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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비좁은 공공도서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아침 일찍 문을 열자마자 만원이 되어버리는 공공도서관. 그 앞에서 새벽부터 개관을 기다리고있는 중·고교학생들의 장사진. 도심지 골목골목에 마치 접객업소처럼 날로 늘어나고 있는 사설독서실의 간판들. 아마도 이러한 것들은 우리나라가 아니면 구경할 수 없는 너무나도 한국적인 진풍경이라고 해야할 것이다.
이러한 풍경을 보게 되는 마음의 한구석은 얼른 뿌듯해지기도 한다. 폭발하는 향학에의 열의, 눈사태처럼 커져만 가는 교육인구의 팽창 등을 그 풍경 속에서 실감하고, 이 나라의 미래를 질머질 젊은이들의 향학열에 마음이 든든해지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이러한 풍경을 볼 때마다 오히려 마음이 어두워지는 것도 또한 어쩔 수가 없다. 도대체 도서관 시설이 얼마나 비좁고 어설프면, 저토록 이른 아침부터 줄을 서야하는 것이며, 소위 「공공」의 도서관이 얼마나 제구실을 못하면 「사설독서실」이라는 유·소년상대의 영업임에 틀림이 없는 「자리장사」가 판을 치고 있다는 말인지 낯간지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른바 공공도서관이라는데서 하루열람료로 10원·20원의 돈을 받는다는 것부터가 창피한 얘기인데 그 공공도서관의 줄 서기에 한발 늦으면 개관과 동시에 「만원·입장사절」로 되돌아가야 되는 학생들의 수효가 서울시립도서관의 경우만도 하루 1백50명을 헤아린다니 어이가 없는 일이다.
하물며 70원에서 1백원 또는 1백50원씩을 내야 되는 사설 독서실이 번창하고 있다는 사실은 우리나라 도서관 시설의 한심하고 비참한 현실을 너무도 적나라하게 반증하고있다고 봐야한다.
한국도서관협회의 통계에 의한다면 전국위 도서관 가운데서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공공도서관은 국립도서관을 제외하면 모두 68개소에, 열람석은 통틀어 1만7천9백여석에 불과하다고 한다. 평균 50만명의 대 인구에 겨우 한개의 공공도서관 꼴이요, 열람석 한개를 2천명이 이용한다는 통계이다.
더우기 교육인구가 집중하고 있는 수도 서울의 경우를 보면 시내의 공공도서관이 고작 7개소뿐이니 무려1백만명에 한개의 도서관 꼴이요, 그의 열람석 총수는 다 합쳐야 겨우 4천3백22석으로, 사설독서실의 열람석 총수의 5분의1도 못되는 형편이다.
한마디로 말해서 교육인구의 급격한 성장에 전혀 아랑곳없이 공공재정의 사회적 투자가 전혀 이루어지지 않는, 가장 천대받는 부분이 바로 이 도서관 시설이라 할 수 있다. 「호텔」을 짓기 위해서 대지를 팔아 넘기고 갈곳을 찾지 못해 서성거렸던 국립중앙도서관, 「아파트」대지로 팔려서 관악산너머로 멀리 이사가는 국립서울대학교 도서관, 남산으로 쫓겨 올라간 시립도서관, 어느 하나도 교육받은 대량의 두뇌에 미래의 발전을 걸고있는 한국의 체통을 세워줄 만한 도서관 모습이라고 하기가 난처한 꼴이다.
도서관 앞에서 개관을 기다리는 학생들의 장사진은 날이 갈수록 길어지고, 만원으로 입장 사절되어 되돌아오는 학생들 수 또한 날이 갈수록 늘어나는 도서관의 실정을 언제까지 이대로 방치해 둘 것인가. 과연 이대로 괜찮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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