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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 표적납치, 알카에다가 했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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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20일 오전 KOTRA 본사에서 취재진이 직원으로부터 회의 상황을 전달받고 있다. KOTRA는 이날 한선희 중동지역본부장을 현지에 급파하는 등 대책 마련에 나섰다. [뉴스1]
한석우

리비아에서 근무 중이던 한석우(39) KOTRA 트리폴리 무역관장이 20일 무장 괴한들에게 납치됐다. 정부는 가능한 모든 채널을 동원해 한 관장의 안전 확보에 주력하고 있다.

 사건이 발생한 것은 현지시간 19일 오후 5시30분(한국시간 20일 0시30분)이었다. 한 관장은 이라크인 운전사가 모는 차량을 타고 퇴근하는 길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차량 한 대가 추월하더니 멈춰 섰다. 이에 한 관장의 차가 급정거하자 앞에 있던 차에서 개인화기로 무장한 괴한 네 명이 내려 한 관장을 위협했다. 이들은 운전사와 차량은 남겨둔 채 한 관장만 자신들의 차에 태운 뒤 서쪽으로 사라졌다. 운전사는 사건 발생 직후 주리비아 한국 대사관에 이 사실을 알렸다. 대사관은 즉각 리비아 외교부, 정보부, 경찰 등 관계기관과 지역 민병대 등을 접촉해 한 관장의 소재를 파악하는 한편 안전한 석방을 도와달라고 협조를 요청했다.

 한 관장의 차량과 퇴근길을 사전에 인지하고 있었던 점, 운전사와 차량은 그대로 놔둔 점 등으로 미뤄 이번 사건은 사전에 계획된 표적 납치일 가능성이 작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아직까지 한 관장을 납치했다고 주장하는 단체나 개인은 나타나지 않고 있다. 우리 정부는 이정관 외교부 재외동포영사대사를 단장으로 하는 관계부처 합동대책단을 꾸리고 정확한 상황 파악에 주력하고 있다. 20일 오전에는 주한 리비아 대사대리를 외교부로 불러 적극적 협조를 당부했다.

 한 관장은 2012년 7월 트리폴리 무역관장으로 단신 부임해 인턴들과 함께 일해왔다. 2005년 KOTRA에 입사한 그는 직전에는 이란 테헤란에서 근무했으며, 가족은 몰타에서 지내고 있다.

 리비아에서는 2011년 독재자 무아마르 카다피 축출 이후 민주 정부가 들어섰지만, 중앙정부로서 제 기능을 하지 못해 치안 불안이 이어지고 있다. 외교부는 지난 한 해 동안 차량 탈취, 강도 등의 피해를 당한 우리 교민이 10여 명이라고 밝혔다. 18일 현재 리비아에 머물고 있는 한국인은 551명으로 집계된다.

 한국인이 리비아에서 납치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하지만 리비아에서는 금품을 빼앗거나 종교적 신념을 표출하기 위한 납치 사건이 끊이지 않고 있다. 일부 지역에서는 아직 카다피 잔당이 건재하고 다양한 부족 간 갈등이 여전한 데다 아랍의 봄 주역이었던 시민군이 그대로 지역 무장세력으로 흡수되며 불안 요소가 더욱 커졌다.

 치안 공백을 틈타 알카에다도 세력을 확대하고 있다. 2011년 9월 벵가지 미 영사관 습격사건 배후에도 아랍의 봄 이후 급성장한 알카에다북아프리카지부(AQIM)가 있다는 것이 미 정부의 판단이다. 이슬람 극단 세력이 한 관장 납치에 연루된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납치의 대상도 내·외국인을 가리지 않는다. 지난해 10월에는 알리 자이단 리비아 총리가 무장 세력에 납치됐다 6시간 만에 구출됐다. 압둘라 알티니니 리비아 국방장관의 외아들 무함마드는 지난해 9월 말 납치돼 4개월 가까이 붙잡혀 있다 지난 13일 풀려났다.

유지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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