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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색되어 가는 공모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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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같은 시간에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렸던「백양회」와「구상회」의 회원 및 공모작품전이 2일로 막을 내렸다. 지난 4월의「목우회」공모전과 함께 우리 화단의 전통 있는 공모전들이 모두 끝난 셈이다.
화단에서 처음으로 문예진흥원의 보조금을 받았던 이 세 공모전은 금년 들어 더욱 뚜렷해진 공통된 경향을 나타내었다. 그것은 응모자중 젊은 층이 현저하게 줄고 40대, 50대가 늘어났다는 점이다.
그리고『질이 더욱 향상되었다』는 자신들의 연례적인 만족에도 불구하고『저조했다』든가『침체했다』는 평들이 나돌았었다. 『이대로 가다가는 5년 이내에 학생(미대생)응모자라곤 찾아볼 수도 없게 될 것 같다』고 목우회의 한 회원은 말하고, 또 백양회에서는『지금까지 국전출품 등을 못하던 40대, 50대의 화가들이 대거 응모해와 용기 없는 화가들을 끌어들이는 교량역할을 했다』고 말한다.
젊은 층의 호응을 받지 못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동양화 계열의 백양회, 「구상」을 내건 구상회, 「사실」경향의 목우회의 흐름은 모두 세계적인 추세와 거리가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10여년의 전통 속에서 뚜렷한 신인배출이 없었다는 점도 지적된다.
『요즘 학생들은 1백명이면 70명 이상이 비구상에 흥미를 갖는다. 그래서 이들 공모전은 소수「그룹」인 구상경향의 학생들에게 용기를 주는 정도의 역할밖에 못하고 있다』고 미술평론가 이경성씨는 말한다.
50년∼60년대에 비구상이 판을 치게 되자 구상화가들은 사기를 높이기 위한 한 방편으로 공모전을 시작했었다. 회원 확보라든가 명맥 유지라는 점에서 이 공모전들은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두었다고 볼 수도 있다. 늘 잡음이 따르는 국전이 유일한 등용문이던 시절에「장르」별로 기획된 이 민전들은 큰 관심을 불러모으기도 했었다.
문공부나 진흥원의 보조를 받기 전 이들 단체의 회원들은 경비를 벌기 위한 소품전을 따로 여는 등 주머니 돈을 털며 애써왔었다. 금년에는 50만원씩의 진흥원 보조로 이런 어려움도 해결되고 상금도 작년보다 50%이상 올렸으나(1등의 경우 15∼30만원) 공모전 자체가 빛을 잃어간다는 안타까움을 갖게 된 것이다.
10회째 공모전을 주최해 온 목우회는 오승윤·박각순·선수광·최예태·송룡씨 등을 그들이 배출한 화가로 꼽고 있다. 최고상 수상작가와 특선 3번을 한 작가를 회원으로 받아들이는 목우회는 현재 회원 45명중 20명이 공모전출신이다.
11회째인 백양회는 4번 특선한 화가에게 먼저 회우 자격을 준 후 3∼4년 지난 후 회원으로 받아들이는데 17명중 2명이 공모전을 거친 회원이고 회우가 2명 있다. 공모전 출신 화가로는 최응규·김정묵·심경자·이영수·김정구씨를 꼽는다.
8년째인 구상회는 오세열 박무웅 김현옥씨를 꼽고 있으며 이들 3명은 특선 3번으로 모두 회우가 된 사람이다. 회원 13명중 공모전 출신은 아직 없다.
다른 예술분야와 마찬가지로 미술에 있어서도 신인「데뷔」는 많은 어려움을 겪는다. 하루 임대료가 1만원인 미술회관, 2∼3만원인 백화점 화랑을 빌어 개인전을 열 경우「카탈로그」인쇄비까지 합치면 50만원∼1백 만원의 비용이 드는 것으로 계산된다.
『국전입상은 고등학교 선생 될 때나 필요한 경력』이라고 빈정대는 사람이 많고 공모전들의 각종 폐단이 지적되면서도 여전히 이들이 중요성을 갖는 것은 개인적인「데뷔」가 너무 힘들기 때문이다.
최근에는「그룹」전이「붐」을 이루어 이번 여름에만도 여류화가회·창작미협·공간회 홍대 동문회 등의 전시회가 열렸었다. 심사위원의 구미에 맞는 그림을 그려서 상을 받고「데뷔」한다는 일에 거부반응을 일으키는 젊은이들이「그룹」전을 통해 화상·평론가·일반애호가 앞으로 직접 나서려는 경향이 앞으로 점점 강해지리라는 것을 생각할 때 이런 분야에 대한 후원도 고려되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공모」에 대한 후원의 기준도 그 단체의 전통에만 치중하지 말고 앞을 내다보며 육성해 갈 필요가 있을 것이다. <장명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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