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인 비료 부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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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세계적인 화학비료 부족 현상이 심각화 되고 있다. 미농무성 산하의 경제 연구소가 최근 발표한 보고서에 의하면 화학비료 공급이 세계적으로 부족하여 후진국에 대해서는 물론 선진국에 대해서도 타격을 줄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비료 때문에 한번도 곤란을 느껴 본 일이 없는 미국의 경우에도 올해 비료 사정은 유황 비료와 질소 비료가 각각 최소한 10%와 5%씩이나 부족하게 되리라는 것이다.
이 같은 세계적인 비료 부족 현상이 당장에 가져다줄 타격은 무엇보다도 비료 부족국과 식량 부족국에 대한 희생의 증대이다. 세계적인 비료 공급의 부족은 비료 부족국의 비료 확보를 더욱 어렵게 함으로써 농업 생산에 차질을 가져올 것이요, 또 비료 가격의 앙등 또한 비료 수입국의 농업 생산에 결정적인 불리한 영향을 미칠 것이다. 그러면 그 결과는 결국 식량 생산 활동의 둔화와 세계적인 식량난의 가중, 식량 부족국의 외화 부담 증대 현상으로 나타날 것이다.
세계적인 비료 부족 현상이 파생시킬 이와 같은 일련의 문제들은 일반적으로 선진국에서보다도 후진국에서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날 것이다. 대체로 후진국은 농업 생산의 비중이 크고 화학비료 소요량의 막대한 부분을 수입에 의존하며 또 그러면서도 식량 공급이 과히 넉넉지 못한 형편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이리하여 설령 식량 공급의 잠재력이 큰 경우라 하더라도 대부분의 후진국은 화학비료의 확보난 때문에 식량 생산에 차질을 면치 못할 것이다.
가까운 동남아의 경우만 하더라도 각국은 식량 사정의 호전을 위해 이른바 녹색 혁명 운동을 의욕적으로 벌이고 있지만 이의 성공을 위해서는 충분한 비료 사용과 수리 시설의 확충이라는 두 가지 요건을 충족하는 것이 절대적으로 요구되고 있다. 그 어느 한가지 조건도 이를 충족시켜 주지 못할 때 이들 후진국의 녹색혁명은 실패할 운명에 놓여 있고 식량 사정의 악화는 피할 길이 없는 것이다.
그리고 보면 우리 나라의 비료 사정이나 식량 사정도 이들 후진국의 그것과 정도의 차는 있지만 그 궤를 같이하는 것이다. 최근 4, 5년 동안 비료가 남아돈다고 하여 한때 수출까지 한 실적이 있기는 하지만, 올해부터는 도리어 비료를 수입해야 할 형편이고, 식량 수입량을 줄이기 위해서는 단시일 안에 대대적인 식량 증산을 꾀하고 자급 체제를 완성시켜야 할 형편에 있다. 이러한 처지에서 세계적인 비료 및 식량 부족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은 우리의 비료 및 식량 자급 체제에 획기적인 개혁이 있어야 하겠음을 통감케 하는 것이다.
물론 이와 같은 비료 및 식량 자급 체제 확립의 절실성은 우리만의 것이 아니고, 후진국의 공통적인 과제이기는 하다. 그러기 때문에 이번 아시아 극동 경제 위원회 총회에서는 개발도상국들을 지원하기 위한 「세계 비료 기금」의 창설에 관한 구체적인 제안을 준비할 것이 논의되었다. 비료 부족과 식량 부족에 허덕이는 후진국에 충분한 양의 비료를 적정가격으로 공급할 수 있게 하기 위한 것이다. 물론 이 안은 적극 추진되어야 할 일이고 또 그렇게 함으로써 혜택을 입는 나라는 오로지 후진국만이 아니고 세계가 모두 비료 부족과 식량 부족의 완화와 해소를 기하는데 도움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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