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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가비판 일의 대한자세-잇단「캠페인」에 비친 한·일 관계의 단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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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동경=박동순특파원】지리적으로 가장 가까이 이웃해 있으면서도 상호간의 이해가 극히 미흡하다고 해서 흔히 한·일 관계를 『가장 가깝고도 먼 나라』라고 표현한다. 이러한 현실을 반성이나 하듯 최근 일본에서도 한·일 관계를 「이슈」로 내거는 군소 「캠페인·그룹」이 많이 나타나고 그들이 내거는 구호도 갖가지라서 제일한국인들을 착잡한 심정에 빠뜨리고 있다.
지난 주말인 27일 하오 동경의 변화가인 「교오바시」(경교) 뒷길에 자리잡은 「미즈야바시」(목곡교)공원에서 있었던 「머큐러크롬」(일본명 아까찡끼)의 일본내 독점생산업체인「도야마」(부산)화학공업의 대한공해수산을 저지하기 위한 일련의 성토모임은 굴절된 한·일 관계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주목할만한 장면이었다.
「머큐러크롬」제조가 유발하는 수은공해에 대한 일본 안의 반발로 해서 일본내 생산을 중지하는 대신 그 시설을 한국에 옮겨 제품생산을 계속하려는 움직임이성토의 초점이 됐다.
20여명의 경찰대가 지켜보는 가운데 열린 이모임의 주최자는 동경대학졸업생과 재학생 몇몇으로 구성된 반공해 「캠페인」지 『동대자주강좌』「멤버」들이었는데 막상 성토집회가 시작되자 성토내용은 다방면으로 번져갔다. 「도야마」화학에 대한 성토가 끝난 다음 주최측소개로 「마이크」앞에선 30여세의 일본여인은 『기생관광에 반대하는 여성들의 모임』을 대표해서 일본인관광객들의 대한성침략을 신랄하게 고발하는 한편 동경의 한국요정 「유시마」(탕도) 비원 앞으로 「데모」를 하자고 선동했다.
뒤이어 나선 20여세의 젊은이는 한국인이라는 이유로 「히다찌」(일입)전기에 의해 채용을 거부당한 재일교포 『박중석군을 지원하는 모임』 의 사무국책임자 「다까나미·데쓰오」(고낭철부)씨. 차분한 목소리로 「히다찌」전기의 비행을 규탄하고 금후의 투쟁 「스케줄」을 소개하면서 참가자들의 협력을 요청했다.
그 다음에 나선 것이 수은공해문제의 시발점이 된 「미나마따」 수공해투쟁위 대표였으며 성토발언은 없었으나 회장에 뿌려진 전단 속에는 『전일본의 학생연합』의 이름으로 한국인간호원과 의사의 일본입국을 『확대되는 한국으로부터의 강제노동력수입』이라 규정, 고발한 것도 있었다.
이날 성토대회에서 난무한 구호·「플래카드」·전단과 「팸플릿」가운데는 『한국인의 피로 「아까찡끼」를 만들려는가』, 『부산화학은 한국에의 공해수출을 중지하라』는 귀절이 눈에 띄었으며 「박군을 지원하는 모임」의 회지 「현해탄」에는 『갖은 차별과 대한경제침략을 자행하는 「히다찌」』, 『박군을 차별한 「히다찌」규탄투쟁에 전국적으로 결집하자』는 등 전단이 들어있었다.
「기생관광을 반대하는 여성들의 모임」은 『기생관광-성침략을 고발한다』는 86「페이지」짜리 「팸플릿」을 모금 겸해서 현장에서 팔고있었다.
표지에 유관순의 동상사진을 담은 「팸플릿」을 펼쳐보니 일본인이 집필한 「기생관광정치학」「기생관광의 경제적 배경」을 비롯, 이 「캠페인」에 공조하는 24명의 한·일 각국여성의 발언과 양국 「매스컴」의 관계기사 자료들이 총 정리돼 있다. 또한 「전일본의 학생총합」의 전단은 일본각지의 의대와 병원들의 한국인간호원 및 만수차입실태를 낱낱이 적시하고 있다. 그럼 이들 잡다한 「그룹」들은 어떻게 형성된 것인가? 「박군을 지원하는 모임」의 「다까나미」씨는 『우연히 학교친구였던 박군을 만나 채용을 거부당한 얘기를 들은 것이 계기가 됐다』고 밝혔다. 「기생관광에 반대하는 여성들의 모임」은 「침략·차별과 싸우는 아시아부인협의」가 주동이 되어 「기생관광실태에 관한 강연」모임을 가진 것이 계기가 돼서 강연참가자들이 「그룹」을 형성했다고 하며, 「동대자주강좌」「그룹」은 일본공업의 일본 국내 및 「아시아」지역에서의 공해확산에 관한 강좌를 계기로 만들어졌다고. 이 「그룹」은 「요꼬하마」(횡빈) 시대 안의 「조선질소연구회」와 제휴, 회지 「자주강좌」에서 전전에 「일본질소비료」가 한국의 흥남에 비료공장을 건설, 공해를 유발한 사실을 거슬러 추적, 규탄해왔다. 「전 일본의 학생연합」은 일본의 불합리한 의료「시스팀」 시정에 앞장선 「그룹」.
이밖에 일한사전을 손에든 재일교포 2세 한국인 학생들도 발견됐다.
그러고 보면 이날 성토대회는 굴절된 한·일 관계가 그들 자신과 그들 「그룹」의 「캠페인」목표에 직·간접으로 얽혀있는 개인 및 「그룹」들이 횡적으로 연락, 자리를 같이 한 것이며 앞으로는 서로간의 제휴를 보다 긴밀히 해가려는 징후가 나타나고 있다.
바꾸어 말하면 이들은 일본 안의 어느 기성조직에 소속된 통일된 「그룹」이 아니며 일본 안에 미만한 「백화제방」적 풍조의 반영으로서 각자의 신조에 따라 행동하면서 소단위 「그룹」으로 발전해 간 것. 한가지 일반적 공통점이 있다면 이들이 대체로 반체제적 성향이 강한 지식인들이라는 점이다.
그리고 공산당이 합법화돼 있는 환경에서 정립된 그들의 행동준칙이 때로는 재일 한국인들을 곤혹케 하는 「구호」와 「주장」으로 발전하는 경우도 있어 재일 한국인들은 대개가「착잡한 심경」으로, 때로는 어리둥절한 채 이들의 움직임을 주시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한가지 분명한 것은 현실적인 한·일 관계가 「가깝고도 가까운 나라」라는 사실이며 우리는 싫건 좋건 간에 이러한 「사보」에 진지하게 대결해가야 할 필요성에 직면해 있는 것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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