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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폭 피해자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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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하고 많은 남녀들 사이에서 한쌍의 부부가 맺어지는 것도 인연이다. 그러니 아무리 악처라도 견뎌야한다. 고약한 상사를 모시게 되는 것도 인연이라면,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는 것도 인연이다.
이렇게 모든 것을 인연으로 돌리면 아무리 살을 베는 듯한 쓰라림도, 고통도 참아나갈 수 있을 것 같다. 그래서 인연이란 말을 사람들이 꾸며냈는지도 모른다.
불가에서는 결과를 낳게 하는 내적이며 직접적인 원인을 인이라 한다. 그리고 외적이고, 간접적인 원인들을 연이라 한다.
이런 인과 연이 모여서 모든 현상이 일어나며 또 사라진다. 그래서「인연생기」라고도 한다. 그러나 아무리 인연으로 돌린다 해도 풀리지 않는 것들이 있다.
견딜 수 없는 슬픔도 많다. 왜 착한 사람이 일찍 죽고 나쁜 사람이 영화에다 천수까지 누릴 수 있는지, 「인연생기」란 말만으로는 풀리지 않는다.
그러나 인과란 이승에만 관계되는 것은 아니다. 그렇게 불교에서는 중우들을 달래주고 있다.
곧 인과며 인연은 전세에서부터 현세에, 그리고 다시 내세로까지 걸쳐서 작용한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착한 사람이 이승에서 불행을 겪는 것은 전세의 악업 때문이라고 여기는 것이다.
『전세에 무슨 악업을 저질렀기에 이 고생이냐』고 옛 할머니들은 곧잘 말했다. 그리고 스스로의 슬픔을 애써 달래고 이승에 대한 원한을 눌렀다.
그래도 풀리지 않는 것들이 있다. 풀리지 않는 것이기에 원망도 그만큼 더 크다. 2차 대전의 종전을 앞두고 원폭의 피해를 받은 한국인들의 슬픔이 바로 그것이다.
그들의 대부분은 징용으로 일본에 끌려간 사람들이다. 그들이 끌려가지만 않았어도 그 끔찍한 원폭피해는 받지 않았을 것이다. 인과로 따진다면 그들은 일제의 희생물이 된 한국인이었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들이 다른 원폭피해자들처럼 충분한 치료를 받지 못한 채 귀국하게된 것도 한국인이라는 사실 때문이었다. 원폭의 후유증은 그 자체가 말할 수 없이 참혹한 것이지만 또 그것이 언제 나타날지 모른다는데 더 큰 비극이 있다. 10년, 20년이 지난 다음에 객혈·혈변이 일어나고 백혈구가 늘어나는 증세를 보인 환자도 있다.
병은 또 당대에만 끝나는 것이 아니다. 10년이 지난 다음에 낳은 아기가 선천적 소아마비 환자일 경우도 있다. 이런 피폭자가 지금 한국에만 2만명이나 된다고 한다.
왜 이들만이 견딜 수 없는 상처를 안고 살아가야만 하는지 전혀 납득이 가지 않는 것이다. 인과야 또 있다. 만약에 피폭자에 대한 편견과 차별만 없더라도, 또 만약에 일본정부에 그들이 한때 저지른 국가적 범죄에 대한 뉘우침만 있었더라도 적어도 그들의 슬픔이 그토록 크지는 않았을 것이다. 뒤늦게야 동경도지사가 한국인 피폭자들에게도 무료치료를 약속해 주는 피폭수첩을 교부하기로 했다는 얘기다. 그런다고 지금까지의 피폭자들의 슬픔이 풀려지지는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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