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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한 은경이 vs 피끓는 보영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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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수상한 그녀’ 심은경(左), ‘피끓는 청춘’ 박보영(右).

충무로에 ‘20대 여배우 기근’이란 말이 나돈 지 오래다. 최근 수 년간 스릴러·액션 등이 주요 장르로 부상하면서 여배우의 입지가 좁아진데다, 스타성과 연기력을 고루 갖춘 젊은 여배우가 드물었기 때문이다. 올해는 사정이 다르다. 쑥쑥 자란 20대 두 여배우가 설 대목을 겨냥한 영화에 나란히 주연으로 나선다. ‘수상한 그녀’(1월22일 개봉, 황동혁 감독)의 심은경(20)과 ‘피끓는 청춘’(1월22일 개봉, 이연우 감독)의 박보영(24)이다. [사진 전소윤 STUDIO 706]

‘수상한 그녀’ 심은경
욕쟁이 할머니서 아가씨로 변신, 극중 노래도 전부 직접 불렀죠

‘수상한 그녀’는 70대 욕쟁이 할머니 오말순(나문희)이 어느 날 갑자기 20대가 돼 오두리(심은경)란 이름으로 젊은 시절의 꿈이었던 가수에 도전하는 이야기다. 심은경의 연기는 그야말로 신통방통이다. 또래보다 원숙하고 차진 연기력이 돋보인다. ‘써니’(2011, 강형철 감독)의 여고생 나미, ‘광해, 왕이 된 남자’(2012, 추창민 감독)의 가련한 궁녀 사월이를 연기할 때도 빛났지만 이번에는 노인의 감성과 말투를 지닌 아가씨라는 초유의 도전을 통해 폭소와 눈물을 차례로 안겨준다.

 - 20대에 찍은 첫 영화다.

 “성인 연기자로 발돋움하는 작품이라 의미가 남다르다. 오두리처럼 연기 폭이 넓은 역할을 맡아 기쁘다. 내 연령대에 더 큰 역할은 없을 것 같다.”

 - 미국 유학 중 시나리오를 받았다던데.

 “제작진이 ‘심은경만 할 수 있는 역할’이라고 꼬드겼다. 기뻤지만 부담도 컸다. 연륜이 필요한 연기인데, 난 이제 막 시작하는 인생 아닌가. 그런데 시나리오의 한 장면에 마음이 움직였다.”

 - 어떤 장면이었나.

 “아들(성동일)과 대화하는 장면이다. 그 부분만 다섯 번 읽으며 울었다. 가족, 특히 엄마 생각이 많이 났다. 빨리 그 장면을 찍고 싶다는 기대가 생겼다.”

 - 극중 두리의 노래를 전부 직접 불렀다.

 “영화를 위해 가창 트레이닝을 받았다. 어릴 때 성악을 배운 것도 도움됐다. 두성 쓰는 법, 배에 힘주는 법은 유용하게 써먹었다.”

 - 립싱크를 할 수도 있었는데.

 “내가 반대했다. 두리의 노래는 가창력보다 감성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열심히 노력하겠다며 제작진을 설득했다.”

 - 어떤 노래에 가장 애착이 가나.

 “‘하얀 나비’(원곡 김정호). 두리가 지나간 세월을 회상하며 부르는 곡이다. 황동혁 감독도 그 노래를 부를 땐 유독 꼼꼼하게 주문했다. ‘눈물 한 방울 떨어뜨린 후 관객들이 환호하는 걸 보면서 알 듯 말 듯한 미소를 남겨 달라’고 했다.”

 - 그런 주문을 그대로 연기한 게 신기하다.

 “나도 어떻게 했는지 모르겠다. 연기할 땐 무아지경이다. 다만 우는 장면에서 절대 안약을 안 쓴다. 연기는 진심으로 해야한다는 생각이다.”

 - 할머니 흉내에 그칠 수도 있었는데.

 “ 할머니지만, 어떻게 보면 흔치 않은 유형의 20대 여자라고 생각하고 연기했다. 노인 연기의 포인트를 따와서 내 연기에 입힌 다음 나만의 스타일을 만들었다. 나문희 선생님 연기도 많이 참고했다. 미리 촬영 데이터를 받아서 말투, 걸음걸이를 익혔다.”

 - 극중 캐릭터를 잘 이해하듯 주변 사람들 마음도 잘 헤아리는 편인가.

 “연기하는 캐릭터에만 몰입이 된다. 친구들 기분도 잘 모르고, 심지어 내 기분도 잘 모른다. 엄마가 늘 나보고 ‘또래들보다 덜떨어졌다’고 한다.”(웃음)

 - 최근 소속사(BH엔터테인먼트)가 생겼는데.

