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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 Report] 으라차차, 도요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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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일러스트=이정권 기자]

지난달 23일 자동차 업계의 시선이 일본 아이치(愛知)현 도요타(豊田)시에 쏠렸다. 이곳에 본사를 두고 있는 일본 자동차 업체 도요타가 2013년 판매실적을 발표하는 날이었기 때문이다. 순위 경쟁은 의미가 없었다. 도요타는 지난해 11월까지 이미 909만 대를 팔아치워 연간 판매량이 971만 대와 970만 대로 집계된 GM과 폴크스바겐을 넉넉하게 앞설 것으로 예상됐다. 관심의 초점은 판매량 그 자체, 다시 말해 도요타가 세계 최초로 연간 판매량 1000만 대를 돌파할지에 모아졌다. 결과는 998만 대. 단 2만 대 차이로 1000만 대 달성에는 실패했지만 이 사실이 도요타의 세계 1위 수성(守城)을 평가절하할 만한 근거는 되지 못했다.

 2년 연속 판매량 1위 외에도 지난해 도요타가 거둔 성과는 눈부시다. 일본 언론은 도요타의 2013 회계연도(2013년 4월~2014년 3월) 영업이익 전망치로 사상 최고액인 2조3000억 엔(24조4030억원)을 제시하고 있다. 생산대수 1000만 대 돌파(1011만 대), 하이브리드차 누적 판매대수 600만 대 돌파, 중국 시장 최대 판매 기록(91만여 대) 수립 등도 모두 지난해의 성과다. 양적으로나 질적으로나 2013년 세계 자동차 시장의 승자는 단연 도요타였다.

도요타 아키오 사장

  “도요타의 모든 차에는 내 이름이 들어가 있다. 차가 상처를 입으면 나도 상처를 입는다.”

 도요타 아키오(58) 사장이 도요타 리콜 사태와 관련해 2010년 2월 열린 미국 하원 청문회에 출석해 눈물로 선처를 호소했던 것이 불과 4년 전이다. 세계 금융위기의 여파로 2008 회계연도에 사상 최초로 영업손실(-4610억엔)을 기록한 데 이어 곧바로 1000만 대 이상의 대규모 리콜 사태라는 최대 위기를 맞았던 도요타는 어떻게 단기간에 과거의 영광을 되찾았을까. 엔저의 수혜도 무시할 수 없지만 특히 눈여겨봐야 할 대목은 도요타의 정확한 현실 진단과 과감한 개혁 작업이다.

 도요타는 먼저 위기에 빠진 원인을 파악하기 시작했다. 곧 ‘대기업병’에 걸렸다는 진단이 내려졌다. 2000년대 들어 도요타는 매년 50만 대씩 생산량이 늘어날 정도로 폭발적인 성장세를 보였고 세계 각지에 공장들이 들어섰다. 저비용 고효율의 ‘도요타 생산방식’은 비대해진 생산시설과 느슨해진 기강에 밀려나기 시작했다. 제품도 고객이 좋아할 수 있는 차가 아니라 원가가 낮고 많이 팔릴 수 있는 차에 집중됐다. 차에는 고객이 평생 한 번도 사용하지 않을 옵션들이 덕지덕지 붙기 시작했다.

 해법은 ‘원점 회귀’, 즉 초심으로의 복귀였다. 도요타 아키오 사장은 일본 아사히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세계 최고’나 ‘국내 최고’의 치과의사라는 간판보다 ‘동네 제일’이라는 간판을 단 치과가 더 잘 운영된다. 도요타도 주민에게 가장 가깝고 주민에 관해 가장 잘 아는 동네 제일의 자동차회사가 되고 싶었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도요타는 ‘좋은 자동차’를 다시 만들기로 했다. 수익성을 중시해 고성능 스포츠카들을 속속 단종시켰던 도요타는 “도요타차의 맛이 사라졌다”는 비판을 수렴해 2010년 말 ‘렉서스 LFA’라는 수퍼카를 만들어냈고 2012년에는 소형 스포츠카 ‘86’을 부활시켰다. 미래형 자동차와 해외 현지용 자동차 개발에도 박차를 가했다. 설문조사 전문 회사를 설립해 고객의 소리를 수렴했고, 리콜 문제에서도 과거의 소극적 자세를 버리고 적극적으로 대응하기 시작했다. 도요타 아키오 사장이 블로그를 개설해 인터넷상에서 직접 고객의 목소리를 듣기도 했다.

 도요타 혁신의 상징인 카이젠(改善)도 재개됐다. 1997년 영국 옥스퍼드 영어대사전에 ‘kaizen’이라는 영어로 등재되면서 세계어가 된 이 단어는 생산현장에서의 혁신을 의미한다. ‘저스트인타임’(Just in Time·사전에 부품 수급을 면밀히 계산해 재고를 남기지 않는 것), ‘자동화’(自<50CD>化·고장이나 이상 발생 시 기계가 자동으로 생산을 중단하는 시스템), ‘포카요케’(‘실수 피하기’라는 뜻, 하나의 작업에 이상이 생기면 다음 단계 작업으로 넘어가지 않는 시스템) 등 80년대 전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던 ‘도요타 생산방식’이 모두 카이젠의 결과물이다.

 신형 카이젠의 대표적 사례는 2011년 완공된 미야기(宮城) 공장이다. 500억 엔이 투입될 예정이었던 이 공장은 그 절반인 250억 엔에 완공됐다. 차량을 세로 방향이 아닌 가로 방향으로 이동시키는 혁신적 생산라인을 구축해 생산라인 길이를 기존 공장의 3분의 1로 줄였기 때문이다. 도요타는 또 자사의 계열 회사 및 하청업체에 한정돼 있던 부품 수급 대상을 과감하게 확대해 원가를 절감했다. 2012년 3월에는 한국 부품업체들을 포함해 전 세계 자동차 부품업체 관계자들을 초대해 설명회를 열기도 했다. 부품 통일화 대상을 확대한 신설계방식(TNGA)의 도입, 해외 공장의 현지 부품 사용 확대 등을 통해서도 부품 단가를 낮췄다. 도요타는 “2012년 영업이익 1조3029억 엔 가운데 카이젠을 통한 비용절감 효과가 4500억 엔으로 엔저 수혜로 인한 환차익 1500억 엔보다 세 배나 많았다”고 밝혔다. 노동조합도 2009년부터 지난해까지 기본급 동결에 동의하면서 회사의 회생에 힘을 보탰다.

 도요타는 올해 판매와 생산목표를 모두 1000만 대를 넘어선 1032만 대와 1043만 대로 잡았다. 엔저가 본격적으로 위력을 발휘하면서 일본 국내에서는 생산단가 인하, 해외에서는 판매가격 인하라는 이중의 효과를 거둘 수 있을 전망이다. 주승훈 한국자동차산업연구소 연구원은 “도요타는 내부 개혁에 성공한 데다 글로벌 경기 회복, 엔저 등 외부 환경도 좋아 올해 한층 공세적인 모습을 보일 것”이라며 “특히 국산차 업체들의 주요 시장인 신흥시장에서 영향력 확대에 나설 가능성이 커 대응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글=박진석 기자
일러스트=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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