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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릉도 거점 대규모 간첩단 범죄사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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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전영관 (44·울릉군 남면도 동 373-8) 62년 12월 남파간첩 전덕술에게 포섭, 그와 함께 월북 노동당에 입당 당시 연락부장 이효순으로부터 울릉도를 전진기지화하여 지하망을 조직, 위장업체를 운영, 경제토대를 구축, 어선가장, 공작선을 확보, 포섭자를 대동 월북하라는 등의 지령과 미화 5천「달러」·한화 1백만원·무전기 2대·난수표 등 암호문건 2조를 수령하고 63년 2월 잠입, 활동타가 63년 11월 전영봉을 대동 월북, 사업보고 후 63년 12월 잠입한 자.
김용득 (53·서울 관악구 봉천동 645-83) 64년 4월 전영관에게 포섭 월북, 노동당에 입당, 이효순으로부터 지령과 한화 100만원·난수표 등 암호문건 2조를 수령하고 64년 6월께 잠입한 자.
전영봉 (43·서울 관악구 봉천동 8-71) 63년 11월게 전영관에게 포섭, 그와 함께 월북, 노동당에 입당, 당시 노동당 중앙위부부장 유장직에게 군사기밀을 제보, 결정적 시기에 영합하라는 지령과 한화 30만원·난수표 등 암호문건 2조 등을 수령, 63년 12월께 잠입, 활동타가 66년 10월 홍영태를 대동 월북, 한화 7백만원을 수령, 66년 11월 잠입한 자.
홍영태 (47·대구시 남구 대명동 321의 8) 작년 10월게 앞의 전영봉에게 포획 그와 함께 월북, 노동당에 입당, 동당 연락부 부부장 임모로부터 지령과 한화 50만원·난수표 등 암호문건 2조를 수령하고 66년 11월 잠입한 자 등인바 63년 2월부터 74년 2월까지
첫째, 총 155통의 .A-3 지령을 수신하는 일방, 손두익 서화수 김용희 박인조 전원술 전국술 전석봉 전서봉 정의출 전년순 한학준 한명국 한명도 전성술 전경술 전주봉 권수봉 조상종 전순봉 정계월 안월득 금용호 등을 포섭하여 교사·은행원·교회장로·어민·서민 등에 침투시켜 망부직.
둘째, 66년 6월께부터 위장업체로 서울에서 전화매매상 동명사와 부동산업 우진사 및 토건업 삼진건설을 달운하고 대구에서 성림인쇄소를 운영하여 경제토대를 구축.
셋째, 공무원·사업가등으로 「서클」 『아생회』를 조직,
넷째, 67년 2월 울진 해안에 무인 「포스트」를 설정동 약도 설명서와 앞의 박인조 등이 탐지한 대구비행장 상황 등 군사기밀을 내용으로 한 사업보고서를 작성, 대북 보고.
다섯째, 71년 2월 재일간첩 이좌영과 접선, 앞의 박인조 등 30명의 지하망 조직 실속보고기·김일성 회갑 축하인사편지 및 선물 등을 수교하고 그로부터 한화 1천 3백만원 암호문건 3조를 수령. 어선 대영호를 구입, 공작선으로 운영, 현역 및 예비역 영관급 20명으로 오동지회를 조직, 앞의 전영봉을 부회장으로 취임시켜 군부내 망 부식을 기도.
김용희 (38·노능군 남면 도동 373의 8) 63년 2월 전영관에게 포섭, 노동당에 입당, 그로부터 A-3 해독방법을 교육받고 한화 1백 80만원 수령. 전영관·김용득·전영봉 간의 연락임무 수행한 자.
손두익 (45·울릉군 남면 저동 53의 10) 62년 12월 전덕술에게 포섭, 그들 일당의 울릉도 상륙거점과 북괴 공작선과의 접선활동을 도와주고 65년 11월 20일 어선 「치수호」로 월북, 거진항과 울릉도의 오비현황에 관한 기밀을 제보, 지령을 받고 동년 12월 20일 잠입, 어선납북공작을 기도한 자.
박인조 (39·여능군 배면 현제동 7) 63년 5월 전영관에게 포섭, 노동당에 입당, 공작금 전달, 대구 비행장 격납고 등 군사기밀을 탐지 보고, 전영봉과 대구에서 성임인쇄소를 운영하여 불온선전문 인쇄토대 구축.
