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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과 농부의 땅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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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비무장지대를 비무장화하자』는 말은 여간 「아이러니컬」하지 않다. 이것은 바로 한반도의 현실을 보여 주는 한 단면이기도 하다.
정전협정 재l조 11항에 의하면 군사분계선(MDL)을 중심으로 남북4㎞의 폭을 완전 비무장지대로 만들게 되어 있다. 따라서 남쪽 2㎞의 폭과 북쪽 2㎞의 폭은 남북의 관할아래 서로 비무장을 보장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나 근년 「유엔」이 군사에서 제시하는 망원사진을 보면 북한은 철옹성 같은 「토치카」를 쌓아 놓고 있다. 3년전 「유엔」이 군 수석대표 「멜릭스·로저즈」장군의 보고에 따르면 북쪽 비무장지대엔 무려 2백여 개소의 진지가 구축되어 있었다. 오늘 「유엔」군 측이 「비무장지대의 비무장화」를 주장하게 된 현실은 여기에 있다. 「유엔」군 측은 이미 3년전인 71년6월에도 똑같은 제의를 한 일이 있었다. 그후 한때는 상당히 「로맨틱」(?)한 이야기가 오고 갔었다. 비무장의 철야지대를 관광지로 개발해서 세계 시민의 공원으로 개방하자는 의견이 그 하나였었다. 그 가운데는 금강산도 포함되었다.
꿈같은 이야기지만 그럴 법도 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것은 냉전시대의 유물을 자연박물관으로 만들어 만인의 평화공원으로 선용하자는 뜻도 된다. 후세의 사람들은 이것을 전쟁의 위협에 대한 하나의 부정적인 교훈으로 삼을 수모 있을 것이다. 또 우리민족은 동족상잔의 역사적 수치를 이처럼 「유머러스」하게 후세에게 보상했다는 긍지도 가질 수 있다.
배경은 다르지만 제2차 세계대전이전 「스위스」는 지형학적으로 보아 「유럽」의 완충지대이다. 오늘날 「스위스」가 온실처럼 가꾸어진 「이상의 실험극」이 된 것은 우연만은 아니다.
세계 역사상 비무장지대는 일찍이 「베르사유」조약에 의해서 설정된 「라이」강 좌우 안에서 그 실예를 찾아 볼 수 있다.
「베르사유」조약은 제1차 세계대전을 끝낸 연합제국과 「도이치」사이에 이룩된 강화조약이었다. 당시 연합국과 「도이치」는 「라인」좌안 및 우안 인50㎞의 지대에서의 무장을 금지했었다. 그러나 이것은 남북한의 경우와는 다른 『문화적 귀속의 문제』와 관련되어 있었다. 일종의 「문화적 완위」을 시도한 것이었다.
그러나 우리의 휴전선, 아니 비무장지대는 동족간의 충돌을 완화하려는데 뜻이 있다. 이질문화의, 또는 이민족사이의 충돌과는 차원이 다르다.
바로 여기에서 『칼을 녹여 보습(쟁기)을 만들자』(협약의 한 구절)는 「유엔」군측의 제의가 하나의 유사시를 방불케한다」남북의 비무장지대를 「시인과 농부」의 땅으로 만드는 일 이야말로 한반도 평화의 제1보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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