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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급생활자의 일생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최근 영국「이코너미스트」지는 어느 정년 퇴직한 공무원의 투고를 이례적으로 크게 실었다. 「찰즈·서튼」이란 가명으로 소개된 이 글은 고도 복지사회에서의『축복 받은 중류생활자』의 일생을 있었던 그대로 기록했다는 점에서 큰 흥미를 끌었던 것이다. 이하 그 내용을 간추려 소개한다. <편집자주>
「찰즈·서튼」이 태어난 것은 1902년. 국민학교를 마친 후 얼마 있다가 해군에 입대, 26년에 제대했다.
군복을 벗은 뒤「서튼」은 별로 하는 일없이 2년을 빈둥거리던 끝에 28년 연봉 3백 90「파운드」짜리 말단공무원이 되었다.
하지만 당시에는 이만한 수입이면 독신자가 제법 호사스럽게 살수 있었다. 내로라는 신사가 외출할 때도 1「파운드」와 10「쉴링」짜리 주화 한 개씩만 주머니에 넣고 나서면 무서울게 없던 시대였기 때문이다.
좀더 정확히 말해서「서튼」씨의 순수입은 세금 6%를 뺀 3백65「파운드」. 70년 현재 가치로 따져서 1천5백「파운드」, 지금 가치로는 2천2백53「파운드」에 해당하는 금액이었다.
세계에서 가장 안정된 나라의 하나인 영국에서도 돈 값은 이토록 떨어졌던 것이다.
33년「서튼」씨는 종족보존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 결혼을 치렀다. 덕분에 입이 하나 더 늘기는 했지만 그 동안 승진과 봉급인상이 있었기 때문에 예전의 소비수준은 계속 유지할 수 있었다.
전체수입의 20%를 새로 사들인 자동차 월부금으로 부어가면서도「서튼」씨 자신의 용돈조로 수입의 20%를 다시 쪼개낼 정도로 일상생활은 윤택했었다.
그러나 결혼 2년만에 제집을 장만하자 가계는 단박 휘청거렸다. 처음 5년 동안은 한해에 3백「파운드」, 다음 5년 동안은 5백「파운드」씩 갚기로 하고 주택융자를 받아 집을 지었기 때문이다.
당시「서튼」씨는 연4∼5%의 주택자금 이자를 무는게 억울해서 툭하면 정부당국을 욕하곤 했다. 11%가 넘는 요즘 형편을 생각하면 참으로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자동차와 주택할부금의 치열한 공격을 받으면서도「서튼」씨의 일상생활은 결코 궁색하지는 않았다. 연 2백30「파운드」씩 지불해야하는 하녀를 별 어려움 없이 계속 부릴 수 있었던 것이다.
한데 첫아기가 태어나자「서튼」씨의 부인은 하녀를 내보냈다. 수년 후 아기가 셋이 되었을 때는 자동차를 팔아야했다.
만약 2차대전 후 의료보험제도가 생기지 않았던들「서튼」씨 일가는 파산을 면치 못했을 것이다. 설사 하찮은 액수일지라도 우발적인 지출을 감당할 능력은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자라면서 생활은 정확히 정비례하여 쪼들려갔다. 교육비가 연 5백∼7백「파운드」에 달했을 때는 월부자동차로 주말을 즐기던 때가 아스라한 옛날 얘기처럼 여겨졌다.
「서튼」씨는 그동안 승진을 거듭해서 연봉 5천∼6천「파운드」를 받는 최고소득층 5%의 일원이 되었지만 워낙 씀씀이가 많아 모래밭에 물 스며들듯 월급은 금방 바닥나곤 했다.
한가지 다행스러운 것은「서튼」씨 부부가 생활에 아직 여유가 있던 시절에 조금씩이나마 저축을 해뒀다는 점이었다.
아이들이 대학에 들어가서 가장 쪼들리던 때에는 각종 이자와 배당금이 연1천「파운드」가까이 되어서 큰 도움을 줬던 것이다.
그리고 가까운 친적 중에 유산을 물려준 사람들이 여럿 있어서 이와 같은 수입도 적자를 메우는데 크게 기여했다. 결혼한 이래 총 4만3천「파운드」나 생겼기 때문이다.
지난 70년「서튼」씨는 자신의 일생을「돈벌이 사관」의 입장에서 총정리 해봤다.
그 결과 그는 70년 현재가격으로 따져서 일생 22만9천「파운드」를 벌고 그 중 20만「파운드」를 썼다는 결론을 얻었다.
그외 수중에 남아있는 것은 약간의 주식과 살고있는 집, 그리고 아이들이 학교를 마친 후 사들인 시골의 오두막집 별장이 전부였다.
한데 70년 현재의 이와 같은 결산이 그후 불과 4년 사이에 크게 변했다. 4만「파운드」하던 집 값이 l0만「파운드」로 되었기 때문이다.
「서튼」씨는 지금 이 집과 오두막별장의 값을 면밀히 계산하면서 이제 곧 결혼하게 될 세 아이들의 일생을 점친다.
그들이 앞으로 몇 년 후에 가장 쪼들리게 될 것인가, 그리고 이 유산을 어떻게 하면 그 시기에 가서 쓸 수 있도록 해줄 것인가를 연구하고 있는 것이다. <영 이코너미스트="본사특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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