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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정 여운 관가의 「분수론」 설왕설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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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출퇴근 버스이용 늘어>
○…숙정 이후 안정을 되찾고 있는 관가의 분위기가 달라지고 있다.
정리기준이 「분수에 넘치는 생활」이었기 때문에 관가는 분수를 찾아 표면적으로는 사치생활을 지양, 「에너지」파동 때도 볼 수 없었던 근검절약운동이 일단 번지고있다.
치안국장실의 접대용 담배가 「은하수」에서 「청자」로 격하되고 보사부 장관실은 숫제 접대용 담배통을 없애버렸다.
매주 수요일이면 골프장의 주말 「부킹」으로 분주히 울리던 전화 「벨」소리도 일제히 멎었다.
외식은 물론 근무시간 중의 다방 금족령(법무부)이 내려진 곳도 있고, 굳이 그런 상부 지시가 아니더라도 도시락 지참, 출퇴근 때의 「버스」이용이 늘어 서울시 본청의 경우 종래의 30%선에서 90%이상으로 뛰어 올랐다.
공무원들 모두가 자기주변을 살피기 시작한 것 같다. 호화주택, 부업, 직계가족 명의의 자산 이런 것을 챙겨보고 그 중 후일에라도 말썽거리가 됨직 하다고 보면 일단 정리하기 시작한 것이 공통된 모습. 생활태도에도 변화가 일어 「골프」는 장·차관도 포함해 원칙적으론 금기로 됐다.
그 동안은 각 부처의 이사관 급 이상, 경제부처의 경우 사무관에 이르기까지 「골프」를 쳤다.
「골프」의 경우 1회 경비가 줄잡아 1만원 이상. 비록 공무원 스스로가 부담하지 않았다 해도 분수 넘친 도락의 첫째로 꼽힌 것. 상공부의 이사관 K씨는 일요일 가족 모두를 데리고 집 뒤 야산을 산책했는데 과자·음료수 값으로 지출 3백 80원.
그는 「골프」보다는 1만원이 절약된 데다 애들이 무척 좋아하더라고 큰 발견이라도 한 듯 동료들에게 며칠간 광고를 했다고.

<고급 요정도 서리맞아>
○…1인당 자리 값 1만 5천 원∼2만원의 고급요정도 관가의 화제에서 완전히 사라졌다. 관리들의 발이 끊기자 관리를 동반하던 업자들의 발길도 뜸해져 비밀요정·고급요정들이 서리를 맞아 문을 닫고 있다. 고급 요정과 맞먹는 고급 「살롱」출입은 없지 않은 모양이지만 이 경우도 철저한 암행인 것 같고-.
공무원의 치장도 달라져 시계는 「롤렉스」, 「라이터」는 「뒤퐁」등의 유행어가 사라졌다.
특히 고급시계는 사치품 1호가 돼 고급시계를 가졌던 관리들은 그 시계를 장롱 속에 넣고 대체했다.
재무부산하 ××청의 한 과장은 1천 5백 「달러」 짜리 「롤렉스」시계를 끌러버리기만 하고 싸구려 시계를 구하지 않아 하루에도 몇 차례 씩 직원들에게 시간을 물어 대답이 귀찮아진 N씨의 제의로 과의 직원이 1만원을 거둬 싸구려 시계를 상납 아닌 선물로 전했다는 얘기.

<고관 부인 몸치장 검소>
○…가족의 생활도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 중의 하나.
국무회의에서 가족의 생활태도도 단속하라는 얘기가 나온 뒤 한 전직 장관 얘기가 다시 화제가 됐었다.
얘기론 그의 가족들에 대한 여러 가지 얘기 끝에 초등학교에 다니는 막내가 생일날 친구들을 초대했는데 초대장엔 「내방 직통전화」의 번호가 새겨져 있었고 집에 갔더니 그 꼬마에게도 전용차에 전용 식모까지 있어 그 반 어린이들의 선망의 표적이 됐다는 것.
이것이 시중의 화제가 돼 그가 자리를 물러나는 원인의 하나가 됐을 것이고 이 때문에 특히 가족들의 몸단속이 강조된 것이 아니겠느냐는 것.
어떻든 요즘 3급 이상 공무원 부인들로 구성된 「새살림 회」는 몸치장이 눈에 띄게 달라졌다.
「다이어」의 크기, 「핸드백」을 경쟁하고 「밍크」목도리쯤은 필수품이었던 부인들의 치장경쟁이 어느새 검소한 차림을 다투는 것으로 바뀌었다는 것.
수백만 대 이상의 계모임에 끼여있던 고급 관리의 부인들은 그 계를 사실여부는 알 길이 없지만 친척에 넘겼다면서 다른 부인을 동반해 나와 계 모임에 소개하는 모습이 늘고 있다는 얘기도 있다.
학교 등에서의 치맛바람, 귀금속상, 거액의 계모임, 이것은 남편들의 골프장만큼 부인의「터부」가 된 것이다.

