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이퍼링 부메랑 우려 … 미·일·영 주가 올 들어 3~10% 하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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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흥국 위기가 좀처럼 진정되지 않고 있다. 환율 방어를 위한 신흥국의 고금리 처방조차 먹히지 않는 데다 일본을 비롯해 미국·유럽 증시까지 동요하고 있다. 신흥국 위기가 선진국 시장으로까지 번질 조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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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일 미국 달러와 견줘 터키 리라화와 인도 루피화의 가치가 다시 떨어졌다. 두 나라는 지난주 금리 인상이란 비상처방을 쓴 국가들이다. 여기다 통화가치가 떨어지면서 에너지를 수입하는 신흥국은 ‘하이퍼 인플레이션(초고물가)’이란 이중고에 시달리고 있다. 국제유가가 오르지 않아도 통화가치가 하락하는 바람에 자국 통화 기준 유가가 치솟고 있기 때문이다. 터키·인도네시아·인도·남아프리카공화국·브라질이 대표적이다.

블룸버그 통신은 이날 전문가들의 말을 빌려 “위기가 신흥국 내에서만 국한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며 “월가 전문가들이 멕시코와 아시아 금융위기가 일어난 1990년대와 지금의 다른 점을 따져보기 시작했다”고 보도했다. 세계경제에서 신흥국이 차지하는 비중이 커졌기 때문이다. 톰슨로이터에 따르면 지난해 글로벌 총생산 가운데 신흥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40%에 달했다. 97년 아시아 금융위기 당시의 두 배다.

 여기다 요즘엔 중국이란 새로운 연결고리까지 생겼다. 신흥국이 위기에 빠지면 중국의 성장률이 낮아질 수밖에 없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중국 수출의 40%를 신흥시장이 차지하고 있다. 이런 중국의 경기 둔화는 가장 먼저 일본에 그리고 미국과 유럽에 불길한 소식일 수밖에 없다.

 실제 이날 중국 변수의 위력을 엿볼 수 있는 사건이 벌어졌다. 일본 닛케이225 지수가 295.4포인트(1.98%) 하락해 1만4619로 거래를 마감했다. 중국 제조업뿐 아니라 서비스업마저 둔화 조짐을 보여서다. 이날 발표된 1월 중국 비제조업 구매관리자지수(PMI)는 53.4였다. 지난해 11월 이후 석 달 연속 떨어진 결과다. 지난주 나온 제조업 PMI는 6개월 최저 수준이었다.

 로이터 통신은 “중국 경제가 신흥국 위기 때문에 더 둔화한다면 선진국 실물경제가 충격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신흥국 위기감이 커진 최근 한 달 새 미국·영국 주가는 3~4% 정도씩 떨어졌다. 일본 주가는 10% 넘게 폭락했다. 독일·프랑스는 1%대 하락을 보였다. 이 또한 90년대와 차이점이다. 당시 미국과 유럽 주가는 대세상승이었다. 다우지수는 94~98년 사이에 150% 이상 뛸 정도였다. 신흥국 위기, 특히 선진국으로의 전염 가능성은 재닛 옐런 새 Fed 의장의 첫 번째 테스트가 될 전망이다. 그는 3일 공식적으로 Fed 의장에 취임했다. 그는 전임자인 벤 버냉키 의장의 두 차례 양적완화(QE) 축소에 찬성표를 던졌다.

 옐런이 94년 앨런 그린스펀처럼 신흥국 위기엔 아랑곳하지 않을까. 당시 그린스펀은 1년6개월 정도 사이에 기준금리를 일곱 차례나 올렸다. 그린스펀은 회고록 『격동의 시대』에서 “94년엔 멕시코 위기가 미국과 다른 나라로 전염되지 않을 것으로 판단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멕시코 사태가 남미 전역으로 확산돼 미국으로 전염될 조짐을 보이자 95년 7월부터 기준금리를 세 차례 낮췄다(그린스펀의 정책 전환).

 옐런이 그린스펀처럼 일정 기간 QE 축소를 이어가기엔 글로벌 사정이 녹록지 않다. 우선 최근 선진국 경제 체력이 90년대 같지 않다. 미국과 유럽은 91년 침체에서 벗어나 94년부턴 확장 국면에 들어서 있었다. 반면에 요즘 미국과 유럽은 대침체와 재정위기 후유증에서 이제 몸을 추스르고 있는 단계다. 더욱이 유럽은 디플레이션(장기 물가하락) 조짐마저 보이고 있다.

 유럽중앙은행(ECB) 통화정책회의가 6일 열린다. 시장은 ECB가 디플레 위험을 낮추기 위해 기준금리를 인하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이런 와중에 옐런이 오는 3월에도 QE 규모를 축소할까. 역사를 보면 Fed 가 신흥국 사정은 아랑곳하지 않았지만 유럽과는 정책을 공조한 경우가 적지 않았다. 85년 플라자합의, 87년 주가 대폭락(블랙 먼데이), 2001년 9·11테러, 2008년 금융위기 때가 대표적 예다. 이런 전통에 비춰보면 옐런이 그린스펀보다 빨리 정책을 전환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다.

강남규·조현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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