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규제 개혁에 정권의 명운을 걸어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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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박근혜 대통령이 연일 대대적인 규제완화를 다짐하고 있다. 박 대통령은 어제 스위스 다보스포럼에서 “기업 투자와 관련된 규제를 백지상태에서 전면 재검토해 꼭 필요한 규제가 아니면 모두 풀겠다”고 밝혔다. 글로벌 기업들의 최고경영자들에게 전면적인 규제 재검토와 철폐를 약속한 것이다. 박 대통령은 이에 앞서 지난 13일 신년기자회견에서 ‘규제총량제’를 도입하고, ‘규제개혁 장관회의’를 신설해 직접 주재하겠다고 다짐했다. 대통령이 규제 혁파의 전면에 나서겠다고 선언한 셈이다.

  우리는 박 대통령이 규제개혁을 ‘경제 살리기’의 최우선 과제로 잡고 이를 진두지휘하겠다고 거듭 강조하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한다. 사실 역대 정권 가운데 규제완화를 약속하지 않은 정권은 없었다. 그러나 집권 초기에 다짐했던 규제개혁의 다짐은 번번이 흐지부지됐고, 정권이 끝날 때쯤이면 오히려 규제가 늘어나 있었다. 유일한 예외가 외환위기라는 국가적인 위기상황에서 집권한 김대중 대통령 정부였다. 김대중 정부는 위기극복의 일환으로 대대적인 규제완화를 천명했고, 대통령이 추진상황을 직접 챙겼다. 그 결과 임기 중 규제를 2000여 건 줄일 수 있었다. 국가부도라는 절체절명의 위기감과 대통령의 의지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외환위기만큼 극적이진 않지만 지금도 위기상황이다. 경기부진이 장기화하는 가운데 저성장 구조가 고착화할 위험에 처했다. 일시적인 경기침체가 아니라 자칫하면 나라의 성장동력을 상실할 위기에 빠진 것이다. 이런 위기상황에서 한국 경제를 다시 성장의 궤도에 올려놓으려면 내수 중심으로 경제성장의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 그러자면 서비스업을 키우고 기업의 국내투자를 확대해야 한다. 돈 들이지 않고 서비스업 육성과 투자 확대를 이끌어낼 수 있는 유일한 길이 바로 규제완화다. 박근혜 정부가 집권 2년차에 규제개혁을 통한 내수 살리기를 정책의 최우선순위에 둔 것은 그래서 다행스럽고 바람직하다는 것이다.

  문제는 실천이다. 규제완화는 규제로 이득을 보는 기득권 세력과의 전쟁이나 다름없다. 각종 이익집단의 반발과 정치권의 압력, 공무원들의 저항을 이겨내야 가능한 일이다. 당연히 쉬운 일이 아니다. 대통령이 의지를 가지고 지속적으로 챙기지 않으면 흐지부지될 공산이 크다. 이 점에서 박 대통령의 규제개혁 의지는 충분히 드러났고, 앞으로 그 성패는 대통령의 끊임없는 독려에 달려 있다고 본다. 정부는 조만간 의료와 교육, 관광, 금융, 소프트웨어 등 5대 서비스업을 중심으로 투자를 가로막는 규제를 대폭 철폐하는 방안을 내놓을 계획이라고 한다. 우리는 그 추진 과정과 결과를 예의 주시할 것이다. 박근혜 정부가 임기 중에 공공기관 개혁과 규제 개혁만 제대로 해낼 수 있다면 역대 어느 정권도 이루지 못한 성과를 거두게 될 것이다. 규제 개혁은 나라 경제의 장래와 박근혜 정부의 명운이 달린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