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정한 산업입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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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그동안 정부가 서둘러 발표한바 있던, 몇몇 산업입지는 혹은 용수난, 혹은 수송문제로, 그리고 또 혹은 농지잠식 때문에 계획을 바꿔야할 상황이라는 것이며, 그 때문에 새로 입지를 선정해야만할 원점으로 되돌아간 느낌조차 있다.
경제규모가 커짐에 따라서 투자단위가 커지고, 그에 따라서 산업입지 문제의 비중이 매우 커지고 있음을 상기할 때, 산업입지 문제를 단순한 상식 선에서 처리할 시기는 이미 지난 것이다. 그러므로 대단위계획은 그만큼 사전조사가 철저해야 할뿐 아니라 먼 장래까지도 예측해서 그것이 국민경제의 장래과정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 하는 문제에 이르기까지 치밀하게 계산하고 나서 착수해야만 되는 것이다.
첫째, 중화학공업과 같은 대단위사업은 투자규모가 크기 때문에 한번 잘못 잡은 입지는 영원히 시정하기 어려운 것이며, 그 때문에 여러 모에 걸쳐 국민경제가 입게될 손실은 돌이킬 수 없는 것이 된다. 산업입지 선정의 전문화를 서둘러야 할 필요성은 바로 이 때문이라 할 것이다. 지금처럼 몇몇 관료들의 손에서 입지문제가 결정되는 관례를 버리지 못한다면 앞으로 입지문제 때문에 오는 차질과 손실은 예측키 어려울 정도로 커질 것이다. 따라서 입지선정을 관료적 차원에서 전문적 차원으로 시급히 전환시키기 위한 제도적 개선이 있어야 하겠다.
둘째, 산업입지는 기술적 조건이 충족될 뿐만 아니라 경제성이 동시에 충족되어야 하는 것이므로 이 두가지조건을 다같이 분석·평가하고 다시 종합할 수 있는 절차가 반드시 이행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장래 경제의 규모와 구조가 전제되어야 하는 것이며, 때문에 그러한 전제에서 현재의 기술적 조건을 검토하지 않는다면 비록 현재의 경제여건 하에서는 기술적으로 적합하다고 판정, 계획을 실행해도 장래에는 그것이 도리어 무거운 부담으로 전환되는 일도 있다는 것을 간과해서는 아니 된다.
이런 각도에서 본다면 공업용수·수송문제라는 초보적인 기술적 문제 때문에 입지문제를 재론하지 않을 수 없는 지금의 상황은 참으로 막하고 부끄러운 일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도대체 그동안 무엇을 조사하였기에 초보적인 용수나 수송문제 때문에 입지문제가 재조정되어야 하는 것인지 이해키 어렵다.
세째, 산업입지 선정에서 기술적·경제적인 적합성보다 지역안배를 더 중요시하는 듯한 인상을 주어서는 아니 될 것이다. 우리처럼 자본이나 자원이 부족한 경제에서는 최적입지 선정은 경제성을 극대화시킨다는 고려가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이다. 이러한 기본전제를 인정한다면 서해안의 공업입지화를 무리하게 추진하는 것도 재고해야 할 것이다.
물론 지역간의 불균형으로 오는 사회적인 문젯점들도 결코 가벼이 볼 수는 없는 것이지만 그렇다고 경제적으로 적합치 못한 대단지를 개발해놓고서 이를 제대로 이용하지 못하는데 따른 부담을 감수해야 할만큼 우리가 여유 있는 것은 아니다.
네째, 산업입지를 선정하는데 있어 이른바 집적효과를 도외시하고 공업지대를 분산시키려 한다면, 산업간의 유기적 연관관계가 기능키 어렵게 되어 비능률을 면키 어렵다는 것을 직시해야한다. 경제적으로 발전한 선진경제에서도 어느 나라나 공업지대가 한군데로 집중해서 존재하는 이유는 그러한 집적효과 때문임을 상기할 때, 전국각지에 공업지대를 지역적으로 안배하려는 듯한 현재의 계획은 매우 비경제적이라는 사실을 외면해서는 아니 된다. 적정산업 입지의 조건은 무엇인가 하는 기초개념부터 다시 정립하고 이 문제를 다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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