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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 나도 혹시 성격장애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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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21면

명문대 2학년에 재학 중인 L양(20세). 같은 과 친구와 어울려 잘 놀다가 어느 순간 친구의 행동이 마음에 들지 않아 절교를 선언했다.

집에 돌아와 곧 후회를 했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 '나는 참 쓸모 없는 인간이구나'라는 생각이 들면서 마음이 울적해 하루종일 방에만 있었다.

그러나 다음날 아침 쾌청한 하늘을 보자 다시 기분이 좋아져 중간고사에서 '올(all) A'를 받아야겠다는 당찬 계획을 세운다.

어느 집단이나 '성격이 이상하다''못됐다''괴팍하다'는 등의 이유로 기피 인물로 꼽히는 사람이 있다. 이해가 되지 않는 행동으로 '왕따'를 당하고, 사회생활이 어려울 정도로 대인관계에서 실패를 거듭한다.

이른바 성격장애자(혹은 인격장애)들이다. 이러한 성격장애(표 참조)도 병일까, 그리고 이런 성격을 원만하게 바꿀 수는 없을까.

서울대병원 정신과 유인균 교수는 "이들은 성격 때문에 사회생활과 가정생활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여러 가지 어려움을 겪는다"며 "환자로 인해 주변 사람들은 괴롭지만 대부분 환자 본인은 불편함을 못 느끼고 사는 것이 특징"이라고 설명한다.

자신의 증세가 심각하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기 때문에 행동 수정도 어렵다는 것.

L양의 행동은 '경계선 인격장애' 환자에게서 흔히 나타나는 증상이다. 환자는 특별한 이유 없이 수시로 기분이 좋았다 나빴다 하고, 친구도 지나칠 만큼 좋아하다 한순간 혐오의 대상으로 변한다.

꾸준히 사귀거나 친한 친구가 없는 것은 당연하다. 또 충동성이 강해 필요하지 않은 물건을 많이 사고 별 것도 아닌 일에 불같이 화를 내고 싸우기도 한다.

최근 젊은층에 많은 공주병.왕자병도 '자기애적 성격장애자'가 보이는 증상이다. 이들은 '나는 남들과 달리 특별한 능력을 타고 났다'고 생각하면서 남의 관심을 끌고자 한다.

특별대우를 받고 싶어하고 자신에 대한 비난을 들으면 감정이 몹시 상한다.흔히 '오만하고 건방지다'는 평가를 받는데 남의 감정에 개의치 않고 자신의 목적을 위해 남을 쉽게 이용한다.

강한 자존심과 자신감 때문에 매력적으로 보이기도 하지만 이기적.자기중심적 생각 탓에 결국 남들로부터 따돌림을 당한다.

막가파식으로 별다른 죄의식 없이 범죄행위를 하는 사람 중엔 반사회적 인격장애 환자가 많다.

유교수는 "이들은 자기가 싫어하는 특정인뿐 아니라 불특정 다수에 대해서도 손쉽게 해를 입히고 반성도 잘 하지 않는다"고 밝힌다. 애꿎은 게시판을 부수거나 남의 물건을 망가뜨리는 사람들, 상대방의 작은 모욕에도 분을 못 이겨 목숨 걸고 위협하는 경우 등이 해당한다.

수동적 공격형 성격장애도 있다. 회사에서 상사로부터는 착하고 나무랄 데 없는 부하직원이지만, 후배에겐 독종인 선배로 평가받는 사람이라면 의심해 볼 수 있다. 공격성을 숨기고 있다가 자신보다 약한 사람을 만나면 폭발하는 유형이다.

성격장애는 종류도 12가지로 많고, 대처법도 다양하다. 삼성서울병원 정신과 이동수 교수는 "가족 및 교우관계.직장생활 등에 어려움이 있거나 지나치게 튀는 행동이 문제될 땐 정확한 진단을 받고 대책을 세우는 게 현명하다"고 들려준다.

성격장애 치료의 가장 큰 걸림돌은 그 성격 때문에 스스로 느끼는 괴로움이 별로 없다는 것이다. 그러니 환자 본인이 치료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

또 치료를 결심했다 하더라도 수십년에 걸쳐 형성된 문제의 성격을 고치려면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다.

따라서 가족이나 주변 사람의 협조가 절대 필요하다. 우선 환자의 문제 행동이 치료가 필요한 병이란 점을 인식해야 한다. 통상 환자들은 불평불만이 많으므로 이를 무조건 들어줘서도 안된다.

서울대 유교수는 "주변 사람들이 환자의 문제 행동에 대해 '괜찮다''그럴 수 있다'는 말을 하지 말라"고 조언한다. 대신 잘못된 행동을 지적하고, 수정하도록 일깨워주는 것이 바람직하다.

시끄러운 상황을 면하기 위한 약속도 금물이다. 예컨대 성질을 부리면서 부당한 요구를 할 때 '좀 기다리면 해주겠다'는 식의 말은 절대 하지 말라는 것. 물론 '못된 인간'이라며 배척하는 것도 치료에 도움이 안된다.

치료의 핵심은 문제 행동에 대한 분석 대신 적절한 '대처 방법'을 지도해줘서 일상생활에서 문제를 일으키지 않도록 해주는 것이다.

자신의 행동으로 발생한 결과를 감싸거나 가족이 대신 해결해주면 증상이 악화하므로 본인 스스로 책임지는 해결 방안을 찾아야 한다.

이런 주변의 지속적인 노력으로도 문제 행동이 해결되지 않을 땐 1년 이상 정신과 의사의 치료를 받아야 한다. 병원에선 상담과 인지(認知)행동치료를 우선 시작하며 필요할 땐 충동조절 약물, 기분 조절제 등 단기간 약물치료를 병행한다.

황세희 전문기자.의사
사진=안성식 기자<anses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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