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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지』인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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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말은 사람과도 같다. 사람처럼 역사가 있고 생명이 있다. 그리고 감탄이 있다.
고뇌와 성장이 사람의 이마를 주름지게 하듯 말에도 주름이 진다. 그 주름에 따라 말은 사람에게 애착을 안겨주기도 하고 또 증오를 안겨주기도 한다.
따라서 말의 뜻이란 언제나 고정되어 있는 것도 아니다. 이런 말의 주름이 풍기는 정감에 따라 뜻이 바뀌어지기 때문이다.
내지라는 말이 있다. 한국에 대한 원자재 공급문제에 언급하다 일본의 한 실업 인은『내지에서도 부족하므로…』라 말하였다.
그도 별 뜻 없이 썼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는 그 말에서 고뇌와 분노와 굴욕의 주름을 언제나 보는 것이다. 일본인이 내지 라 할 때 그들은 한국과 중국을 침략한 이후로는 특별한「뉘앙스」가 첨가되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그들을「왜놈」이라 할 때 느끼는 독특한 감정과 같이 그들이「내지 인」이라 할 때 그 반대개념인「조오센징」(조선인)「시나징」 이란 말에는 많은 민족적 편견이 섞인「스테레오타입」이 작용하고 있는 때문이다.
내지란 말에는 본시 두 가지 뜻이 있다. 사기에 보면 내지란 기내의 땅을 뜻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곧 왕이 거처하는 곳 사방 5백리를 기내라 했다. 그러니까 내지란 왕직할지의 뜻이 있다.
명치 초의 일본측 자료를 보면 탐정의 목적으로 청국에 보내는 장교에게『내지 여행비』 를 지급했다는 기록이 있다.
이 때의 내지란 청국의 오지를 뜻했다. 그것은 청정의 고향이 북지와 만주인 때문이었다.
고대 일본 사에도 왕기 내라는 게 있었다. 지금의 경도둘레 5개 지방을 말했다. 그것은 왕도가 대화(나랑)에 있었을 때의 일이다.
또 하나는 본국내의 토지라는 뜻이다. 후한서 시대의 일이다. 그것은 변경과 우대되는 뜻으로 사용되었다.
「내지」라는 말에는 두개의 주름이 겹쳐 잡혀 있는 것이다. 명치유신과 함께 천황의 세력은 전국에 미친다. 따라서 그 때부터는 내지란「기내」가 아니라 전국을 뜻하는 말로 바뀌었다.
그러나 일본을 결코 내 지로 볼 수 없던 한국인에게는 이처럼 역겨운 말은 없었다. 일본인은 미국인이나 독일인에 대해서는 스스로를 결코 내지 인이라 부르지 않는다. 아직도 내지라는 말을 쓰는 일본인이 의식적으로 우월감을 표백하려했다고 보고 싶지는 않다. 다만 무의식적으로「내지」라는 말이 튀어 나왔다면 한국인에 대한 이지러진「스테레오타입」이 아직도 일본인들의 의식의 심층에 도사리고 있다는 증거일 것이다. 그것은 양국의 보다 건강한 교린을 위해 결코 바람직한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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