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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망명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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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일본에 있던 소련의 한 젊은 교수가 지난 토요일 드디어 미국으로 망명했다. 용케도 빠져 나갔다. 국제적 「에티켓」에 정치범죄인 불인도의 원칙이라는 게 있다. 어느 범죄자가 외국에 도망갔을 때 그 처벌을 위해 인도를 요청하면 그 외국은 범죄자를 넘겨줘야 한다.
이것은 일반 국제법상의 의무는 아니지만, 관행으로 되어있다. 그러나 정치범의 경우는 예외가 된다.
이런 정치범 불인도의 원칙은 외국의 정치범, 또는 정치적 망명자를 비호하는 국가의 비호권(right of asylum)과도 표리를 같이하고 있다. 물론 만국 공통의 제도는 아니다. 따라서 자주 국제법상의 쟁점이 되기도 한다.
이런 권리는 국가가 자국 영토 안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배타적으로 국권을 행사 할 수 있다는 발상법에 근거를 두고있다.
국권과는 따로이 순전한 인권의 견지에서 망명권을 틀 잡아놓은 것은 48년의 세계인권선언이다. 그 제14조에는 『누구나 타국에서 박해로부터의 보호를 청하고 또 이를 향유할 권리를 갖고 있다』고 명시되어 있다.
그러나 망명권에도 제한이 있다. 가령 자국 안에서 외국의 원수를 쓰러뜨리려는 공작이 있을 때는 이를 제지해야할 의무가 어느 나라에나 있는 것이다.
이래서 「쿠데타」가 빈번한 남미 같은 곳에서는 망명권을 제한하는 특별조약을 맺는 일이 많다. 또 망명을 허가해야할 국제법상의 의무란 어느 나라에도 사실은 없다. 망명자의 보호를 헌법으로 규정하고 있는 것은 「라틴아메리카」·북구·「프랑스」·「이탈리아」·서독 등이다. 물론 조문상으론 온갖 「진보적」규정을 다 갖춘 공산국가들에도 있기는 있다.
그러나 이번에 망명한 소련 교수가 머물러 있던 일본의 국내법에는 망명권이 없다. 그저 법무장관이 특별한 경우에 상륙·재류를 허가할 수 있다는 조항이 출입국관리법에 있을 뿐이다.
곁에서 보면 망명이란 몹시 「드릴」에 찬 모험이다. 또 망명자중에는 영광스런 계보도 따른다. 「아인슈타인」·「토마스·만」·「브루노·발터」·「프로이트」….
그러나 망명자 자신에게는 필사적인 것이다. 거기엔 낭만도, 「드릴」도 아무 것도 없다.
외신에 의하면 「레드킨」 교수는 지난가을부터 일본의 대판대학에서 「러시아」어를 가르치고 있었다. 그의 아내는 또 일본어를 배우는 「레닌그라드」 대학생. 그는 미국에 망명할 뜻을 밝힌 직후 잠적했다. 2일 후엔 아내도 잠적했었다. 그가 바로 미 영사관에 갔었는지, 아닌지는 알 수 없지만, 일단 망명의 허가를 받은 다음에는 그도 마음이 놓였을 것이다.
왜냐하면 망명권에는 반드시 망명지까지의 안전을 보증하는 안도권(safe conduct)이 따르기 때문이다. 납득하기 어려운 것은 그의 아내가 함께 망명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그녀의 아버지가 소련의 고위관리라는 데서부터 추리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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