서화수 (41·여능군 남면도동 373의 8) 63년 2월 전영관에게 포섭, 무전기를 수령 은닉 보관, 김용득의 월북 탈출 및 잠입활동을 방조, 공작금 전달. 67년 9월이후 공작선 대형호를 운영하면서 어부 동조고를 포섭 활동한 자.
전원술 (39·대구시 대봉동 169-20) 62년 12월 전덕술에게 포섭, 전영관의 활동지원지령과 미본토불 1천불·금지환 30개를 수령, 2회에 걸쳐 전영관의 대북 보고시 전국술과 같이 무전 교신활동을 방조, 공작금 30만원을 전영관에게 전달. 학원 내 망부식을 기도한 자.
전국술 (34·부산시 서구 대신동 3가 66) 62년 12월 전덕술에게 포섭, 전영관·전원술 등에게 연락 접선. 회합케 함. 전영관의 자금지원으로 연세대에 입학하여 한일회담 반대 등 반정부 「데모」선동. 68년 3월 은행에 침투 금융계 동조자 규합 활동한 자.
전서봉 (49·울릉군 남면 사동 236-7) 62년 12월 전덕술에게 포섭, 지령과 공작금을 수령하여 66년 11월께까지 전영관·김용득·전영봉에게 연락 및 회합장소 등 편의제공, 공작선 대영호 운영자금 3백만원 융자를 알선한 자.
김장곤 (29·서울 도봉구 미아동 938-6) 63년 11월 전영관에게 포섭되어 월북기도, 전영관으로부터 무전기 1대를 수령, 자가 마당에 이후은닉, 73년 4월 광운전자 공대강사로 침투하여 학원내 망부식을 기도한 자.
전석봉 (60·달성군 성서면 장기리 160) 울릉군 출신 제5대 민의원을 역임한 자로서 62년 12월 전덕술과 접선, 북괴 우월성 선전에 동조, 66년 11월부터 전영관·김용득·전영봉 등의 문첩활동의 정을 앝면서 70년 10월 사업체 운영자금 95만원을 보조하고 73년 8월까지 4회 이들에게 회합장소와 숙식 등 편의제공한 자.
한학수·한명국·한명도 등은 기독교 장로 및 목사 등으로서 앞의 전덕술·전영관 등의 간첩활동의 정을 알면서 자가 마구간을 그들의 대북 무전교신장소로 제공.
전성술 등 17명은 62년 12월∼74년 2월 간첩 전영관·전영봉·김용득 등과 그들에게 포섭된 김용희·손두익·박인조·서화수·전원술·전국술·전서봉·김장곤 등이 일련의 간첩망이라는 정을 알면서 그들로부터 금품을 수수 회합하고 그들에게 편의제공한 자.
이성희 (47·전주 남노송동 175-101) 64년 2월∼67년 11월 동경대학교 대학원 유학시 앞의 이좌영에게 포섭된 후 재일 공작원 임모의 안내로 청삼해안에서 북괴 공작선편으로 입북, 노동당에 입당, 당시 북괴 부수상 김일 등을 상면, 담상지도원으로부터 당시 육군대령이던 실제 이모를 포섭·학원 내 토대구측과 군부내 망부식 등의 지령을 받고 일본 경유 67년 11월 30일 국내잠입.
71년 l0월 공작금 1백 50만원으로 정계 및 언논계요인에 접근. 전북대총장 운동전개.
73년 2월 앞의 이좌영과 접선, 평소 친제 이모 장군을 통하여 수집한 휴전선 노비상황 및 국군사기 등 군사기밀을 제보.
최견식 (37·전북 부안군 부안면 속중리 176) 65년 9월 농업기술 연수차 도일시 이좌영과 재일북괴공작원 우모에게 포섭. 68년 7월 21일 동경대학원 연수차 재도일, 당시 앞의 우 모의 안내로 청삼해안에서 북괴공작선편 으로 입북, 노동당에 입당, 북괴 노동당 중앙위원 유췌직 등으로부터 지령을 받고 일본경유 70년 6월 23일 국내잠입.
70년 9월 공작금 1백여만원으로 전북대 교수운동전개·수의과 병원개설 동조자 포섭기도. 71년 2월 공화당 부안지구 부위원장으로 정계에 출마, 당내청년 「엘리트」 회합을 지원한 자.
김영격 (40·전북 고창군 심원면 두어리 344) 65년 12월 농업기술 연수차 도일시 앞의 이좌영 및 재일공작원 오두성에게 포섭. 66년 8월 재일공작원 김모의 안내로 육삼해안에서북괴공작선 편으로 입북, 노동당에 입당, 당시 연락부장 이효순 등으로부터 지령을 받고 일본경유 동년 10월 29일 국내잠입, 70년초 고창부근 해안경비 강화상태를 위험신호조직으로 대북 보고한 자.
