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아베노믹스 자랑에 돌아온 건 "왜 야스쿠니 갔나" 질타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4면

아베 신조 일본 총리(오른쪽)가 22일(현지시간) 다보스포럼 개막 연설을 마치고 클라우스 슈바프 포럼 회장의 질문을 듣고 있다. [다보스 AP=뉴시스]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세계경제포럼 연차총회(다보스 회의)에서 톡톡히 망신을 당했다.

 이번 다보스 회의 참석자 중 주요 8개국(G8) 정상으로는 아베가 유일했다. 아베는 예정됐던 국회 개원 일정까지 늦추면서 다보스 참석을 고집했다. 자신의 ‘아베노믹스’를 전 세계에 알리고 성과를 자랑하기 위한 절호의 기회로 여겼기 때문이다. 일본 총리가 다보스 회의 개막식에서 기조연설을 한 것도 이번이 처음이다.

 그러나 정작 다보스에서 아베에게 돌아온 건 “왜 야스쿠니(靖國)에 갔느냐”는 질문과 질타였다. 기조연설 전 열린 전 세계 주요 언론사와의 간담회에선 “(야스쿠니에 합사돼 있는) 전쟁 범죄자를 영웅이라 생각하고 있는 것이냐”는 비아냥을 들었다. 게다가 현재의 중·일관계를 제1차 세계대전 발발 전 상황과 비유하는 ‘무개념’도 드러냈다.

 22일 오후(한국시간 23일 새벽) 아베의 기조연설에는 2000명이 참석했다. 아베는 온갖 화려한 표현을 동원해 ‘아베노믹스’를 스스로 치켜세웠다.

 그는 영어 연설에서 스스로를 ‘드릴’에 비유하며 “전력(電力) 자유화나 의료의 산업화 같은 오랜 세월 ‘불가능한 일’이라 여겨졌던 것이 개혁되고 있다. 기득권이라고 하는 암반은 더 이상 나의 ‘드릴’에 무사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아베는 또 “한때 38조 엔까지 떨어졌던 세수가 아베노믹스로 2013년도에는 50조 엔으로 부활했다”고 강조했다. 그는 “일본에 온 것은 ‘황혼’이 아닌 ‘새로운 아침’”이라며 “일본에 투자하라”고도 했다.

 15분간의 연설 뒤 질의응답에 들어가자마자 다보스포럼의 클라우스 슈바프 회장은 “좀 미묘한 문제인데…”라며 바로 야스쿠니 참배를 문제 삼았다. 슈바프 회장은 “(아베는 기조연설에서) 아시아·태평양지역의 안정과 평화를 논했는데, 본인의 야스쿠니 참배로 이 지역, 특히 한국·중국과의 관계가 악화되고 있는 게 아니냐”고 직격탄을 날렸다.

 그러자 아베는 “큰 오해가 있으니 야스쿠니에 대해 설명하겠다”고 운을 뗀 뒤 “야스쿠니에는 150년 전 메이지(明治)유신 과정에서 죽은 이들과 제1, 2차 세계대전 희생자 등이 모두 모셔진 곳”이라며 기존 주장을 장황하게 녹음기 틀어놓은 듯 반복했다. 하지만 A급 전범 이야기는 쏙 뺐다.

 지지(時事)통신은 한 회의 참석자를 인용, “아베가 야스쿠니 참배를 정당화한 건 외국인들에게는 깊게 이해가 되지 않았다”며 “오히려 한·중과의 관계가 아베의 약점이란 게 드러났다”고 지적했다.

 기조연설에 앞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도 아베는 야스쿠니 문제로 진땀을 흘렸다.

 “A급 전범이 영웅이냐”는 중국 기자의 단도직입적인 질문에 아베는 “(야스쿠니에는 전쟁) 영웅이 있는 게 아니라 전쟁으로 사라져간 이들의 혼이 있을 뿐”이라며 동문서답을 거듭했다. A급 전범을 말할 때는 "이른바 A급 전범”이란 표현을 썼다. 전범재판의 판결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일 수 없다는 아베의 ‘본심’이 우러나왔다.

 한편 아베는 중·일 간 군사충돌 가능성에 대한 질문에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과 독일은 최대의 무역상대국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전쟁이 일어났다”며 “(현재 중·일관계도) 비슷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 답변은 파이낸셜타임스(FT) 등에 의해 “중·일 간의 전쟁 발발 가능성을 시사한 것”으로 해석됐다. FT의 마틴 울프 수석논설위원은 “아베 총리의 이런 태도는 간담을 서늘하게 한다”며 “미국이 결단력 있게 나서야 한다”는 글을 블로그에 올렸다.

 23일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관방장관에게도 이에 대한 외신의 질문이 쏟아졌다. 하지만 스가 장관은 “세계 제2, 3위 경제대국 간 전쟁 같은 것을 하면 안 된다는 점을 설명하다 나온 이야기”라며 “왜 (외신이) 그런 식으로 받아들인 것인지 전혀 모르겠다”고 말했다. 아베의 이 발언을 문제 삼은 일본 언론은 한 곳도 없었다.

도쿄=김현기 특파원

국회 일정 미루고 다보스 갔는데 … 망신 당한 아베
"A급 전범이 영웅이냐" 질문에 "영웅 아닌 혼 있을 뿐" 동문서답
중·일 관계, 1차대전 비유 논란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