<경제부처선 승진 안 바라>
○…3백여 명의 자리를 메울 승진기회가 넓어졌다.
특히 인기 있는 경제부처의 「좋은 자리」가 많이 비고 3급 특별 승진시험이 예정을 앞당겨 3월 중 실시된다.
인사를 앞두고 숙정 무풍지대였던 기획직 부처의 연구직 공무원들은 전출희망을 적극적으로 표시하고 있는 반면 거센 바람을 겪었던 경제부처에선 승진이나 좋은 자리 전출을 위한 운동이 자취를 감췄다.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어떤 일선 세무서장은 비교적 말이 적은 본부 근무를 희망한다는 얘기도 있다.
어떤 사람은 숙정 후의 경향으로 △정년을 채워 퇴직하기 위해 한직을 찾는 사람 △자리나 직급엔 초연 하려는 사람 △그리고 얼마간은 언제 퇴직될지 모르니 언제 닥쳐도 괜찮도록 대비하려는 사람들로 대별할 수 있다고 했다.
이렇게 진단하는 관리들은 스스로도 분수를 찾아 움츠려드는 생활자세 등 정상으로 모습을 찾아가는 관가 분위기는 한 두 달 더 못 갈 것이라고 했고. 어떤 사람은 최소 반년은 가지 않겠느냐고 했지만 어떻든 근원적으로 관가가 맑아져 가리라는 낙관적인 견해는 찾기 힘들다.

<처우 대폭 개선 바라고>
○…숙정이 실을 거두기 위해선 비현실적인 예산제도의 개선과 획기적인 공무원 처우개선이 뒤따라야 한다는 것은 공통된 얘기다·
총무처는 공무원 보수제도의 전면개편을 전제로 장기적인 처우개선책을 검토하고 있다.
2월부터 공무원 봉급이 평균 10% 올랐으나 이것은 치솟는 물가와 생계비에 비하면 『코끼리 「비스킷」격』.

<물가 고율 인상으로 타격>
○…전반적인 물가의 50%선 인상 전인 73년 9월 현재의 경제기획원이 조사한 도시 봉급자 실태 생계비가 4만 7천 8백 50원인데 비해 공무원들의 평균 급료는 수당까지 모두 합쳐 3만 4천 5백 40원이고 4만 7천 원 이상을 받는 공무원은 전체 공무원의 9·7% 밖에 안 되는 4만3천 9백 명 정도.
봉급이 평균 10% 올랐다지만 최근의 급격한 물가 상승률을 감안한다면 지금은 생계비선 이상의 보수를 받는 공무원 수는 그보다 훨씬 적어진 셈이다.
총무처는 보수책정의 기준으로 공무원 평균 급료인 4급 을 6호봉의 봉급을 표준생계비에 맞추던 것을 국민 1인당 소득수준으로 맞추는 등 근본적인 개선방안을 구상하고 있다.

<근절 어려운 음성수입>
○…또 하나의 문제는 예산제도의 모순. 매년 기계적으로 『전년도 수준의 20% 이내 증가를 억제한다』는 식의 예산 편성지침부터 뜯어고쳐야 한다는 것이다.
단적인 예로 74년도 예산에 책정된 장관실의 판공비는 월 5만원. 요즘의 쓰임새로 50만 원을 있어야 하는데도 5만원으로 용케 운영되고 있는 것을 누구도 불가사의한 일이라고 하지 않는데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심흥선 총무처 장관은 『공무원 보수와 현실과의 간격을 당장 없앨 수는 없고 우리의 소득수준이 높아짐에 따라 단계적으로 좁혀 나갈 수밖에 없다』고 했다.
어떻든 대량 숙정의 필요가 주기적으로 닥치는 그런 사태를 막기 위해선 선결돼야 할 문제가 너무도 많고 현실적으로는 그 어느 하나도 해결할 수 없다는데서 비정상의 관료수입은 불가결의 것으로 남아있고 다만 정도가 문제될 뿐이라는 얘기들이다.

<신용우·고흥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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