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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인 배우 양산 속 침체 못 면한 방화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60년대 우리 나라 영화계의 최대 과제가운데 하나가 연기자의 세대교체였다면 이제 그러한 숙제는 완전히 풀린 것처럼 최근에 이르러 제작되는 국산영화의 대부분은 신인급 배우들의 얼굴로 채워지고 있다.
연기가 아무리 좋다해도 1주일에 1편쯤 영화를 관람하는 사람이 몇 달 동안 계속해서 같은 연기자의 영화를 봐야한다는 것은 고역의 아닐 수 없다. 가령 70년을 전후해서 남자배우의 쪽의 신영균·김진규·신성일, 여자 배우 쪽의 김지미·윤정희·문희·남정임 등 「톱·클라서」의 배우들이 같은 기간 동안 각기 30편까지의 겹치기 출연을 했었다는 사실은 우리나라의 국산영화 「팬」들이 얼마나 똑같은 얼굴들에 시달려(?)왔는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그렇다면 배우들이 새 얼굴로 대거 바뀌어 쳤다는 것은 국산영화에 새로운 바람이 일고 있는 것으로 생각될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산영화의 저질화는 가셔지지 않고 신인배우들은 그들대로 한낱 소모품 구실밖에 하지 못하고 있는데에 심각한 문제점이 있다.
우선 최근 제작을 끝냈거나 촬영중인 국산영화의 출연현황을. 살펴보자. 불과 3, 4년 전까지만 해도 30편이상의 겹치기 출연을 기록하던 신성일은 고작 5편의 영화에만 출연하고 있다. 그래도 같은 때 크게 활약하던 다른 배우들과 비교하면 신성일은 많은 셈으로 김진규·남궁원·신영균·박노식 등은 고작 1, 2편의 출연으로 명맥을 유지하고 있으며 김지미·최무룡 등은 아예 출연을 않고 있다.
이에 비하면 「데뷔」 3, 4년에서 갓 「데뷔」한 신인에 이르기까지 신인배우들의 출연상황은 꽤 활발한 셈이다. 최근 촬영을 끝냈거나 촬영중인 영화 40편 가운데 주연급이 순수한 신인들로만 구성되고 있는 영화는 약 70%에 해당하는 27편에 달한다. 출연현황을 배우별로 살펴보면 남자 쪽에는 신영일이가 7편으로 1위 신일룡이 4편으로 2위, 하명중이 3편으로 3위를 각각 차지하고 있으며 그밖에 김희라 등 유명무명의 신인 배우들이 1, 2편씩 출연하고 있다. 한편 여자 쪽에서는 우연정·박지영·명희·최경민·안인숙·윤소라 등이 3편씩을 기록하고 있고 그밖에는 어려 신인여우들이 1, 2편씩 출연하고 있다.
물론 영화제작 편수가 많이 줄어드는 등 영화계의 상황이 4, 5년전과는 판이하게 다르지만 당시의 영화계가 불과 7, 8명의 「톱·클라스」 배우들에 의해 움직여졌던데 반해 최근의 영화계가 20∼30명의 신인배우들에 의해 움직여지고 있다는 사실은 여러 가지 면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우선 신인배우들이 이처럼 대거 쏟아져 나오고 있다면 그들중엔 반드시 두각을 나타내는 우수한 연기자들이 나오게 마련이고 따라서 이들이 출연한 우수한 영화들도 나오게 마련이다. 그러나 관객이 많았다고 해서 반드시 우수한 영화는 아니라는 논리가 성립한다면 근래에 이르러 신인들이 출연한 영화로서 질적인 면에서 성공을 거둔 작품은 찾아볼 수 없었다.
하기야 우수한 영화가 나오기 위해서는 좋은 연기만 필요한 것이 아니고 우수한 「시나리오」와 탁월한 연출력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그러나 이들 3자가 조화를 이룬다고 해서 꼭 좋은 영화가 나올 수는 없다는 것이 우리 영화계의 고질적인 풍토이다. 그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이 안이한 제작태도 때문이다.
최근에 이르러 신인배우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는 까닭은 제작자들이 우수한 영화보다 참신한 영화를 만들려고 생각하기 때문이 아니라 출연료를 싸게 하고(경우에 따라서는 출연료를 전혀 지불하지 않는 일도 많다) 촬영 「스케줄」을 마음대로 잡을 수 있어 능력을 무시하고 신인이면 누구나 기용해 쓰기 때문이다.
이 것은 오히려 60년대의 기성배우들이 계속 「스크린」에 얼굴을 내놓는 것 보다 한국 영화계를 위해 더욱 불안한 결과를 초래하기 쉽다.
신인배우를 발굴해서 유능한 배우로 성장시키는 것, 이것도 한국 영화발전을 위한 지름길의 하나라는 것을 제작자들은 절감해야할 것 같다. <정규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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