안에서는 오른편 맨 앞쪽으로부터 박 대통령·영애·영식·김 총리 내외·육인수 의원·조태호씨·장덕진씨가 자리잡아 문상객을 맞았다.

<일반 빈소>10만여명이 문상
일반 조객을 위해 청와대 별관에 마련된 육 여사 빈소에는 16일에 이어 17일 상오 7시부터 조객이 몰려 이날 정오 현재 10만여명이 분향했다.
빈소는 상오 9시15분부터 일반 조객을 맞기 시작, 조객들의 행렬은 경북궁 돌담을 따라 국군 통합 병원∼중앙청 앞까지 약1km쯤 이어졌다. 오전에는 김덕보 동양방송 사장·박충훈 무역 협회 이사장·김성곤씨·김연준씨·구평회씨·조중훈씨·김남조씨 등이 다녀갔다.
16일에도 7만여명의 남녀노소 시민들이 문상했다.
이승만 전 대통령 부인 「프란체스카」여사가 며느리의 부축을 받고 분향했고 이갑성씨와 이방자 여사, 김옥길 이대 총장 등의 모습도 보였다. 하오엔 중앙 일보 이병철 회장과 홍진기 사장이 찾아와 고인의 명복을 빌었다

<2백여명씩 단체로 묵념으로 문상 대신>
문상객이 중앙청 쪽에서 삼청동에 이르기까지 많이 밀려들자 더위를 피하기 위해 경복궁을 개방, 2만여명의 문상객을 들여보내 차례가 올 때까지 더위를 피하도록 했다.
또 문상객들이 일일이 분향하던 것을 사람이 많아 시간을 절약키 위해 2백여명씩 단체로 묵념만으로 문상케하고 방명록도 없앴다.

<직장·학교>검은 「리번」단 곳도
서울 시내 모든 관청과 학교·은행 등은 16일부터 고 육영수 여사를 추모, 조기를 게양하 고 있다.
17일 서울역 앞 TMO 건물에는 태극기와 성조기가 나란히 반쯤 내려져 게양됐고 중구 남대문로4가 서울시청·중앙 우체국을 비롯, 시내 중심가인 을지로통·종로통의 모든 관공서와 은행등이 조기를 게양, 고인을 추모하고 있다

<종교계>추도 예배·미사·법회
한국 기독교회 협의회(회장 김기동)는 17일 서울 종로 5가 기독교 회관에서 대표자 모임을 갖고 18일 상오 11시 낮 예배 시간과 19일 상오 5시 새벽 예배 시간에 고 육영수 여사에대한 추모 기도회를 전국 각 교회에서 갖기로 했다.
국회 의원들의 모임인 「가톨릭」교회 「데이비스」회는 17일 하오 5시 서울 명동 대성당에서 김수환 추기경 집전으로 고 육영수 여사 추도 미사를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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