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 시도되는 4개의 국전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문공부가 최근 공고한 금년도「4개의 국전」요강은 그 시행에 있어 난항을 거듭할 것이 예상돼 귀추가 한층 주목되고 있다. 금년 23회가 되는 국전개최요강을 보면 회화·조각을 구상(제l부)과 비구상(제2부)로 분리하고 서예(제3)를 독립시키며 공예미술은 종래의 건축·사진전에 통합(제4부)시켜 4개의 별개 국전을 연다는 것인데 2.4부를 5월에 열고 l,3부를 10월에 열되 재야작가를 모두 포섭함으로써 그야말로 전체미술가의 광장이 되게 하겠다는 것이다.
이러한 확대국전의 개편 안은 지난해 문공부가 비공개 리에 전격적으로 추진해옴으로써 즉각 실현단계에 이끈 것이다. 당초 기존의 국전운용위원회는 당국의 결정에 크게 반발했지만 끝내 미술계의 실리를 추구하는 데서 타협을 본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그 결과 71년도의 제1차 제도개혁 때 2개의 국전으로 됐던 것이 이번 2차 개혁에선 4개의 국전으로 일약 확대된 것이다.
4개의 국전이 각기 별개이므로 대통령상도 4개요, 추천·초대작가에 대한 상도 따로따로 수여됨은 물론이다. 구상·비구상, 즉 제1·제2부에 있어서는 종전대로 동양화·서양화·조각의 3분과가 내재하며, 오히려 제3서예 부문은 사군자분과가 신설돼 여기에도 시상이 안배된다.
국전운영위원회가 4개로 분할되어 종래 15명에서 23명으로 늘어났듯이 심사위원의 수도 늘어나기 마련.
특히 이제까지 국전을 외면해 온 재야작가를 모두 참여시킬 계획이므로 추천작가와 초대작가의 수도 당연히 증가될 것이다. 또 대통령상·초대작가 상·추천작가상 수상자의 해외여행 보조비를 연구비 조로 지급할 수 있게끔 완화한다는 소식이다.
이러한 대 개편은 미술계의 입장에서는 뜻밖의 커다란 소득이다. 예술의 다른 여러 분야에 비할 수 없을 만큼 막대한 정부지원을 여는 결과가 된 것이다. 그 중에도 이번 개혁을 통하여 가장 큰 실리는 서예부문. 회화·조각 같은 순수미술에선 따돌림을 받고 제4부에 끼우자니 서먹하다가 독립 전을 갖게 됨으로써 떳떳한 무대를 갖게 됐다.
20여 회의 국전에서 서예가 대통령상을 차지하기는 단 한번 뿐이요, 추천·초대작가상 차례를 기다리기란 까마득한 처지였는데 이번 계획으로 그것들을 해마다 누리게 된 셈이다.
그래서 회화·조각·공예·건축·사진 등의 분야 작가들은 그들 각 분야도 독립 전 형식이 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반면에 서예가 독자적으로 국전살림을 꾸리기에는 적잖은 문제가 내포돼 있다. 파벌과 이해가 엇갈려 유난히 시끄러운 서예 계요,「아마추어」와 종래의 선비관념 때문에 작가의 한계가 미묘하다.
특히 서예에 사군자부가 신설되어 새로운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다. 옛 선비사이에선 사군자가 교양에 속하는 것이지만 현재는 서예작가만으로 사군자를 심사하기엔 적당치 않고 도리어 동양화가의 참여가 있어야 할 실정이다.
어쨌든 이번 개혁으로 2개내지 3개의 부문에 등록하는 작가나 신인도 속출하게 됐다. 4개 부가 각각 별개의 국전이므로 자신의 능력에 따라서는 얼마든지 참여할 기회가 생겼으며 그것을 제약할 하등의 이유가 없게 되었다. 추천작가나 초대작가 같은 기성 층은 어차피 어느 쪽에 속해야 하지만 신인자격으로는 다른 부문에 출품할 수도 있지 않을까.
작가들, 그 중에는 반 추상계열에 선 과연 어느 쪽에 참여할지 설왕설래가 한창이다.
그러나 금년 국전에서 실험적 전위작품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지 많은 신인들 사이에는 관심사로 되어있다. 즉 제2부 비구상전이 조형적·추상적 경향을 포괄하는 것이라면 세계적인 현대미술의 움직임을 다 받아들여야 하기 때문이다. 또한 종래의 체제 속에서 그런 전위작품이 엄밀히 회화나 조각에 들지 않을 때의 처리문제도 새로운 과제의 하나이다.
그러나 이번 국전에서 한층 어려운 문제는 재야작가의 흡수이다. 재야작가란 그 범위를 잡기가 극히 막연할 뿐더러 실사 선정해 받아들인다 하더라도 추천작가냐 초대작가냐에 따라 이의가 뒤따르기 마련이다. 그것은 60년대 초에 일부 초대작가를 대우해 참여시킨 결과 오늘날까지 시비의 실마리가 되고 있는데, 이번이라고 그것이 조용할 리 없을 것 같다.
국전에서 성장한 작가들은 대체로 재야작가를 갑자기 대접해 들이는 것을 꺼린다. 반대로 재야작가 측에선 기왕에 참여할 바에야 처음부터 초대 급으로 처우해주길 희망한다. 그동안 국전을 외면해 온 작가 중에는 국전작가에 맞먹는 이도 있는 반면에 몇 차례 출품했다가 고배를 마신 축도 있다.
그런 대우에 있어 정확한 채점이나 표준을 잡기 어려운 게 작품활동이다. 개인전이나 국제 전 참가의 실적을 참작한다 하더라도 그 인선은 인정점수가 되기 십상이다. 더구나 추상작품일 때 그야말로 막막한 작업이다.
이 같은 세부적 문제들은 운영위가 결정토록 위임돼있다. 그 위원의 대다수는 현역 작가로. 구성돼 있고 나머지 몇 몇 분의 미술과 관계없는 외부인사. 미술사나 평론가 측은 전혀 도의 시 돼 있고 미술관 측에서도 일체 관여치 않고 있다.
그래서 국전의 개혁은 미술계의 실리를 위해 확대 됐을 뿐 종래 지적돼오던 타성은 해소된 것이 없다는 평판이다. <이종석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