 “엄마와 일할 땐 연기가 전부인 줄 알았다. 외모에 관심이 없었다. 요즘은 외모도 어느 정도는 준비돼야 좋은 기회를 놓치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다. 이제는 외모 관리도 열심히 한다.”(웃음)

★ 5개 만점, ☆는 ★의 반 개
★★★ (허남웅 영화평론가) : 장난 같은 설정에 그치지 않고 눈물 한 방울의 감동까지 자아낸다. 이런 게 바로 감독의 역량이다.

‘피끓는 청춘’ 박보영
겉으론 일진, 속마음은 순정파 … 내 안의 불량스러움 다 꺼냈죠

1980년대초 충청도 농촌마을이 배경인 ‘피끓는 청춘’은 연애에 죽고 사는 혈기왕성한 청춘들의 얘기다. 특히 박보영의 연기 변신이 돋보인다. ‘과속 스캔들’(2008, 강형철 감독) ‘늑대소년’(2012, 조성희 감독) 등에서 여린 감성을 표현했던 그가 일진 여고생 영숙 역을 맡아 거친 연기를 선보인다. 욕설은 물론, 머리채 드잡이 싸움도 거침없다. 하지만 자신에게 마음을 열지 않는 카사노바 중길(이종석)을 향한 가슴앓이는 애잔하다.

 - 이 작품을 선택한 이유는.

“한 남자만 바라보는 영숙이 멋있는 여자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여자가 남자를 지켜주는 스토리의 영화는 흔치 않다.”

 - 1982년이 배경이라 낯설진 않았나.

 “통학 열차, 빵집 데이트, 교련 총검술 연습 등 겪어보지 못한 것들이 신기했다. 촬영장에 가면 정말 80년대에 와있는 기분이 들었다.”

 - 사투리 연습은 어떻게 했나.

 “사투리가 가장 신경 쓰였다. 내 고향 충북 사투리와 극중 충남 사투리가 많이 달랐다. 감독과 상의하며 대사를 했는데, 아무래도 어색했다. 극중 배경인 농촌은 내가 본래 시골 출신이라 익숙했다.”

 - 영숙 캐릭터와 닮은 점이 있나.

 “강단 있는 게 닮았다고 사람들이 그러더라. 시골에서 자라서 그런지 말투도 비슷하다는 얘길 들었다. 그리고 내 안에도 불량스러움이 있는 것 같다(웃음). 해보니 재미있었다.”

 - 불량기 넘치는 연기는 어떻게 준비했나.

 “혼자 차 몰고 다니며 욕 연습을 했다. 운전을 하다 보면 욕이 튀어나오지 않나. 침 뱉고, 꽁초 던지는 연습도 많이 했다. 그간 감정을 억누르는 역할을 많이 해왔는데, 액션을 가미해 감정을 분출하는 연기를 하니 가슴이 뻥 뚫리는 것 같았다.”

 - 중길이 좋아하는 여학생 소희(이세영)와 화장실에서 난투극을 벌이는 모습이 리얼했다.

 “감독이 여자들이 머리채 붙잡고 싸우는 ‘개싸움’을 원했다. 촬영하며 소희에게 지면 영숙 캐릭터가 무너진다, 소희보다 더 때리고 더 드세야 한다는 각오로 싸웠다. 촬영 뒤에 세영이와 서로 껴안고 울었다.”

 - 대역을 쓰지 않고 직접 하겠다고 한 이유는.

 “연기를 엄청 잘하는 게 아니니까, 몸이라도 열심히 하고 싶은 마음이 있다. 잠깐 아픈 것 피하자고, 평생 남을 장면을 대역을 써서 하고 싶지 않았다. 그러면 내 자신에게 부끄러울 것 같았다.”

 - 영화에서 짝사랑 연기는 처음이다.

 “중길과 함께 나오는 장면이 많지 않아 감정적 교류가 없었던 게 오히려 짝사랑을 표현하는 데 도움이 됐다. 영화 찍을 때 늘 캐릭터와 사랑에 빠진다. 아무도 모르게 혼자 연애하는 느낌이다. 그래서 일상 생활에서 연애하고 싶은 마음이 안 든다.”

 - 지금 박보영의 ‘청춘’은 어떤 모습인가.

 “불안하지만, 청춘이니까 부딪혀볼 수 있는 게 아닐까. 이 작품도 그래서 선택했다. 나중엔 이런 변신을 쉽게 선택하지 못할 것 같다. 불안을 받아들이고, 많은 걸 경험하고, 벽에 부딪히면서 겪어봐야 안정기에 접어들 것 같다. 그래서 서른이 기대된다. 사랑이란 걸 알게 될 즈음 감정적으로 깊은 멜로도 해보고 싶다.”

★ 5개 만점, ☆는 ★의 반 개
★★★(김형석 영화평론가) : 흥미로운 상황 설정이다. 캐릭터들도 좋은데, 이야기의 디테일은 조금 아쉽다.

이은선·정현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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