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은 발병 나도 똑바로 걷는 것"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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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국제탐사보도언론인협회(ICIJ)의 중국 지도부 친인척 비리 의혹 폭로(본지 1월 23일자 18면) 이후 시진핑(習近平·사진) 중국 국가주석의 개혁이 첫 시험대에 올랐다. 특히 시 주석 매형인 덩자구이(鄧家貴)까지 조세피난처로 재산을 빼돌렸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시 주석이 주도하고 있는 개혁의 명분과 당위성까지 의심받고 있는 형국이다. 그러나 시 주석은 비리 의혹이 폭로된 22일 오후 ‘중앙 전면심화 개혁영도소조’(개혁영도소조) 첫 회의를 주재하는 자리에서 “개혁은 발에 병이 있어도 안정되게 걸어가는 것”이라며 폭로에 개의치 않고 개혁은 계속될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중국의 모든 개혁정책을 총괄하는 개혁영도소조는 지난해 11월 열린 공산당 중앙위원회 제3차 전체회의(3중전회)에서 신설이 결정됐으며 조장은 시 주석이, 부조장은 리커창(李克强) 총리와 류윈산(劉雲山) 중앙서기처 서기, 장가오리(張高麗) 부총리 등 3명이 맡고 있다.

 국무원 신문판공실은 22일 이번 보도와 관련된 내용과 사진, 논평 등을 모두 삭제하라는 지시를 내린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 때문에 23일 중국 관영매체는 물론 웨이보(微博·중국판 트위터)에도 이번 사건과 관련된 어떤 보도나 글이 올라오지 않고 있다. 웨이보의 경우 22일 극소수 네티즌이 관련 글을 올렸으나 곧바로 삭제됐다. 그러나 이 같은 당국의 언론 통제가 계속될 경우 민중들의 불만이 커질 가능성이 있다. 특히 지난해 보시라이(薄熙來) 전 충칭(重慶)시 당 서기를 부패 혐의로 사법 처리한 데 이어 저우융캉(周永康) 전 정치국 상무위원까지 부패로 재판을 받게 돼 있어 이들의 지지세력이 반발할 것이 분명하다.

여기에다 ICIJ가 미국 워싱턴에 사무실을 두고 세계 60개국 160여 명의 기자가 참여하는 비영리 탐사보도 단체로 국제적 신뢰를 얻고 있다는 것도 부담이다. 일부에서는 시 주석이 정면 돌파를 위해 폭로된 내용에 대한 철저한 조사를 지시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 경우 시진핑 개혁의 명분과 당위성이 강화되고 개혁이 더 속도를 낼 수도 있다.

그러나 개혁의 상징인 덩샤오핑(鄧小平)과 시 주석의 전임자인 후진타오(胡錦濤) 전 주석의 친인척까지 재산도피 혐의로 조사할 수밖에 없어 정치적 부담이 너무 크다. 따라서 이번 폭로를 서방 언론의 음모로 보고 아예 무시하거나 조사는 하되 사실무근이라는 점을 강조하며 사태를 타개할 가능성이 가장 크다. 뉴욕타임스가 2012년 10월 원자바오(溫家寶) 친인척 재산이 27 억 달러(약 2조9000억원)에 달한다고 보도했을 때 원 총리는 조사를 자청했지만 중국 당국은 ‘미국의 음모’라며 무시했었다.

베이징=최형규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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