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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 헐리게된 국립 중앙 도서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민간 기업에 팔려 곧 헐리게된 국립 중앙 도서관이 그 명도 기일을 불과 한달 앞두고서도 아직 옮겨갈 장소조차 정하지 못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일반 행정관서나 기업체의 사무실을 옮기는 것도 아니요, 빈틈없이 짜여진 「스케줄」에 따라 국보급의 귀중한 문서 등을 비롯, 방대한 분량의 도화 자료·문헌 등을 안전하게 옮겨놓고, 하루라도 중단 없이 스스로의 기능을 완수해야할 국립 중앙 도서관으로서는 너무도 무성의하다는 말을 들어 마땅하다.
애당초 이 도서관의 이전 문제가 논의되기 시작한 것은 그럴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었기 때문이다. 건물이 낡고, 서고가 좁아 이미 포화 상태를 넘게 되었다는 사실을 비롯하여, 주변의 자동차 소음, 낙후된 시설 때문에 제대로의 기능을 발휘치 못했던 연구실 및 서지 「센터」 등을 대폭 개선해야할 필요성이 누구에게나 명백했기 때문이다. 또 그래서 마련된 여의도 대지 위의 새로운 국립 도서관의 청사진을 앞에 놓고서는 그 입지 조건의 적·부적을 에워싼 일부 논란이 없지는 않았으나, 일반은 새로 짓게될 이 도서관이 도서관법에 정해진 공공 도서관의 시범적 「케이스」가 되어 줄뿐 아니라 그 외모나 「서비스」 기능 면에 있어서도 다른 나라에 비해서도 큰 자랑거리가 될만한 최선의 것이 되기를 고대했었다.
그런데 현 국립 중앙 도서관 대지의 매각 대금 7억원이 일시불로 국고에 수납되고 여의도에의 신축 「마스터·플랜」이 완성된지도 상당히 오래됐는데도 아직 공사에 착수할 엄두를 못하고 있는 이유를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것이다. 그 동안 국회 도서관과의 합동설, 또는 신축 대신 남산 등지에 있는 기존 건물의 매수 개조설, 건축 자재 값 등의 앙등을 이유로 한 신축 공사의 무기 연기설 등이 나돌고 있을 뿐이었다.
그러나 국회 도서관과 국립 중앙 도서관의 기능은 엄격히 구별되어야 하는 것으로, 설사 국회 도서관의 「서비스」 일부를 일반 시민에게도 연장하는 것이 제외국의 통례라 하지만, 그렇다고 성격상 완연히 다른 이 두 도서관을 합쳐서 한 도서관을 만든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또 신축 대신 기존 건물을 매수하여 개축한다는 것도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서고와 연람 시설, 그리고 학술·문화·서지「센터」로서의 특수 시설을 필수적인 조건으로 하는 현대 도서관의 기능을 생각할 때, 모처럼 새 국립 중앙 도서관을 짓는다하면서 기존 「빌딩」을 매수 개축하겠다는 생각은 그야말로 현대 도서관 기능에 대한 무지를 드러내는 것이나 다름없다.
마지막으로 구 건물 및 대지의 매각 대금 7억원을 확보했으나 그것만으로는 부족하여 신축을 연기한다는 것도 너무 옹졸한 생각이다. 원자재 값의 앙등 등은 비단 도서관 신축비에 한정된 일이 아닌데도 다른 국가 사업 중 유독 도서관 사업의 추진, 그것도 이미 확보된 재원을 가지고 수년내 계획된 사업의 무한정한 지연을 정당화할 구실은 인정될 수 없는 것이다.
도서관법의 명분 규정을 빌 것도 없이 오늘날 공공 도서관은 단순히 도서 자료를 수집·보관하고 이를 공중의 열람에 공 하는 기능에 머무를 수는 없다. 스스로 독서회·연구회·감상회·전시회 등 다채로운 도서관 「서비스」 기능을 주최할 뿐만 아니라 널리 다른 나라의 공공 도서관과 학교 도서관 등 특수 도서관과의 연계를 도모함으로써 한나라 문화 활동의 중요한 원천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이런 뜻에서 새로 짓게될 국립 중앙 도서관은 이미 정해진 여의도 「프로젝트」를 조속히 집행하거나, 아니면 중앙청 또는 시청 주변의 중심가에 대지를 구하여 내실이 함께 세계적 규모를 자랑할 수 있는 신축 「플랜」을 세워주기 바란다. 세계 유수의 공공 도서관이 모두 교통이 편리하고, 시가지의 중심에 위치함으로써 그 나라의 문화적 상징이 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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