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꽁초·사탕, 그리고 코르크 … 하찮은 것들이 예술이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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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안성하, 담배(Cigarettes), 2013, 캔버스에 유채, 182×259㎝. [사진 가나아트센터]

“클로즈업은 부분적인 것들을 인격화시킨다.” 프랑스 화가 페르낭 레제(1881∼1955)의 말이다. 일상을 달리 보이게 하는 게 예술의 한 특징이라면, 클로즈업은 그 주된 수단이다. 투명 유리 그릇에 담긴 담배꽁초·사탕 따위를 그려온 안성하(37)에게도 그렇다.

 가로 259㎝ 캔버스에 크게 확대돼 그려진 담배와 사탕은 현대적 욕망의 기념비처럼 보인다. 예쁘고 투명한 그림 속엔 피우고 난 담배나 먹다 만 사탕의 불결함은 없다. 홍익대 회화과 4학년이던 2000년 ‘내가 좋아하는 것들, 하찮지만 그들만의 세상을 그려보자’며 시작한 담배 그림이다.

 교수들로부터 “여학생이 무슨 담배 그림이냐”부터 시작해 “지나간 양식에 그렇게까지 천착할 필요가 있느냐”는 지청구까지 들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일상을 생생하고 완벽하게 모사하는 극사실주의(hyperrealism)는 이미 1960년대 미국에서 유행했던 경향이니까. 그래도 줄기차게 그려온 담배와 사탕 그림은 그에게 대한민국 미술대전 특선(2001·2002), 중앙미술대전 우수상(2002) 등을 안겨줬다. 시장의 반응도 좋아 미술시장이 활황이던 2007년 무렵엔 극사실주의 붐의 대표 작가로 꼽히기도 했다.

 화가 안성하가 서울 평창동 가나아트센터에서 7년만의 국내 개인전을 연다. 그 사이 시장의 열기는 사그라 들었고, 화가는 결혼해 엄마가 됐다. “그때나 지금이나 나는 그저 그리고 있을 뿐이다. 다만 생각할 새도 없었던 그때와 달리 대범해진 게 다르다”고 말했다. 14년째 같은 주제로 그리는 게 지루하진 않을까. “같다고 여겼다면 진작 그만뒀을 것”이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많을 땐 하루 15시간씩 작업실서 혼자 그리기에 매달린 탓에 디스크로 고생할 때의 그림, 아이 낳고 혼란스러웠을 때의 그림, 화가의 눈에는 어느 하나 같은 게 없다고 했다.

 전시엔 와인병을 막는 코르크를 그린 신작도 나왔다. 담배·사탕에 이어 이제는 술까지, ‘기호품 3종 세트’가 완성됐다. “담배는 독이며 아름답지 않지만 그것이 가져다주는 정신적 위안은 아름답고, 사탕은 달콤하고 유혹적이지만 결국 독이 되고 만다”던 안씨다. 욕망의 잔해를 보여주는 전작에 비해 코르크 마개 그림은 오래오래 간직될 감미로운 추억을 붙잡은 듯하다. 다음달 16일까지. 02-720-1020.

권근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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