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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나랏돈 58억원 빼먹은 5급 공무원의 기막힌 수법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0면

공무원들의 나랏돈 빼먹는 수법이 갈수록 점입가경이다. 이번 영등포경찰서가 적발한 고용노동부 5급 공무원의 브로커 범죄는 완전히 새로운 수법의 공무원 범죄의 세계를 보여줬다. 공무원이 정부 전산망을 통해 알아낸 개인 및 기업 정보를 활용해 회사를 차려 조직적으로 영업활동까지 벌인 것이다.

 이 공무원의 타깃은 국가가 고용 창출과 기업활동 활성화 명목으로 기업들에 지원하는 지원금이었다. 막대한 지원금이 있지만 영세 기업들은 이런 제도를 몰라 이용하지 못한다는 사실에 착안해 정부 전산망에서 수혜 대상자를 확인하고, 이들에게 지원금을 수령토록 한 뒤 수수료로 30%를 받았다는 것이다. 영업엔 가족·친지·지인들과 세운 회사들이 나섰다. 이렇게 벌어들인 돈이 58억원이다. 이는 나라 금고에 직접 손을 댄 횡령 범죄나 민간과 유착해 벌이는 부정부패 등 전형적 공무원 범죄와 달리 정책 수혜자의 권리 일부를 공개적으로 착복하는 새로운 수법으로 5년 이상 300여 명을 고용하며 안정적으로 사업을 유지했다.

 이 범죄와 최근 빈발하는 공무원의 횡령 및 유착 범죄들을 보며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 먼저 공무원 범죄가 단순한 기강해이를 넘어 공무원들이 나랏돈을 국민이 피땀 흘려 벌어 나라에 바친 혈세라는 인식 없이 주인 없는 눈먼 돈으로 보고 있는 건 아닌지 하는 점이다. 범죄가 아니더라도 혈세의 낭비 사례는 곳곳에 산재한다. 나랏돈은 혈세라는 의식의 무장이 필요한 시점으로 보인다. 이런 신종 범죄가 5년 이상 지속됐다는 점에서 공무원 감사시스템에 구멍이 뚫린 건 아닌지도 긴급히 점검해 봐야 할 것이다.

 또 이번 범죄의 타깃이 된 각종 지원금 제도의 홍보가 제대로 되고 있는지 점검할 필요가 있다. 정책은 실행될 때만 가치가 있는 것이다. 수혜자들이 알지 못해 수령하지 못하는 제도는 무의미하다. 정책의 사각지대가 존재했기에 공무원의 신종 범죄도 활개를 칠 수 있었다. 이 점에서 고용부도 제대로 홍보하지 못한 일단의 책임이 있다. 정책의 사각지대가 없도록 각종 정책에 대해 국민에게 알리는 데도 더욱 노력해 주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