유창렬 (43·전북 장수군 장수면 동촌리 442) 65년 9월 농업기술연수차 도일시 앞의 이좌영 및 재일공작원 김봉식에게 포섭, 공작금 5만「엥」으로 66년 9월 복도민단사무원으로 침투, 김봉식에게 동민단의 대한조총련공작정보를 수집 보고, 73년 8월부터 이간국 등에게 북괴 우월성 선전 등으로 동조자 포섭기도한 자.
이영직 (42·전북 진안군 마령면 간지리 242) 65년 9윌 농촌기술연구차 도일시 앞의 이좌영 및 재일조총련공작원 송기수 등에게 포섭, 지령을 받고 66년 9윌 국내잠입.
72년 2윌 신민당 진안지구환직부장으로 정계에 침투, 당내 불평불만자 중심으로 반정부 동조자 규합을 기인한 자.
구자현 (40·서울 동대문구 이목동 564-6) 68년 6월 앞의 이좌영에게 포섭, 지령을 받고 68년 10월∼69년 10월 공작 30만원으로 본적지 농민 20명으로 「농사개량구락부」를 조직, 70년 7월 이좌영과 회합, 그로부터 숙대 한모 교수의 포섭지령을 받고 도봉산 망월사 승려 취자홍의 포섭을 목적으로 그를 안내 접선시킴.
이을영 (45·서대문구 대현동 40의 18) 67년 4월 이좌영에게 포섭, 「서클」 조직지령과 공작금 5만원을 받고 67년 8윌 국민학교동창 10명으로 「위친계」를 조직. 71년 10월 위 이좌영과 회합, 그로부터 공작금 20만원을 받고 남대문시장 상인 및 후배학생 등에게 정치적 영향을 주어 반정부선동을 지도한 자.
이사영 (33·성동구 능동 451-1290) 67년 4윌 위 이좌영에게 포섭, 국내간첩망 연락감시지령을 받고 67년 5월∼72년 9윌 이좌영의 공작연락문건을 위 이성희에게 전달. 71년 9월 위 이좌영의 지령으로 간첩 이을영·중대교수 백모 등 수명에게 연락하여 동인과 접선케 함. 74년 2월 일본 안택산업사원으로부터 이좌영의 공작문건을 수수하여 국내강원에게 전달한 자.
이지영 (49·익산군 삼기면 기산리 364) 69년 9윌 이좌영에게 포섭, 지령을 받고 북괴방송 청취로 사상무장.
이좌영으로부터 한화 70만원을 받고 그의 지시로 일본기술 연수생 출신 진형섭을 안내, 그와 접선케 하고 수시 구자현의 사업성과 독촉 등 연락임무수행.
72년 1윌부터 본적지 거주농민·친지 등에게 북괴우월성 선전으로 동조자 포섭 기도한 자.
하석순 (47·부산 동래구 민악동 548) 63년 5월 위 이좌영에게 포섭, 지령과 한화 8만원을 받고 한국 해원 양성소총무로 침투.
71년 2월 이좌영과 접선, 그의 지시로 이화대를 월미호 선원으로 취직, 도일시키는 한편 한국 해원 양성소출신 외항선원을 중심으로 망부식을 기도한 자.
양한철·임례환 등은 65년 9월 농업기술연수차 도일시 위 이좌영 및 재일지도원 오두성·우모 등과 접촉, 그들로부터 정치사상교양을 받고 동조, 일화 5만∼10만「엥」의 금품을 수수.
주대성 (44·부안군 동진면 당상리 80) 60년 8월부터 재일간첩 주정덕과 수시 서신연락, 61년 3월 한화 30만원과 「카메라」 1대 수수. 65년 10월 주정덕에게도 일하는 최규식을 접선시키고 그를 통하여 여자용 손목시계 1개 수수.
김영상 (45·부산 영도구 남항동 2가 186) 68년 8월 외항선 갑판장으로 도일, 재일조총련공작원 오모에게 포섭, 지령을 받고 국내에 잠입 활동, 69년 9월 위 오모 지도원과 접선, 정보제공. 70년 1월 위 지도원으로부터 공작금 일화백만「엥」과 불온전단을 받아 부산시내 공중사소 등에 배포기도한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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