덩샤오핑은 준비된 넘버원, 마오쩌둥 2인자 아니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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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먹을 것을 가진 자가 결국 모든 것을 가진 자다.” “검은색이든 흰색이든 무슨 상관인가. 쥐를 잡는 고양이가 좋은 고양이다.”

 중국 ‘개혁개방의 아버지’로 불리는 덩샤오핑(鄧小平·1904~97)이 남긴 말들이다. 마오쩌둥(毛澤東)의 뒤를 이어 현대 중국을 설계한 덩샤오핑의 인생은 파란만장했다. 세 번이나 권력에서 밀려나는 시련을 겪었고, 70대 중반의 나이에 비로소 자신의 시대를 열었다.

 동아시아 전문가인 미국 하버드대 사회학과 에즈라 보걸(84) 명예교수는 이런 덩샤오핑의 삶에서 혼란스런 현대 중국을 이끌어 온 리더십의 형성과정을 읽어냈다. 자신의 저서 『덩샤오핑 평전』(민음사) 한국판 출간을 기념해 21일 오전 서울 중구 웨스틴조선호텔에서 기자들과 만난 보걸 교수는 “덩샤오핑은 변화와 안정 사이를 오가며 끊임없이 균형점을 찾으려 애쓴 탁월한 지도자”라고 평했다.

 보걸 교수는 중국의 거대한 개혁이 어떻게 덩샤오핑이라는 인물을 통해 실현될 수 있었는지에 초점을 맞췄다. 이를 위해 10여 년에 걸친 자료조사를 거쳤고, 덩샤오핑의 가족과 장쩌민(江澤民)·황화(黃華) 등 그와 함께 일한 간부들을 인터뷰했다. “2000년 하버드대를 은퇴한 후 미국인들에게 동아시아의 발전을 이해시키는 작업을 하고 싶었습니다. 현재의 중국을 만들어 낸 덩샤오핑이 가장 좋은 주제였죠. 중국 학자들은 공부할 수 있는 주제가 정해져 있는데 비해, 나는 외국인 학자였기 때문에 누구에게나 자유롭게 접근해 원하는 것을 얻어낼 수 있었습니다.”

 보걸 교수는 특히 덩샤오핑이 광대한 중국 대륙에 불러 일으킨 개혁의 공과에 책 전체의 3분의 2 이상을 할애했다. “덩샤오핑은 대륙을 운영하기 위해 지방의 관리들에게 자주성을 부여하면서 ‘현대화’와 ‘경제적 발전’이라는 기준으로 이들을 철저하게 평가했습니다. 이를 통해 놀라운 성장을 이뤘지만, 그 과정에서 특권남용과 부패라는 현재 중국의 문제가 발생하게 됐죠.”

 덩샤오핑을 ‘마오쩌둥의 2인자’로 보는 견해에 대해서는 “저우언라이(周恩來)가 2인자의 역할을 한 반면 덩샤오핑은 철저히 독립적이었다. ‘넘버원’에 오를 준비가 된, 탁월한 의사결정 능력을 갖추고 있었다”고 말했다.

 2011년 미국에서 출간돼 주목을 받은 이 책은 지난해 중국 출간 당시 톈안먼 사건을 다룬 장이 축소되는 등 10% 가량이 잘려나가야 했다. 보걸 교수는 “일부 삭제됐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이 톈안먼 사태에 대해 중국의 그 어떤 책보다 정확하게 서술하고 있다”고 자신했다.

중국 뿐 아니라 한국과 일본 등 동아시아를 오랫동안 연구해 온 그는 최근 악화되고 있는 한·중·일 관계에 대해 “한국과 중국이 생각하는 것처럼 일본이 군사대국의 열망을 갖고 있다고 보지 않는다”는 견해를 밝혔다.

“일본 아베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 등에 대해 주변국의 과도한 대응이 오히려 일본을 우경화로 이끌고 있다”고 지적하면서 “국익을 위해서는 하루빨리 정상들이 만나 문제를 풀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또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해서는 “쿠데타를 통해 정권을 잡았고 자유를 탄압한 것은 분명하지만, 그 시기를 거치면서 한국은 한국전쟁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발전했다. 그 공적을 간과할 수는 없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영희 기자

◆에즈라 보걸(Ezra Feivel Vogel)=1930년생. 하버드대 교수를 지내다 현재 명예교수로 있다. 하버드대 아시아센터 소장, 중앙정보국 동아시아 문제 분석관(1993~95) 등 역임. 저서 『박정희 시대: 한국의 전환 』(2011), 『일본은 아직도 넘버원인가? 』(2000)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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