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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선 보이는 영국 수채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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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영국에 있어서 20세기 전반의 갖가지 수채화기법을 보이는 「영국 수채화전」이 8일 국립현대미술관 서관(덕수궁내)에서 개막된다. 오는 24일까지 17일간 공개하는 이 전람회에는 1900년 이후 50년에 걸치는 26명의 작품 63점이 출품된다. 크기는 30호 이내 10호 내외의 것.
「유럽」과 중동 및 극동지역을 순회중인 이들 작품은 영국문화원이 선정한 대표적인 수채화. 조각가로서 유명한 「헨리·무어」의 「스케치」를 비롯하여 20세기 영국화단에 영향을 끼친 「벤·니콜슨」「그레이엄·서덜랜드」「풀·내쉬」 및 현대작가로서 쟁쟁한 「로버트·애덤즈」「구엔·존」「포지킨즈」「데이비스·존즈」등이 포함돼 있다.
그래서 전통적인 기법을 보이는 작품은 물론 인상파·입체파·미래파·구성주의·「슈르레알리슴」「네오플라스티시슴」 그리고 현대회화의 비형상 경향까지 망라하고 있다. 그리고 그 재료에 있어서도 수채화의 일반적인 수성물감만이 아니라 연필·「잉크」·「초크」·「오일」·「과쉬」를 때때로 혼용했다. 판화의 수법을 응용한 것이 있는가하면 어떤 경우에는 색종이를 오려 붙이거나 혹은 물감 칠한 종이를 오려서 더덕더덕 「콜라지」하는 등 매우 다양하게 구사돼 있다.
이런 다채로운 재료의 이용과 표현경향은 이제까지 우리나라의 상식적인 수채화개념에 여러가지 과제를 제시해주고 있다. 우리 주변에는 수채화분야에서 유독 알려진 작가도 없으며 그런 작품전도 극히 적은 까닭에 수채화라면 학생들의 습작과정 정도의 작품으로 경시하는 경향마저 없지 않다.
이번 수채화는 한국에 소개되는 영국의 미술품으로 첫 「케이스」라는 점에서도 그 의의는 크다. 지난 수년동안에 미국의 판화와 「프랑스」의 판화 및 「밀레」작품전등이 열렸지만 영국 것으로는 이번이 처음이며 특히 서양미술품의 국내 소장품이 거의 없는 우리실정에서 일련의 원화를 대할 수 있다는 것은 교육적인 면에서도 좋은 기회이다.
서구에서 수채화의 전성기는 18·19세기이며 20세기에 들어와 서서히 퇴조를 보여왔다. 물론 수채화기법은 20세기의 허다란 미술사조의 혁명에 중요한 역할을 하지 못한 게 사실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현대 미술가들이 그들의 화법을 새롭게 개척하기 위해 수채화 기법을 끌어들이고 있으며 이런 점에서 이 전람회는 특별한 관심을 모을만한 것이다.
가령 「P·W·스티어」의 풍경화나 「폴·내쉬」의 모호한 초현실주의적 작품에는 영국의 위대한 수채화가 「컨스터블」이나 「터너」의 화조와 기법이 반영돼 있다. 「스티어」는 교묘하게 변조된 색조와 어두운 「터치」로서 풍경화의 아주 이상적인 세계를 창조해낸 것이다.
영국에서 입체파·미래파의 효시적 존재인 「윈덤·루이즈」는 화조가 강렬해서 묵직한 형상을 창조했고, 「내쉬」는 창백한 색만으로 화폭을 장식했다. 「벤·니콜슨」은 형상의 뛰어난 아름다움에 보라빛 수채물감의 부드러운 「터치」가 특징이다.
그러나 「헨리·무어」의 조그만 습작 「한 좌상과 네 입상」만큼 전통적 수채화에 커다란 전기를 마련한 작품은 드물다. 이 작품은 「왁스·크레용」을 입힌 매끄러운 화지 표면에 작은 점들을 찍어 묘한 색감을 내었는데, 이는 수채와 기법을 다양하게 변화시켜 사용했나의 극단적 예일 것이다. <이종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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